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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그런 거지" 30주년 크라잉넛, 韓 인디신의 현재진행형 고고학

등록 2025-03-03 08:43:26   최종수정 2025-03-10 09: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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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30주년 기념 릴레이 인터뷰 ④]

인디 신 대표곡 '말달리자', 여전한 영향력

한경록·김인수·박윤식·이상면·이상혁 멤버 교체 없이 이룬 역사

"인디를 넘어 대중도 다 아는 국민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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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밴드 크라잉넛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합주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3.0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살다 보면 그런 거지 우후 말은 되지 ♩♬"

펑크 밴드 '크라잉넛'의 '말달리자'(작사·작곡 이상혁)는 이젠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팍팍한 삶을 그럼에도 나아지게 하는 일종의 주술이자, 청춘을 환기하는 영원한 주문이다.

1996년 이 밴드가 '옐로우키친'과 함께 낸 컴필레이션 음반 '아워 네이션 1'에 실렸던 이 곡은 올해 30주년을 맞은 '한국 인디 신(scene)의 고고학(考古學) 문헌'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디 30주년 기점은 1995년 4월5일 서울 홍대앞 클럽 '드럭' 현장이다. 이곳에서 열렸던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밴드 '너바나'의 프런트맨 커트 코베인(1967~1994)의 1주기 추모공연은 수많은 음악 관계자들이 한국 인디음악이 태동한 순간으로 꼽는 명장면이다.

당시 객석에 있던 크라잉넛 멤버들은 무대에 난입했다. 콘서트 막판에 드럭 밴드가 기타와 앰프를 부수기 시작했는데, 열혈청년이던 크라잉넛 멤버들도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같이 올라와서 부쉈다. 한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캔맥주를 향해 다이빙을 하기도 했다.

이듬해 5월 홍대와 명동 한복판에서 열린 거리 공연 '스트리트 펑크쇼'에 크라잉넛 등이 참여하면서 이를 기점으로 인디 신이 활활 타올랐다. 크라잉넛은 1998년 '말달리자'가 실린 1집을 내고, 이 곡이 크게 히트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됐다. 당시 IMF를 보낸 청년들에게 '말달리자'는 해방구와 같았다.

이 곡은 해태제과 아이스크림 CF '부라보콘'에 삽입되는 등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에도 인디 신이 존재함을 알린 상징적 노래"(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홍대신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인디를 넘어 대중도 다 아는 국민밴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한대음 선정위원)) 등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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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밴드 크라잉넛 한경록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합주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3.03. [email protected]
코베인은 코드 세 개만 알아도 노래를 만들어서 음반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이를 몸소 실천한 크라잉넛은 국내 밴드 양산에 기폭제가 됐다. 멤버들이 '드럭 아저씨'라 부른 당시 드럭 이석문 사장은 크라잉넛의 실력이 아닌 에너지를 보고 이들을 오디션에서 발탁했다. 이후 노브레인, 레이지본, 락타이거즈, 쟈니로얄, 위퍼 등이 드럭에서 활약했다.

크라잉넛은 이후에도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매직서커스유랑단' 등 히트곡을 줄줄이 내놓았다. 2002년 밴드 멤버 4명 동시 군입대, 2012년 시청 앞 광장 '오 필승 코리아' 등 인디 밴드로는 드물게 큰 화제성과 영향력을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연주와 곡 메이킹 실력이 느는 이들은 지금도 인디 신을 대표하는 현재진행형 밴드다. 멤버 교체 없이 이 역사를 일군 우정과 화합도 높게 평가해야 한다.

다음은 크라잉넛과 인디 30주년을 맞아 홍대 앞 이들의 연습실에서 만나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디 30주년을 기념해 올해 내내 진행할 인터뷰들 중 네 번째이기도 하다.

-인디 30주년이자 크라잉넛 30주년입니다. 여전히 인디 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사명감에서 비롯된 걸까요?

