1만년 '불의 숨길' 경외감...'제주 화산섬·용암동굴' 가보니
'세계자연유산 워킹투어, 불의 숨길 만년을 걷다'10월 세계유산축전에서 극소수 일반인들에 공개
지난 24~25일 거문오름용암동굴계를 만든 '불의 숨길'을 따라 걸었다. '세계자연유산 워킹투어, 불의 숨길 만년을 걷다'의 일부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으로 지정되어 대부분의 구역에서 일반인 접근이 금지된다. 하지만 오는 10월 세계유산축전에서 극소수의 일반인들에게 비밀의 문을 연다. 문화재청이 행사를 앞두고 언론에 미리 공개했다. 벵뒤굴·만장굴·김녕굴의 비공개 구간 등 거문오름에서 시작해 용암의 흐름을 따라 월정 바다까지 제주 세계 자연유산의 속살을 경험했다.
◆용암동굴계를 형성한 모체 거문오름…시원의 길 '불의 숨길'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상부부터 월정리 해안까지 26km 코스로, 4개 구간으로 이뤄져있다. 그중 첫번째가 용암동굴계의 근원지, 거문오름 '시원의 길'(5.5km)이다. 거문오름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형성한 모체다. 거문오름에서는 용암 동굴의 천장이 무너지며 만들어진 붕괴도랑과 수직굴, 자연이 만든 천연 에어컨 숨골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분화구에는 깊게 패인 화구가 있으며, 그 안에 작은 봉우리가 솟았다. 분화구에서 쏘아올려진 용암덩어리가 공중에서 회전하며 떨어진 '화산탄'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낮게 얽혀있는 자생식물들과 길쭉길쭉 우거진 삼나무가 어우러지며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거문오름은 사전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 거문오름 인근에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이 인상적이다. 4D영상관에서 제주의 환상적인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리프트를 타고 제주도 탄생과정 체험, 직접 가 볼 수 없는 용암 동굴도 여기서 체험해 볼 수 있다. 강경모 세계자연유산축전 총감독은 24일 이곳에서 가진 사전 브리핑에서 세계유산축전에서 진행되는 '워킹투어'에 대해 "1구간 '시원의길'은 검은오름에서 용암이 처음으로 분출된 지역이며, 2구간 '용암의 길'은 빠르게 흐르는 용암으로 많은 협곡이 형성된 지역"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3구간 '동굴의 길'은 빠르게 흐르던 용암의 속도가 느려지며 위는 굳고 밑은 흘러서 많은 굴을 형성한 구간, 4구간 '돌과 새 생명의 길'은 용암이 월정리 해안에서 바다를 만나 식어버리고, 그곳에 생명이 움트고, 유산마을들이 형성된 곳들"이라고 설명했다.
"조심하세요. 일행들 놓치면 들어갔다가 못 나올 수 있습니다. 진짜 미로에요. 제주도민들이 4.3때 이곳에 숨었습니다. 길 잃을 수 있어요." '벵뒤굴' 입구에서 강경모 총감독이 말했다. 벵뒤굴은 거문오름에서 800m 떨어진 동굴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형제들 중 가장 먼저 태어났다. 용암오름계에서 내부구조가 가장 복잡한 이 동굴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미로형 동굴이다. 제주 용암동굴 중 4번째로 긴 4.5km로, 전 구간을 정확히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 내부가 좁고 험한 데다 자칫 동굴벽을 만지면 동굴 내 생태계가 훼손될 수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동굴탐험에 앞서 탐방용 수트와 안전모, 손전등, 팔꿈치, 무릎보호대, 장갑을 착용했다. 진입로가 좁아 트럭 짐칸에 타고 벵뒤굴에 접근해야 했다. 벵뒤는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 말이다. 벵뒤굴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8개 동굴 중 거문오름에서 가장 가까운 동굴이다. 하지만 규모가 크고 동굴의 형태가 갖춰진 다른 동굴들과 달리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동굴 형성 초기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는 평가다. 평평한 벵뒤에서 용암이 여러갈래로 흐르다보니 미로처럼 복잡한 것도 특징이다. 인솔자로 나선 세계유산본부 기진석 학예연구사가 동굴에 진입하기 전 주의를 줬다. "입구가 23개인데 그중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18개고, 안전상 갈 수 있는 입구는 3곳입니다. 들어가면 동굴 벽은 만지지 말아주세요. 미생물 생태계가 훼손됩니다. 카메라 가지고 오신 분들, 렌즈 깨질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동굴 입구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나왔다. 기 학계사를 따라 줄을 지어 동굴의 심연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울퉁불퉁 크고작은 화산석들이 즐비하고, 좁아지는 구간도 많아 식은 땀이 절로 났다. 렌턴을 켜 본 동굴벽은 반짝반짝 황금색이었다. 한 기자가 "금인가요?"라며 농담을 던지자 기 학예사는 "미생물이 오랜 기간 자라고 있는 것"이라며 "조성에 따라 흰색도, 노란색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시 렌턴을 켜고 빛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끔은 네 발로 기어야 했고, 너무 낮은 동굴에 머리도 여러 번 부딪혔다. 안전장구가 아니었으면 다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동굴에서 나오는 길. 작은 돌들로 입구를 막아 놓은 것이 보였다. 4.3당시 이곳에 숨었던 제주민들이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막아둔 곳이라는 설명이다. 걷다보니 빛이 새어 들어왔다. 출구였다. 1시간이 채 안 걸린 '벵뒤굴' 탐험이었지만 훨씬 길게 느껴졌다. 분명 서늘한 곳이었는데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벵뒤굴은 '불의 숨길' 2구간 '용암의 길'(4.8Km)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용암의길은 거름오름탐방로에서 숯가마터, 용암붕괴도량, 풍혈, 웃산전굴 1입구, 웃산전못, 웃산전굴 2입구를 잇는 구간이다.
