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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고마워 여기까지야 '로봇 드림'

등록 2024-03-13 06:04:00   최종수정 2024-03-18 11: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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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애니메이션 영화 '로봇 드림'(3월13일 공개)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연인이거나 친구일 수도 있고, 짧게 알았던 사람이거나 오래 알았던 사람일 수도 있다. 꼭 사람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이들에겐 개나 고양이일지도 모른다. 내 삶의 한 시기를 함께했으나 지금은 같이 하지 않는 존재들 말이다. 이 귀엽고 따뜻한 영화는 그런 이들과 맺었던 관계를 향해 미소 짓는 것만 같다. 너와 함께 있을 때 행복했다고, 네 덕분에 내 삶이 빛났다고, 너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로봇 드림'은 이별에 관한 얘기다. 다만 이 이별은 실패한 관계가 도달한 종착점이 아니라 종료된 관계가 지나가는 정거장일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울지 않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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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그래픽 노블리스트 사라 배런이 2007년 내놓은 동명 그래픽노블을 영화로 만든 '로봇 드림'은 두 주인공 도그와 로봇의 만남보다 헤어짐을 더 오래 담는다. 말하자면 이 영화가 담아내려는 건 접촉하는 순간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이 아니라 제대로 결별하기 위해 꾸준히 오래 진행돼야 할 디톡스다.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은 이별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말하지 않는다. 도그와 로봇의 이별은 만나지 못하게 된 뒤 이들이 서로가 없는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가는 시간들이다. 도그와 로봇은 상대가 나오는 꿈을 꿀 정도로 그리워 하고, 외로워 하며, 그러면서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맺으며, 여전히 애달파하면서 서서히 멀어져 간다.

'로봇 드림'은 정확한 그림을 보여주고 음악과 음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만남이 가져온 짧은 환희와 이별이 불러오는 오랜 아픔을 대사 하나 없이 그려가는 게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다. 이 영화는 과장된 표현이 담긴 말로 감정을 과장하는 법이 없다. 일례로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도그의 모습엔 헤어지는 일의 지난함이 이미 있고, 움직이지 못하기에 시간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로봇의 모습엔 이별의 적적함이 있다. 그 시선이, 그 몸짓이, 그 행위가 때론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때가 있고, '로봇 드림'은 그런 순간을 예민하게 포착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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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드림'의 배경과 주제곡은 이 영화가 얘기하려는 것을 벌써 녹여내고 있다. 1980년대 뉴욕의 모습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때 그 시절 문화와 당시 사람들의 패션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낸 것은 돌이킬 수 없지만 우리가 한 때 사랑했던 뉴욕을 계속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도그와 로봇이 행복했던 그들의 한 시절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두 유 리멤버'(Do You Remember)라고 노래하는 원스원드앤드파이어의 '셉템버'(September)가 영화 전반에 울려 퍼지는 건 다소 노골적이긴 해도 싫어할 수 없는 선택이다. 베르헤르 감독은 "행여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 가족을 잃더라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그들은 우리 안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고 했다.

꿈에서 수도 없이 도그의 아파트를 다시 찾아갔던 로봇은 막상 실제로 도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그를 외면한다. 도그의 손에 다른 로봇의 손이 쥐어져 있는 것에 실망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도그가 다른 친구와 함께하고 있는 것처럼 로봇 역시 이제 다른 이의 손을 잡고 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그때의 도그가, 그때의 로봇이 아닐 뿐이다. 그 시절 도그도, 그 시절 로봇도 없다. 그와 로봇이 동행한 한 시절은 이제 노래로, 그 노래에 맞춰 추던 춤으로 남았다. 뉴욕에 사는 한 도그와 로봇은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알은체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속으로 '고마웠다'고,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만 건넬 것만 같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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