"사명감이라기보다 동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에요. 지금 인디 신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우리 인디 신의 역사는 이렇다. 힘든 점이 있었지만 우리는 되게 낭만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왔다' 같은 얘기들을 전해주고 싶기도 하죠. 대형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느낌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라이브 클럽에서 우리만의 색깔을 내왔잖아요. 자연스러운 야생화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게 진짜 인디니까요."(한경록)

"건강하게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가 감사하고 뿌듯해요."(김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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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밴드 크라잉넛 박윤식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합주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3.03. [email protected]
"힙합도 유행했었다가, 트로트도 유행했었다가, 록도 또 유행했었고… 그래도 오랜 세월 동안 인디의 자생력이 있어서 계속 이렇게 해올 수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계속 꾸준하게 라이브 클럽에 찾아와 주신 게 저희가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멤버가 안 바뀐 것도 사실 대단한 일이죠. 다들 큰 사고 없이 건강하게 있어줘서 고마워요."(박윤식)

-인디 30주년 전체 역사에 대한 공적인 아카이빙 잘 안 돼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초창기엔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도 없었잖아요. 그래도 크라잉넛은 그나마 자료들이 조금 있는 편이에요. 96년에 했던 스트리트 펑크쇼 명동·홍대 자료들이 있고, 홍대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공연했던 자료들도 조금은 있어요. 또 크라잉넛이 드럭에 소속됐던 밴드들이랑 유대감도 있고 하니까 자료들이 많지 않나 합니다."(한경록)

-30주년에 대한 느낌은 어떻습니까? 크라잉넛을 보고 있으면 항상 청년 같아요.

"15년, 20년 됐을 때는 '와 오래했다'며 감동을 했는데, 30년 되니까 어저께랑 오늘이 똑같아요. 하하."(이상혁)

"나랑 반대네. 저는 25년 정도까지만 해도 대충 다 기억이 났는데, 30년이 되니까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김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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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밴드 크라잉넛 김인수가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합주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3.03. [email protected]
"30년이 올 지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온 것 같아요. '몇 년 있으면 30년이다. 우와 우리는 대단해' 같은 자각은 없었어요."(이상면)

-현재 레이블이 예전만큼 힘이 세지 않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크라잉넛처럼 레이블을 함께 하며 매니지먼트·공연도 같이 하는 경우는 이제 정말 드문 거 같아요.

"저희는 90년대 중후반 때 레이블 중심이 아니라 홍대 라이브 클럽 중심으로 모였어요. 그중에서 드럭 같은 경우는 펑크, 얼터너티브, 사이키델릭한 팀들이 모였죠. 모던록 팀들이 모이는 공연장은 클럽 빵이었고, 이런 식으로 클럽마다 색깔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형 기획사로 간 팀들도 있고 시간이 많이 지나 개인 방송을 비롯해 홀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진 거 같아요. 현재는 잘 되는 팀은 몇 안 되고, 전반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한경록)

"지금은 인디 신과 메이저가 막 섞여버리는 분위기예요. 옛날에는 대기업에 들어가면 '자기 스타일을 막 바꾼다'는 얘기도 해서 밴드들이 그런 데를 가기를 꺼려했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좀 달라진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데이식스 같은 경우는 (큰 소속사에 속했지만) 자기 스타일이 있잖아요."(이상면)

-크라잉넛이 장수하는 비결 중 하나는 생각의 유연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라잉넛이 대단한 건 '말달리자' 성공 이후 상업 광고를 촬영하고 방송에도 출연했지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디펜던트 형태를 유지했다는 거예요. 여러 유혹도 많았을 거 같은데요.

"(유혹이) 몇 번 있었어요. 일단은 초창기에 소위 말해서 대형 기획사가 저희들에게 명함도 주고 했는데 당시 거기에 대해 반감이 좀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방송에서 립싱크도 많이 하고 기획사에서 옷도 입히고… 다듬어진 음악 스타일로 정제시켜버리더라고요. 저희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에 초창기엔 거절했어요. 군대에 다녀와서도 대형 기획사 러브콜이 왔어요. 당시 드럭 아저씨(오디션을 보고 크라잉넛을 발탁한 이석문 전 드럭 대표)한테 얘기를 했어요. '이런 제안을 받았다. 근데 이제 우리는 다 오픈한다.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그랬더니 '솔직하게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 이제 내가 좀 감이 떨어졌을 수도 있고 하니까 그러면 너네가 한번 맡아서 해봐라'고 해주셨어요. 이후 저희가 친구 매니저랑 같이 레이블 유지를 해오고 있는 거죠."(한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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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밴드 크라잉넛 이상혁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합주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3.03. [email protected]
-처음 크라잉넛을 비롯한 펑크 밴드들은 신문 문화면이 아닌 사회에 나와잖아요.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문화적 현상을 넘어 사회적 현상이 됐으니까요. 사회 분위기나 음악 신을 바꿨다는 자각이 드십니까?

