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쉬 카푸어'의 반전…잔혹한 아름다운 세계[박현주 아트클럽]
국제갤러리서 2016년 이후 7년 만에 개인전코로나19 사태때 작업에 몰두한 신작 공개거대한 피빛 회화·덩어리·마술같은 검정 조각 압권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삶은 이토록 격렬한 것인가. 모든 걸 쏟아내어 터져 버린 듯 붉은 피빛으로 점철된 화면은 기묘한 충동을 꿈틀거리게 한다. 폭력적이고 잔혹하며 원초적이고 성적인 기운까지 터트려 불안정한 감각을 촉발시킨다. '미술이 아름답다고?'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라는 듯 고정관념을 희롱한다. 보는 이의 신체적 감각까지 시험하는 지극히 자극적인 이 작품의 작가는 이전 이미지를 확 깬다. 매끈하게 반짝이며 반사하는 작품을 선보여온 아니쉬 카푸어 작품이다.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클라우드 게이트', 리움미술관 앞마당에 15m 높이의 73개 스테인리스 스틸공으로 세워진 조각 '큰 나무와 눈'(2009)으로 유명한 작가다. 1954년생 인도 뭄바이 출신으로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 선정되어 주목 받은 아니쉬 카푸어는 ‘21세기 가장 선구적인 작가’로 평가 받는다. 2012년 아시아 처음으로 리움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어 한국에도 알려진 그는 2003년부터 국제갤러리와 손잡고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16년 이후 7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여는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은 팬데믹 시대에 작업한 작품들로 선보인다. 모두가 갇혀있던 시대, 작가로서 '살아있음'의 몸부림이었을까? 붉은 피빛의 회화 작품은 코로나 사태에 작업실에서 몰두하면서 탄생했다. 내면의 욕망이 폭발한듯 강렬하고 표현주의적이다. 유화, 섬유유리 및 실리콘으로 제작돼 날 것의 상태를 구현해 유혈이 낭자한 내장을 연상시킨다. 혐오와 공포감까지 자아내는 탓일까. 물감이 피처럼 터져 캔버스 위에 진득하게 흩뿌려지고 발라진 회화는 묘한 쾌감까지 진동케한다. 마치 엄청난 무력에 의해 그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흐려진 물질의 존재감은 섬뜩하지만 매혹적으로 다가오는게 독특하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붉은색으로 무장해 생의 격렬함을 뿜어내는 작품에 대해 국제갤러리 윤혜정 디렉터는 "아름다움과 잔혹함, 아름다움과 두려움은 늘 공존한다"며 "피빛은 원초적인 생명력, 여성적인 창조의 힘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같은 측면에서 아니쉬 카푸어의 형식 언어를 구축하는 핵심 자원인 붉은색은 생의 맹렬한 숭고미를 일관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피빛 회화'의 흥분감은 그의 대표적인 '검정 작품' 앞에서 다시 침묵하게 한다. '있는데 없는', '보이는데 안 보이는' 블랙홀 같은 검정 조각은 모든 것을 삼키는 '잔혹한 마술'이다.
분명 옆에서 바라보면 삼각뿔이 보이는데 다시 앞으로 가면 평면으로 압착되어 시지각을 어지럽힌다. 빛 뿐만 아니라 모든 소리마저 흡수시켜 각 오브제의 표면에 안착해 '검은 구멍'으로 일체화된다. 빛을 99.6% 흡수해 '세상에서 가장 검은색'으로 불리는 '반타블랙' 덕분이다, 카푸어가 이 물질을 예술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고 있어 '카푸어 블랙'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존과 부재를 동시에 구현하는 '검은 조각'의 있고도 없는 '물질의 비물질화'는 카푸어 작업의 핵심이다. "무언가를 가시화하는 방식에 대한 역사인 반면, 나는 그와 정반대의 일, 즉 무언가를 어떻게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천착했다. 내 작업의 핵심은 무엇이 물질적이며 무엇이 그 물질을 초월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미와 추로 뒤덮은 화화와 조각, 물질성과 정신성으로 가득찬 작가의 작품 세계는 예술의 초월성을 증명하려는 시도다. 자극적이고도 섹시하게 물질의 ‘사이(in-between)'의 상태를 포착해내는 그는 스스로 '조각하는 화가'라고 부른다.
벽에 걸린 4점의 거대한 덩어리 조각도 압권이다. 얇은 천으로 둘러싼 덩어리들은 지질학적 조직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괴물의 해부학적 내장의 모양같기도 하다. 카푸어를 대표하는 색채인 진한 빨강과 검정을 입은 조각 작품들 중 특히 두 점은 '그림자(Shadow)'와 '섭취(Ingest)'라는 제목을 통해 미술과 마술 사이, 괴이함이 소용돌이치는 잔혹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초대한다. 국제갤러리 K1, K2, K3 전 공간에 걸쳐 조각, 페인팅, 드로잉을 망라한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은 K아트의 선전속 K갤러리의 위상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화상과 컬렉터들이 모이는 프리즈서울+키아프서울(9.6~10)기간 '필수 관람' 코스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10월22일까지.
◆작가 아니쉬 카푸어는? 1954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런던과 베니스에 거주 및 활동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베니스의 갤러리 델 아카데미아 디 베네치아와 팔라조 맨프린(2022), 영국 옥스포드 현대미술관(2021), 중국 선전 현대미술 및 도시계획 박물관(2021), 영국 노포크 호턴 홀(2020), 독일 뮌헨 모던 피나코텍 미술관(2020),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펀다시온 프로아(2019), 중국 베이징 중앙 미술관 및 황실 사원 아카데미(2019), 포르투갈 포르투 세랄베스 현대미술관(2018), 멕시코 시티 현대미술관(2016),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2015)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1990년 제44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국 대표 작가로 참여해 'Void Field'(1989)를 선보이며 프리미오 듀밀라(Premio Duemila)를 수상했고, 이듬해 영국의 권위 있는 예술상인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를 받았다. 카푸어의 작품은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주요 상설전시로 소개되고 있으며, 고유한 공공미술은 전세계 곳곳에서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