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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 증원' 찬성 vs 반대 vs 속도 조절…세 가지 시선[의사공백②]

등록 2024-03-17 13:02:00   최종수정 2024-03-18 14: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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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2000' 찬반 논란 한달 넘게 지속

의료공백 장기화로 국민 피로도 증가

"의정 타협점 마련해 의료개혁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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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이탈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지난 12일 서울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03.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정부가 지난달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을 밝힌 후 '숫자 2000'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의사들은 "원점 재검토" 또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시민사회, 환자, 간호사 등은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공의 미복귀 사태로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시기나 규모 등을 조정한 중재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전공의협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의대학장 등은 "의대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대증원 반대 측은 의대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증원 규모 확정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가 부족했다고 보고 있다. 의협과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28차례 만났지만, 증원 규모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안덕선 고려의대 명예교수는 "정부가 의료서비스를 공급하거나 직접 환자와 만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초기부터 이해당사자들과 끊임없는 논의를 거쳐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하고 공청회도 열어 의견을 수렴해야 했다"고 말했다.

의대증원 선결과제로 제시했던 의료수가 정상화,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의료사고처리특례법) 등 필수의료 유인책이 미흡해 필수의료 살리기라는 의대증원 취지도 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성근 여의도성모병원 외과 교수(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는 "고위험·고난도 수술의 수가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처럼 지역·진료과·질환에 따라 진찰료를 차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형사기소 건수는 일본의 260배이고, 업무상 과실치사로 인한 기소 건수 영국과 비교해 218배 많다"면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한 특례법은 입법 사항이여서 될까 모르겠다. 피해자 권리구제의 경우 국가책임 부담제가 빠져 있다"고 했다.

단번에 의대정원을 2000명 늘리면 의학교육의 질적 하락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태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는 "해부학은 시체당 몇 사람이 달라붙어 공부하느냐에 따라 실습의 질이 달라지는데, 지금도 해부용 시체가 모자라는 대학이 많다"면서 "시체 수가 모자라는 상태에서 학생 수가 확 늘어나면 실습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 길병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과거와 같은 강의식 수업은 3분의1 정도이고, 나머지는 조별 실습이나 실험 등을 차지해 수업 방식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면서 "필수의료 쏠림 현상이 기초의학 분야에도 있어 해부학 같은 기초의학을 가르칠 교수 수급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대 증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정부가 의대증원 근거 자료로 제시한 보고서 3개의 저자(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들은 의대증원 속도조절을 제안했다.

홍 교수는 "같은 보고서라도 의사의 은퇴시점, 생산성 등을 조정하면 미래 필요한 의사 숫자가 상당히 달라져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주치의 제도(동네 단골병원에서 평생 진료를 받는 형태)를 시행한다는 전제 하에 추계하면 2035년 3337명 또는 2637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2035년 의사 1만5천 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는데, 의료제도 변화를 통해 의사 공급 부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등 20개 의대로 구성된 전국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의대 증원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규모를 2000명으로 확정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과학적 검증이 부족하고 한 번 늘어난 인원은 다시 조정하기 어렵다"며 의대 증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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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전공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되고 있는 12일 대구의 한 상급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2024.03.12. [email protected]
방재승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협, 여·야, 국민대표, 전공의, 교수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대화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증원을 1년 후 결정할 것"을 정부에 제안했다.그러면서 "3월 말까지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오지 않으면 정상 진료가 불가하며 결국 대한민국 의료는 파국을 맞는다. 이 정도면 시국 선언을 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주요 대형병원 3곳 등 전국 20개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사태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오는 25일 이후 대학별로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정부의 의대생 유급 조치와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 등이 임박하면서 의대 교수들의 사직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시민사회, 환자, 간호사 등은 의대증원에 찬성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는 "의사가 늘어나면 파행 진료를 겪고 있는 곳에 필요한 의사 인력을 배치할 수 있게 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의사 자격이 없는 의료인들이 수술·시술·처치·처방·설명·회진 등을 대리하는 의료 현장의 불법의료를 막을 수 있고, 의료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미래 의료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의사 인력 규모를 예측해 의대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는 "고령화 등으로 인한 의료서비스 수요 증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의료노조와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는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 나섰다.

정부의 의대증원에 찬성하는 여론이 아직 우세하지만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최근 기류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 지난달 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 대상)결과를 보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에 대해 '정부안대로 2000명 정원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47%)는 응답률과 '규모와 시기를 조정한 중재안을 마련해야 한다'(41%)는 응답율이 엇비슷했다. '정원을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6%였다.

의사들의 반발과 의료 공백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는 49%,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38%였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의료계와 정부의 강대강 대치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국민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계와 정부가 대화를 통해 중재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이번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면서 "정부가 강경 대응 기조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의료계와)타협점을 마련해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진짜 의료개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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