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기획-공급망 붕괴, 탈출구 없나①]격변기 맞은 글로벌 공급망, 생사 갈림길 놓인 韓 경제
러·우 사태 등 공급망 위기에 원자재 가격↑車·건설업 등 생산 차질…무역적자 심화돼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 속도…피해 커질 듯국제 분업 체제상 공급망 위기 예단 어려워
[세종=뉴시스] 고은결 기자 =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평화로운 국제적 분업 체계가 무너지며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로 세계 곳곳서 공장 가동이 마비되고 물류가 차질을 겪으며 기존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각국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는 충격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기존 공급망의 회복에 집중하거나 인근 국가로 다각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 안보' 개념이 더해지며 동맹국 간 협력을 뜻하는 '프렌드 쇼어링'(동맹·우방 중심 공급망 재편)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으로 인한 위험 가능성이 큰 데다, '동맹국' 미국과 '교역국'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불안정한 원자재 가격과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후 변화 등으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국내 경제 여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최신 '글로벌 공급망 인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유가·원자재 가격 등은 공급망 위기에 널뛰고 있다. 지난달 26일 기준 두바이 원유 가격은 지난해 최저 수준과 비교해 68.4% 급증했다. 철광석 가격은 지난해 최저치와 비교해 11.8%, 니켈과 알루미늄 가격은 각각 37.6%, 7.9% 올랐다. 올해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식량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지며 주요국에서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 이후에는 소재·부품의 공급 차질이 발생하며 일부 산업에서 생산이 제약됐다. 이런 공급 차질은 우리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글로벌 공급망 교란이 일부 산업에서 생산을 제약하고, 산업 전반에 걸쳐 투입 비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최근 글로벌 공급망 차질의 특징 및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생산은 지난해 말 이후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중국 봉쇄 조치에 와이어링 하네스(자동차 내부 전선 뭉치), 에어백 통제장치(ACU) 등 부품 공급이 차질을 겪어 3월들어 감소세로 전환했다. 건설업은 지난해 이후 자재 가격이 크게 오른 가운데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유연탄(시멘트·레미콘 원료) 수급 불안정 등이 가세하면서 회복이 더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계장비업의 경우 반도체 제조용 장비 도입 지연 등으로 특수 목적용 기계를 중심으로 생산이 감소했다. 무엇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수급 위기가 고조되며, 에너지 수입액이 급증해 무역적자 기조가 굳어지고 있다.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만큼, 무역수지를 지탱하던 수출까지 주춤하면 경제 성장 엔진에 경고등이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9월 2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 규모는 292억1300만 달러인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133억 달러)과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206억 달러) 수준을 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런 가운데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빨라지며 국내 산업에 대한 위협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글로벌 기술 공급망을 재편하는 동시에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차세대 통신망 등 첨단전략 산업 관련 핵심기술과 품목의 수출을 통제 중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고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취지의 '칩 4' 동맹을 한국과 대만, 일본에 제안했다. 미국의 설계기술과 장비를 바탕으로 한국과 대만의 생산시설, 일본의 소재를 결합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한 미·중 경쟁 심화와 중국 반발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9일 발효된 '반도체와 과학법' 내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도 문제로 꼽힌다. 이 조항은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업체가 10년간 중국 등에서 생산시설 신·증설 등을 포함한 투자를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중국에 생산시설을 둔 우리 기업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인플레감축법(IRA)으로 인한 전기차 업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이 법안은 미국 내에서 생산하지 않는 전기차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혜택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담아 국내 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감축법은 반도체와 과학법과 더불어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해, 반도체·전기차·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평가된다. 인플레감축법으로 인해 우리 전기차 업체들은 세액공제 혜택을 못 받게 돼 미국 시장에서 경쟁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인플레감축법이 미국의 중간선거용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향후 미국은 중국 견제와 기후 변화 대응 강화.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 등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상당하다. 특히 2024년에는 미국 대선이 있어, 내년에도 유사한 수준의 강력한 대(對) 중국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장은 지난달 27일 '반도체·인플레감축법 등 미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대응 간담회'에서 IRA에 대해 "중국이 장악한 글로벌 광물 공급망에 대한 미국의 선전포고"라며 "중요한 점은 미국이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찍 선전포고를 했고 한국 기업이 파편을 맞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 국제 분업 체제가 확산된 현 상황에서 공급망 위기는 언제 어느 지역에서 불거져 어떤 영향으로 확산될 지도 예단이 쉽지 않다. 일단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글로벌 식량 수급 불안 가능성 등이 리스크 요인으로 잠재해 있다.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높아, 이런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물가 오름세가 더 가팔라지고 생산에 대한 영향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한은은 앞선 보고서에서 "최근 글로벌 공급망은 전쟁과 팬데믹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어 향후 전개 상황의 불확실성이 높다"며 "글로벌 공급망 상황과 국내 산업의 취약성을 면밀히 점검해 사전 대비하고, 향후 공급망 재편에 적극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