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변하지 않은 봉준호는 그래도 변한다
봉준호 새 영화 '미키17'로 28일 공개돼"기생충 후 새 영화 부담감 느끼지 않아""내 작업 방식 생활 방식 모두 그대로다"근미래 배경 소모품이 된 청년의 이야기"짠내나는 청년 미키 입장 돼 만든 얘기"원작 에드워드 애쉬턴 작가 소설 '미키7'"이번에 첫 멜로…가장 공들여 연출했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작업 방식도 변하지 않았고, 생활 방식도 변하지 않았어요. 지금껏 해온 그대로 쭉 해서 나온 결과물이 '미키17'인 겁니다." 유럽 최고 권위를 가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미국 최고 권위를 가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을 받았다. 같은 영화로 유럽과 미국을 석권한 감독을 찾으려면 195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델버트 만 감독은 '마티'로 그 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이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차지했다. 봉준호(56) 감독은 만 감독 이후 이 기록을 세운 두 번째 예술가였다.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로는 최초였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봉 감독은 말 그대로 역사를 새로 썼다. 이제 모두가 그를 이 시대 최고의 감독이라며 추어올린다. 한국에 온 할리우드 스타들은 입을 모아 "봉 감독과 일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전 세계 관객이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기생충'으로 상을 받았을 때 만 50세였어요. 좋은 사건이 벌어진 거죠. 비교적 침착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사석에서 얘기를 나누는데, 그 양반이 '펄프픽션'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고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받았던 게 31살이었대요. 참 좋았는데 힘들었다고도 하더라고요. 전 이미 20년 간 연출을 하고 나서 50세에 그런 상황을 마주해서 그런지 차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딱히 프레셔를 느끼진 않았어요. 평소 하던대로 했고, 순탄하게 새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봉 감독의 새 영화 '미키17'(2월28일 공개)은 순제작비(홍보 비용 등을 제외하고 영화를 만드는 데만 쓴 비용) 1억1800만 달러(약 1700억원)를 썼다. 전작 '기생충' 제작비는 135억원이었다. '미키17' 이전 봉 감독 영화 중 가장 큰 돈이 들어간 작품은 '옥자'(2017)였다. '옥자'에 5000만 달러가 투입됐으니까 이전에 만든 적 없는 대형 영화를 만든 셈이다. 봉 감독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고 말했다. "그 규모를 체감한다거나 규모 때문에 압박을 받지도 않았다"고 했다. "프로듀서에게 물어봤어요. 제가 정확히 얼마를 쓴 거냐고요. 1억1800만 달러를 썼대요. 이 영화에 허락된 돈이 1억2000만 달러였어요. 아주 딱 맞게 쓴 거죠. 제 원래 작업 방식 그대로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그걸 바탕으로 스토리 보드를 만들고요. 스토리 보드대로 찍는 거죠. 평소대로, 제게 주어진 예산과 일정 안에 완성한 겁니다. 이 작품은 영국 런던에서 찍었는데, 대부분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런던 날씨에 영향을 받지도 않았어요. 할리우드 배우 파업 사태로 개봉 일정이 엉켜버린 것 말고는요."
봉준호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봉준호 영화도 변하지 않았다. '미키17'은 2054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키라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 미키는 사채를 써서 요식업을 시작했다가 사업이 망하면서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고, 자칫 하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지구를 떠나는 우주선에 탑승한다. 다만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미키는 익스펜더블이 된다. 익스펜더블은 말 그대로 소모품. 인간 프린팅 기술을 통해 미키는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일에 투입되며 16번 축고 17번 다시 프린트 된다. 이 일이 아니면 우주선에 탑승할 수 없었기 떄문에 어쩔 수 없다. '미키17'은 에드워드 애쉬턴 작가가 2022년에 내놓은 장편소설 '미키7'이 원작이다. 원작에서 인간 프린팅이라는 설정은 그대로 가져왔지만, 그 외 것들은 이른바 봉준호화(化) 됐다. 소설에서 역사학자였던 미키가 영화에서 어리숙하고 찌질한 청년이 된 게 대표적이다. 이 짠내 나는 노동자 계급 남성이 주인공이 되면서 지적인 SF소설은 "발냄새 나는, 사람 냄새 나는" SF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그간 봉준호 필모그래피를 관통해온 공통 키워드인 계급·자본·혐오·압제·변혁 등이 빠짐 없이 담겨 있고, 봉준호 특유의 유머도 여전하다. "제 영화가 도달해야 할 지점 혹은 목표점이라는 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제 영화가 도달하는 점이 있는 것 뿐입니다. 출발점은 이 미키라는 청년이죠. 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얘는 어떤 게 가장 힘들까, 이런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보면 어떤 큰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겁니다. 미키 같은 착한 애가 있으면 마셜 같은 빌런도 있는데, 얘는 어떤 독재자일까, 얘를 누가 지지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겁니다. '기생충' 때도 똑같았어요. 최우식 배우가 연기한 기우는 결국 반지하에 갇힌 채 봉인돼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결론 역시 앞서 말한 과정을 똑같이 거쳐 그런 결과에 도달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미키17'이 이전 봉준호 영화를 답습하는 건 아니다. 봉 감독은 이전에 보여준 적 없는 이야기를 끌어들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한다. 앞서 봉 감독이 만든 영화 7편에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사랑이 나오고, 이 사랑은 '미키17'을 희망이 완연한 장소로 미키를 이끈다. 가혹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이던 봉 감독 전작들의 결론과는 정반대다. 봉 감독은 이런 변화에 대해 "미키를 이미 16번 죽였는데 또 죽일 순 없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저도 50대가 되고, 미키가 제 아들 나이 정도 되니까…저도 마음이 약해진 것 같아요.(웃음) 처음부터 이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미키의 처지를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니까 이번엔 그럴 수 없더라고요. 미키가 파괴되지 않기를 바랐어요. 수도 없이 죽어야 했던 미키가 파괴되지 않을 수 있는 건 나샤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죠. 그가 처한 상황은 정말 가혹하지만 나샤가 있기에 견뎌낼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SF라는 장르를 잘 살려내는 것보다 두 사람의 사랑을 잘 담아내는 것이었어요." '미키17'은 지난주 영국 런던 시사회에 이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 그리고 나서 지난 17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 관객을 맞이했다. 반응은 갈린다. 인디펜던트·인디와이어 등은 "역시나 봉준호스러운 영화"라며 호평했지만, 가디언·할리우드리포터·버라이어티·BBC 등은 "실망스럽다"고 했다. 봉 감독은 "영화를 다 만들면 그 순간부터 이미 내 손을 떠난 거다"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영화가 어떤 부침을 겪는지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봉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제 주 업무는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겁니다." 봉 감독은 차기작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준비 중이다. 자연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자 작가인 클레르 누비앙이 2006년 내놓은 책 '심해'가 바탕이 된 작품이다. 논픽션인 '심해'는 수심 6000m에서 촬영이 가능한 탐사로봇 등으로 찍은 심해해양생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봉 감독 애니메이션 역시 심해 생물을 다룰 거로 예상된다. 이 영화는 내년 말 또는 2027년 초 공개 예정이다. 봉 감독은 인터뷰 사이 쉬는 시간에도 이 작품을 함께 만들고 있는 이들과 소통하며 계속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저 제 영화를 오해 없이 편견 없이 봐주길 바랄 뿐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