"저희 혼자서 판을 바꾼 건 아니지만, 이런 웨이브에 일조를 했다는 생각은 해요. 사실 저희가 처음 앨범을 만들 때 녹음할 만한 실력이 안 됐어요. 음질도 별로고요. 그럼에도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냈고, 이후 인디 밴드들이 용기를 내서 앨범을 막 만들어냈죠. 이후 드럭 레이블에서 노브레인, 쟈니로얄, 레이지본 같은 팀들이 나와 힘을 보태줬죠. 그렇게 인디 펑크신이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활동하고 있을 때 힙합 1세대도 그때 쯤 나타났었고요."(한경록)

"우리가 펑크를 들고 나왔을 때 정말 새로워했던 거죠. 그 전엔 펑크 음악이 금지돼 아예 들어오지 않아서 사람들이 몰랐던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이상혁)

-처음엔 펑크 음악에 대해 기성사회가 경계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반대로 지금은 낭만으로 생각하는 신기함이 있어요. 이렇게 크라잉넛은 30년 동안 편견, 오해를 바꿔온 팀이기도 해요. 펑크가 불량한 게 아니라 거기에 청춘은 물론 우리 인생사가 다 녹아 있다는 걸 보여줘 왔잖아요. 무엇보다 크라잉넛은 구설에 오른 적도 없는 팀입니다. 한 때 일부 팀으로 인해 인디 신 자체가 크게 오해를 받기도 했잖아요.

"어렸을 땐 좀 개구지고 악동짓을 좀 했어도 그게 선을 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20대 때는 객기도 부리긴 했었는데 그 정도지, 나쁜 짓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이상면)

"최근 어떤 댓글에서 '크라잉넛은 그래봤자, 술 먹고 홍대 길바닥 뒹군 정도'라는 글을 봤어요. 하하."(김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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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밴드 크라잉넛 이상면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합주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3.03. [email protected]
-이런 말씀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크라잉넛이 되게 똑똑하고 지적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뭐라고요?"(다섯 멤버 일동)

-순간순간 선택이 현명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큰 기획사 스카우트를 거절하신 것도 그렇고, 군대도 모범적으로 다녀오셨고 그 밖에도 대중이나 기자들이 모르는 순간순간의 현명한 선택들이 이어져 지금의 30년이 됐다고 생각해요. 현명하고 똑똑하지 않으면 이렇게 30년 못 하거든요.

"물론 그런 건 있어요. 저희도 이제 성인이고 가정도 이루고 있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데 그렇다고 해서 무리수를 두는 욕심을 부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 도박 같은 느낌이죠. 코인 하면 떡상할 수 있는데 그런 길을 선택을 안 했어요."(박윤식)

-저희는 그냥 '로큰롤'처럼, 진짜 즐겁게 즐거운 길을 택했지 '상류 사회로 갈 거야' 내지는 음악적으로 트렌드를 쫓아가지는 않았어요. 소소하게 저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지내온 것 같아요. 저희끼리 술 먹으면서 '짧고 굵게 가지 말고, 얇고 길게 가자'고 얘기해요. 또 초심을 항상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그 초심이라는 게 음악 재미있게 즐기고 노는 거죠. 더 욕심을 부리면 초심에서 계속 멀어지는 거잖아요."(이상혁)

"저희가 별 탈 없이 지내온 건, 제가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뭔가 뒤에서 도와주는 게 있지 않았을까'라며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크라잉넛을 한다는 자체가 큰 도박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어렸을 때 진짜 선생님 말씀, 부모님 말씀 정말 안 들어도 30년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낸 거죠. 하하."(한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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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밴드 크라잉넛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합주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3.03. [email protected]
-올해 30주년이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실 거 같은데, 가장 무겁게 보고 있는 계획이나 프로젝트가 있습니까?

