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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독일도 의대정원 늘려왔는데…확대하는 이유 무엇?

등록 2024-03-31 09:01:00   최종수정 2024-03-31 11: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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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인터뷰

"英·獨, 의사 해외 유출·장롱 면허 심각"

"주먹구구식…신뢰회복·원점 재검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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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정치학 교수가 지나달 2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3.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정부는 의대 2000명 증원 논리 중 하나로 영국·독일 등 선진국의 의대 증원 사례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국가별 상황과 의료시스템, 의대정원 논의 과정 등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9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 있다. 반면 독일은 2020년 기준 9458명인 의대정원을 매년 5000명씩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영국은 의대 정원을 현재 9500명에서 2031년 1만5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나라별로 속사정이 있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학 정치학 교수는 지난 27일 뉴시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국과 독일은 각각 의사의 해외 유출과 장롱면허 문제가 심각한 데 따른 의사 부족으로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정부와 학계에 두루 몸 담아온 사회과학 전문가다. 최근 사회과학 측면에서 흥미로운 주제인 의대 증원과 관련된 갈등들을 목격한후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평소 의료 문제에 대해 학문적 관심이 많았던 데다 2000년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한 후 외교관으로 15년간 근무하면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 해외 의료시스템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장 교수와의 일문일답.

-영국에서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국은 의사 유출이 심각합니다. 매년 약 5000명 내외의 의사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죠. 영국의 의대 졸업생이 현재 매년 대략 7500명인데, 의대 졸업생 대비 약 65% 정도 되는 숫자의 의사가 매년 영국을 떠나고 있는 겁니다. 영국의 의사면허 관리 및 의대 인증 관리기구인 제너럴 메디칼 카운슬(General Medical Council)의 인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21년 5월~2022년 5월) 4843명의 의사가 영국을 떠났습니다. 주로 호주, 캐나다 등으로 이주했는데요. 특히 호주의 경우, 전문의 평균 연봉이 영국의 2배(약 4억원)인 데다 항공료, 이주 비용 등까지 전액 지원 받을 수 있어 선호도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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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정치학 교수가 2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3.28. [email protected]
-영국의 의대 정원 관련 논의의 구조와 진행은 어땠나요?

"영국은 의대 정원 증원 문제 관련 매우 오랫동안 광범위한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2018년 영국왕립의사회(Royal College of Physicians)에서 의대증원과 관련된 첫 입장을 낸 후 의대증원 계획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2021년 영국의대협의회(Medical Schools Council) 보고서를 통해 의대정원 규모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됐고, 이듬해 의사들의 설득 노력이 하원 보건복지위, 야당인 노동당에까지 확대돼 결국 동조를 얻어냈죠. 결국 지난해 영국 정부와 국민건강공단(NHS: National Health Service)이 이들의 의견을 수용해 발표한 장기 인력 확충 계획이 나왔습니다."

-영국에서는 의대 증원 규모를 어떻게 결정했나요?

"의대 정원 증원을 의사들과 의대 측에서 먼저 요구했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릅니다. 또 반대로 의대 정원 증원에 난색을 표한 것은 집권 보수당 정부였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볼 수 있죠. 영국의 의사들이 사실상 공무원이고 영국이 극심한 의사 해외 유출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영국에서는 의대 정원 증원을 논의할 때, 의대 정원 관련 필요한 예산, 늘어난 의대 정원을 기존 의대가 수용할 수 있는지 여부, 의대 정원을 연도별 단계적으로 어떻게 점진적으로 늘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까지 매우 세심하게 고려되고 있습니다.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예산 추가 투입도 아주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돈은 모두 영국 정부와 국민건강공단이 부담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의대 증원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일의 경우 실제 활동하는 의사 수가 1990년 23만7700명에서 2022년 42만1300명으로 약 1.7배 늘어나는 동안 장롱 면허(면허만 있고 실제 활동은 하지 않는 의사)는 5만 1400명에서 13만6200로 약 2.6배 늘어났습니다. 독일에서 의사는 사실상 공무원으로 월급이 작고 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엄격히 규제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의사면허를 따고도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죠. 의대 교육이 사실상 무료인 독일에서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의사를 양성해도 장롱면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재정 낭비만 커질 것입니다."

-영국과 독일에서 실제 의대정원이 늘어날까요?

"의대생 교육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이 예상되는 의대 및 부속병원 신설 계획들을 생각해 볼 때 과연 의대 정원 확충 계획이 실행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영국은 의사 1명 양성에 약 20-23만 파운드(한화 약 4억)가 들어갑니다. 5천 명을 증원하면 매년 대략 2조원이 더 필요한 셈이죠. 영국의대협의회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요구하면서 내놓은 보고서의 핵심은 사실 이 예산을 모두 영국 정부와 국민건강공단이 추가 투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의사들이 대부분 사실상 공무원이 돼 정해진 임금과 연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국 정부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5천 명을 늘리기로 한 것은 연방정부의 결정입니다. 의대는 주정부 예산으로 운영 설립되기 때문에 주정부의 예산 확보 여부를 지켜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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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정부의 의대 정원 배분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지난달 25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03.25. [email protected]

-정부는 국민의 압도적인 의대증원 찬성을 기반으로 정책을 추진 중인데요.

"다른 나라 국민들도 대부분 의사가 많아지면 의료 서비스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사 수를 늘리되,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고 하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요? 질문을 바꾸면 답이 달라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의료개혁의 기초로 삼는 것은 무리입니다."

-대화의 국면으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3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의료계와 정부 간 신뢰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공의들을 끌어들여 논의의 장을 만들기 힘듭니다. 의사들이 생명을 저버린다고 몰아가니 감정이 많이 상한 상태입니다. 둘째, 의대증원 의사결정 구조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점진적으로 가야 합니다. 셋째, 비용도 꼼꼼히 따져가면서 계획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가 오래가면 대형병원이 줄도산하고 직원들은 직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의사는 특권층이라는 인식이 강한데요. 그래서 정부와 국민 대 의사의 대립 구도가 형성돼 있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나 이기적이라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런데 저 역시 이번 학기에 70명 정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이 갑자기 4배 늘어 280명을 가르치라고 한다면 교육의 질을 유지할 자신이 없습니다. 또 피부과, 성형외과 같이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이 꼴보기 싫으니 의대증원 늘려야 한다는 것도 어폐가 있습니다. 이런 진료들은 정부가 지원해 준 것이 아니고 개인이 원해서 전액 자비로 의료비를 지출한 것이기 때문이죠. 또 그런 분야는 경쟁이 극심하다는 단점도 있고요. 일부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번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것은 집에 빈대가 나왔다며 집을 불태우는 것과 똑같습니다. 일부 의사들의 수입을 낮추기 위해 전체 의사 수를 급격히 늘리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닙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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