◆용암선반과 용암교, 종유석이 곳곳… ‘동굴의 길’ 만장굴 "만쟁이거멀(만장굴의 제주방언)과 관련된 전설이 있어요. 덕천리에 예쁜 여종이 살았는데 양반이 수청을 들라고 했고, 어느 날부터 배가 불러온거죠. 마님이 하인에게 시켜 이 여종을 만쟁이거멀로 데려가 밀어죽였어요. 그날부터 이곳에 '웡이자랑 웡이자랑 우리 애기 잘도 잔다'는 소리가 들린대요. 그 소리를 듣고 이상해서 가까이 가는 사람을 여종의 영혼이 확 밀어버린다는거죠. 제가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무서워서 만쟁이거멀 가까이도 못갔어요."(양영선 덕천리 사무장) 만장굴 3입구는 제주 토착민들에게 '만쟁이거멀'로 불리던 곳이다. 만장굴의 동굴이 무너져 내려 커다란 천장창이 생긴 곳으로, 지표에 붕괴된 암석이 놓인 바닥까지 높이가 22미터에 이른다. 암벽 등반가의 도움을 받아 레펠을 타고 겨우 내려갈 수 있을 정도다. 바깥에서 내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3동굴입구를 바깥에서 둘러보고 관광객출입구인 2입구로 이동했다. 수풀이 우거진 곶자왈과 투물러스(쪼개진 암석이 작은 돔 모양의 언덕을 형성한 곳), 용암궤(흘러가던 용암이 빠져나가며 지표면이 나지막하게 꺼진 곳)들을 볼 수 있었다.
만장굴의 입구는 3곳이지만 현재 관광객들에게는 2입구 주변의 1km 구간만 공개되고 있다. 2입구로 들어가 인솔자를 따라가다 '출입통제' 사슬을 걷어내자 일반인들을 들어갈 수 없는 미공개구간이 나왔다. 렌턴에 의지해 넓고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만장굴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서 가장 넓고 웅장한 곳이다. 총길이 7.4km에 최대너비 18m, 최고 높이 25m다. 용암류가 흐르며 초기에 발생한 용암동굴로 새로운 용암류가 계속 흘러들어 바닥을 녹이고, 크 고작은 용암동굴이 합쳐져 큰 규모의 만장굴이 형성됐다. 용암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구불구불이어진 통로가 연결됐고, 세 군데의 천장이 무너져 입구가 만들어졌다. 다층구조가 선명한 곳으로, 용암선반과 용암교, 종유석이 곳곳에 있다. 바닥에 '밧줄구조'가 선명했다. 밧줄구조는 어느 정도 굳은 표면의 용암이 아래의 뜨러운 용암의 영향을 받아 서서히 밀려나며 만들어진 주름층이다. 이 주름층을 보면 용암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불의숨길 3구간 '동굴의 길'(8.9km)에는 만장굴 외에도 북오름굴-대림굴 등이 자리하고 있다.
◆용암과 바다, 인간이 일궈낸 '돌과 새 생명의 길' "김녕굴은 '사굴'로도 불려왔어요. 뱀굴이라는 뜻이죠. 여기에 큰 뱀이 살았는데, 매년 처녀 한 사람을 제물로 올려 큰 굿을 했다고 합니다."(기진석 학예연구사) 만장굴에서 100m 떨어진 김녕굴은 높이 12m, 너비 4m로 통로가 넓은 편이지만 중간층이 무너져 대부분 단층을 이루며, 일부분은 2중구조를 띈다. 생성 초기에는 만장굴과 연결돼 있었지만 동굴 내부로 흐르던 용암이 굳으며 막혀버렸다. 총길이 705m인 이곳은 과거 일반에 공개됐었지만 낙석이 떨어지는 일이 잦아 현재는 접근할 수 없다. 축전 기간동안에만 사전 신청한 이들에게 공개된다. 동굴 입구로 내려서니 바닥에 하얀 모래가 가득 쌓여있다. 해안에서 날아온 모레들이 쌓였다는 설명이다. 동굴 입구쪽에 가득 쌓여있던 모레는 안으로 들어갈 수록 얕아진다. 마치 바다가 용암을 마중나온 듯 하다. 김녕굴은 4구간 '돌과 새 생명의 길'(6.9km)에 속해 있다. 용암은 김녕굴과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을 거쳐 월정리 바다를 만나 두께가 얇으며 넓게 퍼진 파호이호이용암대지가 된다. 제주에서는 이곳을 빌레용암이라고 한다. 빌레는 '너럭바위'의 제주어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화산활동에 관한 지질학적 연구가치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인정받아 2007년 국내에서 첫번째로 등재된 유네스코 자연유산이다. 문화재청과 제주도, 한국문화재재단과 제주 세계자연유산마을보존회는 오는 10월1~16일 한라산,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세계유산마을 7곳,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등에서 세계자연유산 축전을 갖고, 극소수의 참가자들에게 비밀의 문을 열어준다. 핵심 프로그램인 '세계자연유산 워킹투어' 외에도 '세계자연유산 특별탐험대', '만장굴 전구간 탐험대', '세계자연유산 순례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세계자연유산마을인 선흘1리, 선흘2리, 덕천리, 김녕리, 월정리, 행원리, 성산리 등 일곱 유산마을 참여하는‘세계자연유산마을을 찾아서’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제주의 자연 친화적 분위기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페스티벌 사이트'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