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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왜 담임 하냐고요? 하고 싶어서요"[인터뷰]

등록 2025-05-17 07:00:00   최종수정 2025-05-20 0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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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일중 10년차 교사 김태연씨

망막변성으로 21살에 수의학과 중퇴

2011년 수능 응시·2016년 교사 임용

"업무지원인 고용 제도는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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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0년 차 시각장애 교사 김태연씨가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김태연 제공)

[서울=뉴시스]정예빈 수습 기자 = "남들은 안 하고 싶어하는데 시각장애인이 왜 담임을 하려고 하냐고 주변에서 그랬어요. 그런데 저는 하고 싶었거든요. 한 명만 콕 짚을 수 없을 만큼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시각장애인이자 서울 구일중학교에서 1학년 담임 교사를 맡고 있는 김태연 교사는 교사가 '천직'이라며 직업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스승의 날을 앞뒀던 지난 14일 만난 김씨는 올해로 10년 차 시각장애인 교사다. 망막변성으로 양쪽 눈의 시력이 일부만 남은 김씨는 "(시력이) 오른쪽 눈은 20%, 왼쪽 눈은 40% 남았다"며 "시야가 모자이크처럼 보인다"고 했다.

김씨는 어릴 적부터 수의사를 꿈꿔 모 대학교 수의학과에 진학했지만 입학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대학에 갈 때쯤 오른쪽 눈에 생겼던 망막변성이 왼쪽 눈에까지 찾아오면서다. 그는 "(장애인이) 대학 가는 게 너무 당연하고 지원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장애인도)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걸 몰랐고 학교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갑자기 시력을 잃어 삶이 흔들렸지만 그는 그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며 넘어갔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캐나다를 다녀오고 요가도 하고 5년간 영어 학습지 선생님으로 활동하며 지냈다. 백내장으로 5년 동안 집에서만 생활해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김씨는 그 기간 처음으로 시각장애인들과 교류했고 "그때가 너무 좋았다"고 떠올렸다.

시각장애로 21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그는 2011년 11월 수능에 응시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다. 그는 2012년 한 대학의 영어교육과에 입학한 후 2016년 선생님이 됐다.

김씨가 다시 대학에 입학하고 선생님 되는 길이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그는 "수능은 정말 최악이었다"며 "뭐든지 처음 하다 보면 선구적인 역할을 해야 해 힘든 것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당시 수능 영어 시험에서 음성평가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항의해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씨는 "그때는 거의 다 맹학교 출신이지 저처럼 일반 학교 나오고 중도에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이 다른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모든 사람이 점자를 알아야 하는 분위기였고 저는 심지어 점자를 아는데 늦게 배운 사람이라 속도가 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무관과 여러 차례 소통한 끝에 음성평가자료를 제공받아 시험 응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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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0년 차 시각장애 교사 김태연씨가 수업하고 있다. (사진=김태연 제공)

인터뷰 내내 김씨는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타고난 적성을 따라간 것 같다"며 "일반 직장인 중에서 일에 대한 만족도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에 대한 마음도 컸다. 3년째 담임을 맡고 있는 김씨는 "아이들이 다 착하고 예쁘다"며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너무 많다"며 "다들 한명씩 개성이 있고 비서같이 도와주는 친구들도 있다"고 답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유쾌하고 융통성 있는 선생님으로 통한다. 김씨는 화장하는 학생을 마구 나무라기보다는 "올해부터 화장을 하면 나 같은 미모를 유지할 수 없을 거야. 일단 (화장품을) 집어넣어라"라고 재밌으면서도 단호하게 학생을 지도한다. 다툼을 하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랬구나. 근데 너 흉내 되게 잘 낸다. 너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어"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 갈등을 해결한다.
 
자칭 '올라프(영화 겨울왕국의 캐릭터)'같이 긍정적인 김씨는 학교와 동료 교사들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했다. 그는 "(학교가) 업무지원인 선생님, 교과 교실, 빔프로젝터를 지원해준다"며 "(동료 교사들이) 시험 감독같이 불가능한 일을 주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준다"고 했다.

이처럼 행복한 교사 생활을 하는 김씨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2년에 한 번씩 업무지원인을 교체해야 해 불편하다.

그는 "(업무지원인이) 2년 이상 일하면 무기계약직이 되니 안 된다고 해서 울고 불고 했지만 결국 (업무지원인이) 잘렸다"며 "마음 맞는 선생님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데 2년에 한 번씩 선생님을 바꿔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다"고 전했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 교사들과 협력해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줄여가기도 한다. 점자 교과서 제작이 대표적이다. 그는 점자 교과서가 없어 새 학기에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 교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과서를 미리 만들어 놓는다.

그는 "선생님들마다 교과서를 하나씩 맡아 교육청의 허락을 받고 국립특수교육원에 넘겨서 교과서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며 "누군가가 고등학교로 갈 수 있으니 이번에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고민에 대해서는 "다 먼지처럼 가벼운 것들"이라며 "지금도 언제 눈이 더 나빠질지 모르고 저처럼 약시인 사람들은 진행형이라 이런 게 크다 보니 나머지는 별거 아니다"라고 했다.

교사를 꿈꾸는 장애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으로는 "사회에 나와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관계"라며 "공부만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과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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