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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③눈길속 택배노동자…"물건 젖는게 더 걱정"

등록 2024-01-07 07:00:00   최종수정 2024-01-07 1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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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쿠팡 택배기사 김민수씨 동행

겨울, 한파와 눈길에 물량 늘어나 삼중고

눈 오면 상자 젖거나 물건 파손돼 고역

빙판길·계단 등에서 다치는 기사들 다수

시간 맞추려 과자로 끼니·페트병에 용변

"2024년 소원은 노동 환경 개선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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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추위에 입김이 나오던 지난 4일 뉴시스는 쿠팡 택배기사 김민수(가명·35)씨와 함께 배송을 위해 서울 강남구 일대를 누볐다. 사진은 지난 4일 김씨가 배송을 위해 물건을 차에서 내리는 모습. 2024.01.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홍연우 오정우 기자 = 연말연시와 새해 초 추위와 폭설이 휘몰아치는 등 모두에게 추운 겨울이 찾아왔지만, 그 추위가 유독 혹독하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눈 소식이 들리면 근심이 커지는 이들을 만나 함께 일하며 고충을 들어봤다.

추위에 입김이 나오던 지난 4일 뉴시스는 쿠팡 택배기사 김민수(가명·35)씨와 함께 배송을 위해 서울 강남구 일대를 누볐다. 물건을 나른지 한 시간 만에 입술에선 피 맛이 느껴지고, 허리와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빠르게 배송하려 박스 4개를 한꺼번에 들자, 시야가 가려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아찔한 상황도 발생했다.

롱패딩으로 중무장한 시민들과 달리 김씨는 맨투맨에 패딩조끼의 단출한 차림이었다. 그는 "롱패딩은 빨리 걸을 때 걸리적거려 잘 안 입는다"고 했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1년간 신었다는 운동화는 닳아서 양옆이 터져있었다.

택배일을 시작한 지 햇수로 3년차에 접어들었다는 김씨는 숙련된 솜씨를 선보였다. 음료가 든 무거운 박스를 들고도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는가 하면, 택배 상자를 문 앞에 내려놓고 휴대전화로 물건 바코드를 스캔하는데 3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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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입김이 나오던 지난 4일 뉴시스는 쿠팡 택배기사 김민수(가명·35)씨와 함께 배송을 위해 서울 강남구 일대를 누볐다. 사진은 김씨의 배송 차량에 가득 들어찬 택배. 2024.01.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씨의 일과는 하역장(캠프)에서 시작된다. 배달 물량을 차량에 싣고 배송지로 출발한 다음 전달을 배송 완료 후 다시 캠프로 복귀한다. 이 과정을 2번 반복해야 하루가 끝난다. 김씨의 일주일 근무시간은 60시간을 훌쩍 넘긴다.

물건이 모여있는 하역장의 경우, 실내라고 해도 비와 눈만 피할 정도다. 난방기구가 따로 없다 보니 한기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자칫하단 추위에 굳은 허리를 삐끗하기 십상으로, 스스로 몸을 챙기며 일하는 게 최선이라고 김씨는 전했다. 그는 "눈이나 비가 오면 상자가 젖어 더 무거워지고, 파손 우려가 많아서 힘들다"고 귀띔했다.

물건을 무사히 차량에 모두 옮겨 실으면 그때부턴 눈길·빙판길과의 사투가 벌어진다. 눈과 비로 인해 도로에 블랙 아이스가 생기면 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차에서 내려 무거운 상자를 들고 배송지까지 옮기는 것도 녹록지는 않다.

연말연시는 택배 물량이 늘어나는 대목이지만 한파와 눈길로 배송 난이도가 높아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는 게 김씨의 입장이다.

그는 "물량은 늘어나는데, 길에 눈은 쌓이지 않나. 눈이나 비가 많이 오면 길이 얼어 배송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빙판길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실제로 비나 눈이 올 때 다치는 기사들이 많은데, 사고가 나도 다 본인 책임이라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늘어난 물량을 빨리 배송하려다 보니 제대로 된 밥 대신 '버터와플' 등 간식거리로 식사를 때우기에 급급한 모습도 보였다.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하면 페트병에 용변을 볼 때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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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입김이 나오던 지난 4일 뉴시스는 쿠팡 택배기사 김민수(가명·35)씨와 함께 배송을 위해 서울 강남구 일대를 누볐다. 사진은 지난 4일 김씨가 배송을 위해 물건을 차에서 내리는 모습. 2024.01.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추위에 과도한 업무량이 겹치다 보니 몸 이곳저곳이 아프기 일쑤다. 김씨는 이날 오전에도 팔목이 아파 급히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택배 기사들은 근육통과 관절염을 달고 산다"며 "쉬는 날이면 병원을 다녀오기 바쁘다"고 전했다.

그런 김씨의 새해 소망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 그리고 노동 환경 개선이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안 아픈 게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다. 건강이 제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몸이 춥고 아픈 건 그래도 견딜 만하지만, 마음이 추울 때도 있다. 이른바 '과로사방지법'(하루 11시간 이상 근무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아직도 한 주에 60시간 넘게 근무하는 기사들이 많다. 열악한 근로조건과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는 오후 6시께 동행취재를 마쳤다. 이후에도 홀로 수백 개의 물건을 배송한 김씨는 오후 8시를 넘겨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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