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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대가 동시에 '펑'…레바논 '삐삐 폭발' 어떻게 가능했나

등록 2024-09-19 11:12:59   최종수정 2024-09-19 11: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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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서 이틀 연속 호출기·무전기 동시 폭발

헝가리서 제조된 대만社 제품 추정…서로 부인

항구서 운송 대기 중 폭발물 심었을 가능성도

이스라엘 논평 거부…"탁월한 성과" 시인 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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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벡=AP/뉴시스] 레바논에서 무선 호출기(삐삐) 수천대와 무전기가 동시 폭발하는 초유의 공격이 감행되면서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18일(현지시각) 레바논 동부 바알벡 한 주택에서 폭발한 무전기. 2024.09.19.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레바논에서 무선 호출기(삐삐) 수천대와 무전기가 동시 폭발하는 초유의 공격이 감행되면서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호출기가 공격 무기로 사용된 과정을 두고 진실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며 보복을 예고했다.

18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을 종합하면 헤즈볼라는 지난 17일 오후 3시30분께 조직원들이 소지하고 있던 호출기 여러 대가 동시 폭발했다고 밝혔다.

생존자들은 폭발 약 5초 전 호출기에서 신호음이 울리고, 화면에 일련의 숫자가 표시되는 걸 보고 들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신형 호출기에 폭발 장치가 심겨 있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초기 평가했다.

다음날 발생한 무전기 폭발은 전날보다 더 큰 규모의 피해를 줬다. 레바논 보건부는 폭발로 20명이 사망하고 450명 넘게 다쳤다고 발표했다. 전날 호출기 폭발로는 12명이 사망하고 2800명가량이 다쳤다. 사망자에 어린이 두 명도 포함됐다.

이란 국영 TV는 모즈타바 아마니 주레바논 이란 대사가 부상을 입었지만, 의식이 있고 위중하진 않다고 전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대원 일부가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이란은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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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돈=AP/뉴시스] 18일(현지시각) 레바논 남부 시돈에서 무전기 폭발로 추정되는 피해를 입은 휴대전화 상점 밖에 레바논 소방관과 군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 2024.09.19.

◆헤즈볼라 "스마트폰, 이스라엘 공격에 노출"…올해 초 호출기 도입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7일 가자지구 전쟁 발발 계기로 이스라엘과 전쟁을 선언한 뒤 내부 통신에 무전기와 호출기를 사용해 왔다. 기존 통신망이 이스라엘 공격에 취약하다는 판단이었다.

지난 2월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는 스마트폰이 이스라엘 감시나 표적 공격에 사용될 수 있다며, 요원들과 그 가족에게 휴대전화를 버리라고 명령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나스랄라 지시 이후 호출기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18일 폭발한 무전기는 호출기보다 작은 규모의 대원들에게 배포됐다. 폭발력은 호출기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배송된 새 배터리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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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AP/뉴시스] 레바논에서 동시다발 폭발한 무선 호출기를 제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헝가리 회사의 부다페스트 본사 건물 앞에서 18일(현지시각) 현지 언론이 취재 중인 모습. 2024.09.19.

◆대만社 "외국 회사가 만들었다" vs 헝가리 "우리나라서 안 만들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이번에 동시다발 폭발한 호출기는 대만의 골드아폴로사 제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골드아폴로는 1995년 설립된 저가 전자제품 제조사다. 타이베이 교외에 위치한 40명 규모 회사다. 카페 등에서 사용되는 진동벨이 대표 제품이다.

골드아폴로 측은 사건 직후 성명을 내 해당 호출기를 생산하지 않았으며, 약 2년 전 자사 브랜드와 상표를 라이선스한 외국 회사에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발표한 성명에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등록된 회사 BAC 컨설팅 Kft에서 설계하고 제작했다고 했다. 해당 회사는 2022년 등록된 회사로 사이버 보안, 통신, 보석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소개했다.

헝가리 정부는 즉각 해당 회사가 헝가리에 제조·운영소를 두고 있지 않으며, 레바논에서 대량 폭발한 호출기도 헝가리에 없다고 부인했다.

대만 경제부는 골드아폴로가 올해 1~8월 약 4만1000대를 포함해 2022년 이후 약 26만 대의 호출기를 수출했다고 발표했다. 레바논에 직접 수출한 기록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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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AP/뉴시스] 18일(현지시각)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무선 호출기 폭발로 숨진 4명의 시신이 든 관 중 하나를 옮기고 있다. 2024.09.19.

◆헤즈볼라 "이스라엘이 폭발물 심었다"…항구 대기 중 조작 가능성도

헤즈볼라는 예비 조사를 토대로 이스라엘 스파이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레바논으로 배송되는 호출기를 가로채 작은 폭발물과 부품을 포장한 뒤 동시에 폭발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틀랜타의 사이버 보안 회사 에라타 시큐리티 최고 경영자 로버트 그레이엄은 해커가 악성 코드가 포함된 페이지로 호출기 내부 배터리를 폭파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분석했다.

이 작전이 가능해지려면 해커가 호출기 제조업체와 모델을 알아야 하며, 영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강력한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보다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는 제조업체에서 보낸 호출기가 목적지로 가는 도중 악성 코드와 함께 내부에 폭발물을 넣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엘리야 마니에르 벨기에 군사·정치분석가는 헤즈볼라가 조달한 호출기를 제삼자가 소유했고, 레바논으로 수출을 기다리며 3개월 동안 항구에 머문 뒤 운반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이 3개월 동안 이스라엘 측이 호출기에 폭발물을 심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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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AP/뉴시스] 18일(현지시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아메리칸 대학병원 앞에서 휴대용 호출기 폭발로 다친 피해자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다. 2024.09.19.

◆헤즈볼라 보복 예고…이스라엘 "군·정보기관, 탁월한 성과"

헤즈볼라와 레바논 정부는 공격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 보복을 예고했다. 공격 경위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지시했으며, 호출기 조달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부 협력자 여부도 조사 중이다.

레바논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한 긴급회의를 개최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기술 전문가에게 레바논 통신망 점검을 요청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건 관련 언급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일반적으로 해외 작전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한 고위 관료는 첩보기관 모사드가 이번 공격에 관여했냐는 FT 질문에 윙크 이모티콘으로 답했다.

다만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북부 라마트 다비드 공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스라엘 작전임을 시인하는 듯한 암시를 보냈다.

갈란트 장관은 "전쟁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며, 이스라엘 방위군 및 정보기관 신베트와 모사드가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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