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 적은 아이" 서툰 표현 속 마음 읽는 진술분석관[진실 탐지자上]
피해 아동 진술로 상황 재구성진술 분석시 아이 특성 반영해면담 당시의 몸짓·태도도 분석
표현이 서툰 아이였다. 이곳이 어디인지, 왜 왔는지도 모르는 아이는 질문에 답을 하기보다 좁은 공간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토끼 인형에 관심이 많았다. 인형과 놀기를 한참, '자신을 만질 때는 싫었지만, 말을 착하게 해줘서 괜찮았다'고 학원 선생님을 설명했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좋은 사람이자 나쁜 사람이었던 학원 선생님은 강제 추행 혐의를 부인했고, 직접 증거는 아이의 진술뿐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경찰 수사 단계에서 '신뢰할 수 없다'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진술에 충분한 정보가 담겨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법정 출석을 꺼리는 아이, 검사는 다시 아이의 진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아이로부터 말을 끌어내고 진술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박슬기 대검찰청 법과학분석과 소속 진술분석관 몫이 됐다. 말이 적은 아홉살 아이와 마주한 박 분석관은 '선생님이 너한테 나쁘게 했니'라는 질문 대신 '선생님과 평소에는 어떻게 지냈어'라고 말을 골랐다. 피해 아동이 본인이 경험한 일을 스스로 떠올리며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박 분석관은 이를 '사건으로의 초대'라고 칭했다. 진술분석관의 면담 기법(nichd) 중 하나다. "학원에 다니는 동안 선생님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요. 평소 선생님이 재미있고 즐겁게 해줬어요." 3시간 여의 면담, 4차례 피해 사실. 아이의 말은 분석됐다. 박 분석관은 아이가 드물게 답한 말들을 모아 수년 전 교습소의 한 공간을 다시 그렸다. 피해 아동의 말, 말을 할 때의 표정, 그 표정을 짓기까지의 과정이 빼곡하게 담긴 100쪽을 훌쩍 넘긴 기록이 완성됐다.
"아이는 당시에 심각한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런 행동을 할 때 기분은 좋지 않은데, 그것을 성 피해라고 생각은 못 한 거죠." 진술분석관은 피해 아동이 한 진술에 조각조각 담긴 진실을 읽어내 상황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한다. 상대가 조사나 취조를 당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면담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열린 질문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경찰과 검찰 단계 수사 기록들은 사건 전반을 이해하고 피해 아동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듣는 데 도움을 줬다. 박 분석관은 말수가 적고 표현이 서툰 아이, 짧게 간추려서 이야기하려는 특징들을 고려해 질문을 짰다. 박 분석관은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일시, 장소, 행위를 중심으로 물어보는 초기 단계 면담과 사건 기록 등을 통해 전체를 보고 질문을 구성해서 하는 면담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진술에 상대방의 처벌 여부가 달려 있는 만큼, 신뢰할 수 있는지를 오래 따진다. 진술을 듣는 데서 나아가 면담 대상자의 몸짓과 태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부지런히 시선을 두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이들이 온몸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박 분석관은 전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피의자와 관련해 과장하지 않았어요. 아이의 말과 함께 이런 정보들이 각주로 기록에 담기는 거죠. 진술한 게 많으면 각주가 많아지고 기록이 늘어나게 됩니다." 박 분석관은 아이의 일관된 진술, 피해 사실 고백의 과정 등을 고려할 때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학원 선생님인 피고인이 일상에서 피해 아동을 대상으로 유사한 범죄를 반복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피해자가 각 상황을 상세히 기억해 진술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다. 법원도 직접 피해자를 면담한 대검 진술분석의 신뢰성을 인정, 학원 선생님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대검은 1분기 과학수사 우수사례로 선정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