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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빛의 미술관 정원] ‘조각’과 ‘정원’을 모두 아우르기까지

등록 2024-02-13 13:36:24   최종수정 2024-02-13 13: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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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혼 미술관과 조각 정원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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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건축가 고든 번샤프트의 허쉬혼 미술관 설계 원작(왼쪽)과 최종 수정본. 내셔널몰을 가로지르던 연못이 축소됐다. (출처=A Garden for Art-outdoor sculpture at the Hirshhorn Museum, Valerie J. Fletcher 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이제는 ‘조각 정원’하면 모두 ‘잘 조경된 야외 미술관’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같은 개념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술을 위한 정원-허쉬혼 미술관의 야외 조각’을 저술한 발레리 J. 플레쳐(Valerie J. Fletcher) 허쉬혼 미술관 선임 큐레이터는 조각 정원의 본류를 멀리 로마시대까지로 본다. 미술품의 감상이 아니라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이상향을 전파하기 위해 제작한 조각에서부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최초의 조각미술관이 들어선 바티칸,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이어 1950년에는 벨기에 앤트워프에 처음으로 야외 넓은 공간에 조각이 들어선 정원이 탄생했다.

이미 미술관급이던 허쉬혼의 그리니치 맨션의 조각품들이 미술관으로 흡수되기 위해선 조각 정원이 필수적이었다.

조각 정원의 포인트는 ‘조각’과 ‘정원’이다. 인간이 만든 창조물을 자연 안에서 만끽한다는 콘셉트다. 자연에 예술이 ‘개입’함으로써 변화가 일어난다. 예술작품의 힘은 이곳에서 나온다. 무분별한 파괴가 아닌 자연과 긴장-조화 관계 속에서 매번 새로운 예술적 접촉과 전달이 일어난다. 허쉬혼의 스타일은 정원을 산책하다가 작품을 하나하나 여유롭게 만나는 쪽이었다.

미국 의회의 승인이 떨어지자 허쉬혼 미술관은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최종 낙점된 설계안은 건축가 고든 번샤프트(Gordon Bunshaft)의 안이었다. 미술관과 조각 정원을 분리하되, 내셔널몰의 잔디밭을 중심으로 맞은편에 위치한 내셔널갤러리오브아트의 조각 정원과 대칭되는 구조다.

허쉬혼 미술관은 미국 근현대작가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유럽의 고전과 근대미술작품을 주로 소장한 내셔널갤러리오브아트와 대응하는 것이 콘셉트였다. 그래서 내셔널갤러리오브아트의 맞은편에 위치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 내셔널갤러리오브아트 조각 정원 안 둥근 연못과 도넛 형태의 허쉬혼 미술관이 서로 조응하고, 그 사이 직사각형 형태의 긴 연못이 자리 잡아 허쉬혼 미술관이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주며, 긴 연못 주변으로 조각이 들어서는 형태였다.

긴 연못을 기준점으로 두개의 원이 마주보는 좌우대칭, 연못은 아래로 깊고 건물은 위로 높은 수직적 대칭까지 완벽함이 느껴지는 원안은 결국 수정됐다. (미국 국가정치의 상징인) 내셔널몰의 상당부분을 근현대미술관이 차지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 허쉬혼이라는 개인에 대한 적대감이 주요 원인이었다. 결국 몰의 잔디밭은 살아남고, 조각 정원이 대폭 축소되는 것으로 최종 정리됐다.

번샤프트는 당시 최신 유행(?)이었던 일본의 젠 스타일을 적극 반영했다. 콘크리트 벽과 비슷한 베이지색 자갈을 깔고, 작은 나무 몇그루만 심은 미니멀한 정원이 탄생했다. 이곳에 원래 설치하려 했던 조각은 100개였으나, 실제 사이즈의 스티로폼 조각을 설치하며 이리저리 자리를 잡아본 결과 75개로 줄어들었다. 조각의 색(청동, 녹슨 청동, 은색 알루미늄, 돌 등)을 고려해 세심하게 골랐음은 말 할 것도 없다.

알렉산더 칼더의 대형 조각과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은 설치를 위해 크레인을 쓰는 등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설치작업이 이어졌다. 가끔은 헬리콥터가 동원되기도 했다.

1974년 일반에 공개된 뒤, 이전의 비난 일색이던 여론은 쏙 들어갔다. 첫해 관람객만 200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대단한 성공이었다.

관객들은 젠 스타일의 조각 정원과 미술관에 찬사를 보냈다. 동시대 가장 핫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볼 수 있고, 심지어 그것이 국립미술관이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자갈로 마감한 조각 정원은 이후 1977년 수목이 대폭 강화됐다. 땡볕 더위가 매서운 워싱턴의 여름을 나무 그늘도 없이 견디는 건 강제 고행과 같은 처사였으니까. 나무 군단들 덕에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엔 그늘이 져, 관람객 편의가 크게 좋아졌다. 그러나 이전처럼 열린 공간에서 여러 작품을 한 눈에 보며 그들 사이의 긴장감이나 상호작용을 느껴보는 건 조금 약해졌다. 숲에서 산책하듯 길을 돌아야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됐으니까.

(다음번에 5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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