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뜨겁게 뜨겁게 안녕 '대도시의 사랑법'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단점이 있다. 한계도 명확하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10월1일 공개)의 약점을 찾아내 비판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가는 건 우리가 그 시절 구재희였고, 장흥수였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이들처럼 특수한 관계는 현실엔 거의 없다. 재희의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흥수와 같은 성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처럼 열렬했고, 그들만큼 움츠러들었고, 그들처럼 막무가내였고, 그들 못지 않게 외로웠고, 그렇게 사랑했고, 또 슬펐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 시절과 뜨겁게 작별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너가 너인 게 왜 약점이 되냐"며 너무 젊어서 힘들었고 지금도 그 젊음 때문에 고달픈 이들을 지지한다. 냉철한 조언이 절실할 때도 있지만, 덮어놓고 안아주는 품은 어떤 말로도 당해내지 못하는 법이다. 박상영 작가가 2019년 내놓은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 단편 '재희'를 밑바탕 삼은 이 영화는 자기 자신을 거침 없이 드러내며 자유 연애를 추구하는 여성 재희(김고은)와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탓에 모든 면에서 자신을 숨기기 바쁜 흥수(노상현)가 13년 간 동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탐정:리턴즈'(2018) 등으로 주목 받은 이언희 감독은 흔히 얘기하는 청춘성장물이라는 큰 틀 안에 젠더 이슈와 성소수자 문제에서 파생하는 갖가지 주제를 아우르며 시종 경쾌하게 극을 밀어 붙인다. 독특한 설정 아래 있지만 각기 다른 유형의 아웃사이더가 뒤엉키며 발생하는 에너지가 동력원이라는 건 관습적이고, 이들의 세월을 채운 에피소드 역시 전형적이다. 젠더와 성소수자에 관해 얘기할 때도 깊이보다는 폭을 택한 탓에 원작만큼 냉철하고 날카롭지 못하다. 그래서 어떤 대목에선 과도하게 판타지스럽기도 하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상투와 경박을 일단 배우 김고은으로 돌파한다. 이 작품 성패는 결국 보는 이들이 재희와 흥수에 자기 자신을 얼마나 대입해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대중적인 캐릭터인 재희를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게 중요하다. 김고은은 자칫 호감을 얻기 어려울 수 있는 이 인물의 특징을 특유의 감성 안에 담아 설득하고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관객은 재희가 무너질 땐 같이 울게 되고 그가 다소 공격적일 때조차도 함께 박수 치게 된다. 물론 김고은 연기가 뛰어나 보이는 데는 이 작품 특유의 감 좋은 대사도 한몫 한다. 올해 초 '파묘'로 새삼 연기력을 증명한 김고은은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독보적인 자리에 서게 될 거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관객에게 낯선 배우인 노상현은 짧은 경력이 무색한 빼어난 연기로 김고은과 어우러진다. 뻔뻔하다는 건 '대도시의 사랑법'이 가진 또 다른 무기다. 다시 말해 이 감독은 의도치 않게 어설퍼진 게 아니라 작정하고 유치해진다. '미씽:사라진 여자'(2016)로 여성 관객 지지를 받은 적 있는 그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의 무게를 모를 리는 없다. 다만 '대도시의 사랑법'은 더 많은 관객을 포섭하기 위해 쉽고 직관적인 화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비록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더 재밌고 유쾌하게 얘기해야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들을 관객 입에 더 편하게 오르내리게 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한 선택 같다. 그러면서도 재희 에피소드 중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부러 넣은 것, 흥수 에피소드 중 꼭 보여주지 않아도 될 장면을 놓치지 않고 삽입한 건 이 영화가 무엇을 지지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때론 과감해 보이기도 한다. 흥수가 재희 결혼식에서 미쓰에이의 '배드 걸 굿 걸'을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은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낯부끄럽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보게 된다. 재희가 흥수에게 달려가 함께 춤추는 순간엔 결국 이들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관객이 딱 그런 마음을 갖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아무리 암담하고 아무리 부끄럽고 아무리 서툴렀어도 그 시절을 외면할 수 없는 건 그게 나였기 때문이라고. 그 만만치 않은 시절을 지나는 중이고, 지나왔기 때문에 너와 내가 여기 있는 거라고. 그 수많은 연애가 있었기에 재희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만나게 됐고, 그 오랜 시간 나를 숨기는 데만 급급했기에 흥수는 이제는 나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글을 쓰기 시작헸다. 두 사람의 동거가 끝난 건 재희가 결혼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원하던 걸 손에 넣어 인생의 한 챕터를 끝냈기 때문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