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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필로 드로잉 회화…김홍주 "AI시대에도 아날로그 회화 존재"

등록 2024-04-11 10:08:48   최종수정 2024-04-15 15: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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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김홍주 드로잉전시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내 그림은 넓은 유화 물감 붓으로 하면 그리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동양화에서 쓰는 아주 끝이 가는 세필을 썼는데, 천에 세필이 닿으면서 오는 묘한 감각이 있더라고요.”

성곡미술관에서 연 김홍주(79)드로잉전은 회화를 드로잉의 관점에서 바라본 전시다.

드로잉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숯, 흑연 등을 종이 위에 그으며 시각적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가장 단순하고 효율적인 그리기 수단이었다. 특히 드로잉의 전통적 역할은 본 회화 작업을 위한 스케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드로잉은 종이 표면에 그려진 선들과 그리는 사람의 감각을 즉시 이미지로 옮길 수 있는, 아이디어에 대한 작가의 자유분방한 정신이 투영된 즉흥적 미완성의 회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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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주 드로잉 전시 *재판매 및 DB 금지

텅 빈 캔버스 위에 세필로 그린 모호한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는 김홍주의 ‘드로잉 같은 회화’, 또는 ‘회화 같은 드로잉’의 절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세필의 가는 선과 점을 무한히 반복하여 겹겹이 쌓아 올리며 작업한다. 세필의 그리기는 화면의 천이나 종이와 부딪히며 특별한 감각을 창조해 내는데, 그어진 선들과 지워진 것들, 문질러 드러나는 얼룩 등과 같이 드로잉 고유의 감각과 동일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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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주 드로잉전  *재판매 및 DB 금지

김홍주의 독특한 그림 그리기는 전통 회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다. 색채의 콘트라스트라든가 원근화법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재를 재현하거나 심상을 표현하는 데 골몰하지도 않는다.  드로잉만으로 작품을 완성하게 되면 회화는 전통적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회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다.

성곡미술관은 "작가가 드로잉만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경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리 흔치 않다"면서 "그럼에도 김홍주는 수십 년 동안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에 머무름으로써 ‘드로잉으로서 회화’, ‘회화로서 드로잉’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이중성’ 혹은 ‘확장된 모호성’은 단순히 한 시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류하는 핵심 요소다. 김홍주가 드로잉을 닮은 자신의 회화에 대해 “나의 작품은 항상 미완성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의 작업은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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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주 드로잉전 *재판매 및 DB 금지



겹겹이 중첩된 수백 수 천개의 선들을 통한 시각적 모호성은 ‘촉각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그림을 감상할 때는 항상 멀리서 전체를 보고, 다시 가까이 다가가 세밀한 부분을 관찰해야 한다. 관람객 스스로 창작자가 되어 자신의 감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림이다.

선의 세계에서는 안과 밖이 없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며, 공간의 구분이 있을 리 없다. 소리와 시간처럼 존재하면서 사라지고, 있음과 없음의 구분도 사라진다.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의 차이도 불명확하다.

'드로잉 회화', 미치도록 그리기에 몰두하며 손맛 나는 그림을 계속 그리겠다는 작가는 "인간의 삶도 이와 같은 것"이라며 “인공지능이 지배하게 될 미래에도 인간의 상상력과 생명을 느끼게 하는 아날로그 회화의 역할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시대의 미술이란 어마어마한 스펙터클이 아닌 가장 사적이고 인간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전시는 5월19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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