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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영화가 할 수 있는 윤리…'다음 소희'

등록 2023-02-07 07:57:32   최종수정 2023-02-13 08: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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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겨우 영화 따위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이죽거리는 비관론자들에게 영화 '다음 소희'는 영화의 역할에 관해 반박하는 대신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을 건네는 것 같다. 그 물음은 어쩌면 영화와 무관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어떤 곳이 되길 바랍니까.'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 같은 건 이 말에 없다. 최소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어떤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아주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 없이 사용해야 한다는 태도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역할을 '다음 소희'는 영화로서 다하려 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기어코 만드는 건 영화감독으로서 정주리의 책임감으로 보인다.

'다음 소희'는 2017년 1월 전주 아중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 고등학생 소녀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현장실습을 나갔던 학생이 콜센터 계약 해지 방어팀에서 일하며 온갖 부당 노동 행위에 시달리던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만 실제 사건이다. 정주리 감독은 이 실화를 기반으로 '소희'(김시은)라는 인물을 만들어내 전주의 평범한 소녀가, 그러니까 소희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지 검토한다. 이 애꿎은 죽음에 대한 조사가 모두 끝나고 나면 그제서야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 이제 관객은 '다음 소희'라는 말 뒤에 이어지지 못한 문장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를 두고 근심하게 될 것이다. 다음 소희는 또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니면 다음 소희만큼은 나오지 않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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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말해주듯이 '다음 소희'는 소희가 죽어서 사라진 다음에 세상에 남겨진 자들의 윤리를 들여다본다. 이 작업의 시작은 애먼 소녀를 죽음으로 내몬 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 작동하고 어떤 경로를 거친 뒤 소희에게 가닿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특정 대상을 악마화하고 분노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히 지적해 들어가는 게 정주리 감독이 하려는 일이며, 두루뭉술하게 적당히 넘어가는 게 아니라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하는 게 '다음 소희'의 윤리다. 그래서 소희는 이렇게 묻는다. "내가 무슨 일 하는지 알아?" 그리고 경찰 유진(배두나)도 묻는다. "소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까?"

'다음 소희'는 러닝 타임 138분을 딱 절반으로 나눠 전반부는 소희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후반부는 소희를 죽게 한 시스템을 확인한다. 이 작품의 이같은 2부 구성은 필연적이다. 만약 1부만으로 영화가 끝났다면 소희가 한 선택의 기저에 깔린 이 사회의 오류는 쉽게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이건 소희의 죽음을 "그럴 애가 아닌데" 혹은 "이런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그저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만약 2부만 있다면 춤을 좋아하고 욱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친구를 아꼈던 소희라는 한 인간의 존재를 흐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이때 "소희가 춤 좋아하는지 아셨어요?"라는 질문은 의미를 갖는다). '다음 소희'는 제대로 애도하고, 분명하게 책임을 묻기 위해 다소 길어보이는 이 러닝 타임이, 1부와 2부가 모두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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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우리 사회 가장 소외된 곳에 있는 가장 약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만으로도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 앞서 청년 세대를 소재로 삼은 한국영화들은 대체로 서울을 배경으로 대학과 직장 사이에서 낙오될 위기에 처한 이들을 주로 다뤄왔다. 영화 뿐만 아니라 어떤 매체든 청년 문제의 초점은 대학을 나온 취업준비생에 맞춰져 있는 게 현실이었다. 지방에 살며 특성화고에 다니고 고3이 되면 현장실습을 나가 사실상 사회인이 되는 청년 노동자의 실태에 관해 아는 이들이 거의 없고, 누군가 안다고 해도 거의 알려진 적이 없었다. '다음 소희'는 소희와 소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소희들을 보여줌으로써 비주류 중의 비주류, 소외된 이들 중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낸다. 정주리 감독의 이런 시각은 전작 '도희야'(2014) 때도 다르지 않았다.

'다음 소희'는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개인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우리 사회 중심에 뿌리내린 시스템을 확인하는 식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상징하는 단어는 이 영화에서 매우 자주 나오는 바로 그 '인센티브'라는 말이다. 효율과 성과가 인간성을 절멸해버릴 때까지 방치하는 이 세계에서 소희는 반복해서 죽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이 작품은 과장 하나 없이 보여준다. 이 최악의 악순환은 소희의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고 우리가 속한 대부분의 세계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다음 소희'는 개별적인면서도 보편적인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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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음 소희'는 윤리적이며 책임감 있는 기성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주리 감독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옳지 않은 것을 대면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나서는 용기,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끝까지 완수하는 헌신, 잘못된 건 누가 뭐래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관성, 나보다 약한 이들에게 기꺼이 기댈 곳이 돼주겠다는 배려, 그리고 아무리 삶이라는 고통에 찌들어 있어도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따뜻함. '다음 소희'는 낙관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쉽게 희망을 내놓는 법도 없다. 다만 이런 지성과 이런 마음 없이는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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