"일단 4월20일께 싱글을 발표하고, 여러 가지 기념할 만한 공연을 기획 중이에요. 계속 회의 중인데 결국에는 '최고의 선물은 음악'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밴드 '킹곤즈'와 국내에서 조인트 콘서트를 했고요, 4~5월에도 공연은 계속 할 거예요. 공연으로 보답을 드려야죠. 오랜만에 프로필 사진도 새로 촬영할 겁니다."(한경록)

-마지막으로 멤버들끼리 고마운 점이 있다면요?

"최근에 미뤘던 공부를 다시 하고 있거든요. 주중에 며칠 학교를 나가야 돼요. 그때 연습이나 스케줄이 있을 수 있는데, 멤버들이 다 이해를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생각해요. 지금 홍대 일반대학원 회화과를 다니고 있거든요."(이상면)

-상면 씨는 원래 그림을 너무 잘 그리시잖아요. 멋있습니다. 전문적으로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다면요?

"계속 작품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작품 만드는 거 겸사겸사해서 작품의 방향도 다시 좀 생각해 볼 기회가 되니까요."(이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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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밴드 크라잉넛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합주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3.03. [email protected]
"30년 동안 음악을 했으면 물론 음악이 메인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다른 도전도 해야지 음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신선한 느낌으로 인풋들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요."(한경록)

-음악 담당 기자로 '음악 공부를 더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지 못한 게 부끄러워지네요.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피아노를 30대 후반에 동네 학원 가서 배웠거든요. 코드 개념이나 작곡을 하는데 도움이 되던데요. 지금도 뭘 배우시는 데 절대 늦지 않았어요. 일단 멤버들에게 이렇게 같이 있어주는 게 진짜 고마워요. 무엇보다 나이를 먹으면서 서로 어떤 성격이고 뭘 잘하는지 밸런스가 좋게 분업이 된 것 같아요. 각자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주는 게 굉장히 고맙죠. 그리고 저 같은 경우도 '경록절'('홍대 앞 3대 명절') 한경록의 생일 파티에서 출발해 계속 해오는데 그거를 어떻게 보면 이렇게 혼자 나대 이렇게 볼 수도 있는데,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한경록)

-작년에 인천 파라다이스에서 경록절을 여는 등 문화적인 측면에서 계속 확장하는 게 의미 있다고 봅니다.

"홍대를 넘어서 다른 공간에서도 홍대 인디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 인디 팀들도 거기서 뭔가를 얻어올 수 있고요. 그런 개념으로 확장을 계속 고민 중이에요."(한경록)

-다른 멤버들은요?

"일단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살아있어야 뭐든 할 수 있고요. 요즘 가끔 가까웠던 사람들의 부고를 들어요. 이 사람들한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생각나요. 그러면, 주변에 항상 있는 친구들이 일단 계속 살아 남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해요."(김인수)

"저는 항상 멤버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아서 고맙고요. 대표적인 예가 제가 코로나 시기에 밴드들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한 연합회를 만들려고 시도했어요. 그런데 멤버들이 이런 저런 충고를 해줬어요. 아마 제 고집대로 했으면 잘 안 됐을 텐데, 친구들이 따끔하게 얘기를 해줘서 중간에 끝내고 음악에 전진하는 계기가 됐죠. 많이 몰랐었던 분야인데 겁도 없이 뛰어들었었던 것 같은데, 그 때 딱 잘라줘서 정말 고마웠어요."(박윤식)

"저는 딸을 키우는 입장이니까, 돈도 벌어야 되는데 30년이나 하면서 이렇게 수입을 낼 수 있게 열심히 공연을 뛰는 친구들이 너무 고맙습니다."(이상혁)

-이렇게 인디 밴드들이 공연만 해서도 삶을 꾸려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투잡, 스리잡 하는 인디 밴드들이 많은데 크라잉넛이 이런 측면에서도 모범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전 정말 인디 밴드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해요. 크라잉넛처럼 스스로 계속 음악을 기획하고 만들면서 인디펜던트 정신을 이어가는 게 인디지, 수익이 없다고 인디는 아니잖아요.

"인디계에 돈도 잘 벌고, 얘도 대학까지 보내는 루트가 많아지면 음악을 더 재미있게 접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그 만큼 보는 사람들도 더 늘어날 것 같다고 생각해요."(한경록)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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