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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산×곰리 ‘그라운드’…열린 빛의 무덤[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5-06-19 15:27:59   최종수정 2025-06-23 08: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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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곰리+안도 타다오 협업 세계 최초 상설관

녹슨 철 조각 7점 설치 곰리 "고요하고 정지된 정거장"

"감각을 회복하는 장소"../'살아갈 힘을 되찾는 공간'

청조갤러리 전관서 곰리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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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19일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와 안도 타다오가 협업해 새롭게 탄생한 뮤지엄 산 '그라운드' 내부. 2025.06.19. [email protected]


[원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판테온이 닫힌 무덤이라면, 그라운드(GROUND)는 열려 있는 무덤이자 생명의 장입니다.”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74)가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공동 협력한 신작 공간 ‘GROUND’가 강원 원주 뮤지엄 산(SAN)에서 처음 공개됐다. 건축, 조각, 자연이 하나로 호흡하는 이 공간은, 뮤지엄 산이 추구해온 ‘살아갈 힘을 되찾는 공간'이라는 비전을 구현했다.

안토니 곰리의 세계 최초 상설관이기도 한 '그라운드'는 '거대한 빛의 무덤'이다. 침묵과 감각, 그리고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 광장 전체를 관통한다.

19일 현장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곰리는 “그라운드(GROUND)는 감각을 회복하는 장소”라며 “조각은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감각의 촉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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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9일 안토니 곰리가 뮤지엄 산에서 한국기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흰 패션에 빨간 양말이 인상적이다. 2025.06.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조각, 건축, 자연이 호흡하는 공간
뮤지엄 SAN의 플라워 가든 아래 지하에 조성된 GROUND는 직경 25m, 천고 7.2m 규모의 원형 돔 공간이다. 지상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유리창 너머로 원형 본실이 펼쳐진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을 연상시키는 구조다. 곰리한 함께 만든 안도 타다오는 "이 공간에 대해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지구의 원형을 닮은 구조에 태양광이 내려와 하나의 해시계를 만든다"고 전했다.

천창을 통해 유입되는 자연광은 시간에 따라 내부 분위기를 변화시키며, 공간 전반에는 곰리의 철제 인체 조각 7점이 흩어져 있다.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의 약 4분의 3 규모에 해당하는 웅장한 공간은 조각과 건축, 자연이 하나로 결합된 ‘장소 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이다.

천창으로 쏟아지는 자연광은 시시각각 공간의 색과 그림자를 바꾸며, 고요한 기도처럼 시간의 흔적을 조각 위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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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개인전 'DRAWING ON SPACE'가 열린 20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GROUND(그라운드)'에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뮤지엄 산의 전시장 '그라운드'는 안토니 곰리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가 공동 설계한 새로운 공간이다.  2025.06.19. [email protected]


곰리는 “빛과 철, 침묵과 공기의 흐름을 통해 조각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첫 공개된 그라운드에 그도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시각적·청각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공간과 주 공간이 분리돼 있다. 유리창 너머로 산과 빛, 조각이 펼쳐지고, 관람자는 다른 관람자를 바라볼 수도 있다. 산과 예술의 관계를 고요하게 관찰할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라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곰리는 “GROUND의 입구는 시신경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입구에 벤치가 있고 마치 초대를 받아 주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전이의 경험을 의도했다”고 덧붙였다.

‘그라운드’의 외부는 자연 지형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내부는 콘크리트 질감과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이 조각을 관통한다. 열린 무덤 같은 이 광장은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생명을 사유하게 만든다.

둥근 빛은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동굴 속 공간을 무대로 바꾸고, 조각뿐 아니라 관람자마저도 하나의 작품처럼 연결된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소리와 빛으로 이끄는 동선 안에서, 마침내 깨닫는다. “나는 자연의 일부다.” 이곳에서 진정으로 조각된 것은 조각 그 자체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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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안토니 곰리와 안도 타다오가 협업해 탄생한 '그라운드' 공간. 곰리의 녹슨 철조각 7점이 함께 설치됐다. *재판매 및 DB 금지

◆ “녹슨 철은 피와 흙의 색…변화의 상징”
‘그라운드’는 고요한 정거장, 멈춰 선 시간의 장소다. 빛과 바람, 침묵과 울림이 조각과 함께 공간 안에서 공명하며, 감각의 여운을 남긴다.

천창을 통해 뚫고 들어오는 둥근 빛은 공간을 신성하게 만들고, 바닥에 눕고 앉고 서 있는 사각 블록의 인체 형상은 공간의 긴장에 방점을 찍는다. 곰리가 말한 “조각은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감각의 사건”이라는 철학이 실현된 장소다.

곰리는 “빛을 받아야 했고, 흙과 대기를 머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철이라는 물질을 선택했어요. 피와 닮은 색, 시간과 호흡하는 금속이죠”라고 설명했다. 녹슨 철의 색은 피와 태양, 흙의 색과 연결돼 있으며, 산소에 의해 변하는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는 “철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과 호흡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몸을 상징합니다”고 덧붙였다.

7점의 조각을 설치한 데 대해 그는 “고체의 단단한 질량이 필요했다”며 “닻 같고, 에너지 배터리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는 교토 료안지 정원의 15개 바위에서 착안한 구성으로, “고요하고 정지된 정거장을 상상했다”고 했다.

곰리는 “침묵 속에 놓인 오브제들이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도 궁금하다”면서 “공간 자체가 변화에 노출돼 있는데, 그 변화를 조망하게 될 것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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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19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SAN의 새로운 공간 ‘GROUND’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2025.06.1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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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곰리. 사진=뮤지엄 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내 조각은 모든 질문을 실체화한 것”
“예술은 삶이 충만하게 표현되는 실제 세계 속에 있어야 한다.”

‘조각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안토니 곰리는 “그 자체가 질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념을 주장하거나, 우주론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이 이 세계 안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묻고 싶을 뿐이죠. 작품의 주제는 오히려 그것을 경험하는 관람자에게 있습니다. 그라운드는 몸이 딛고 설 수 있는 땅이자, 감각과 사유의 장입니다.”

안토니 곰리는 인간의 몸을 중심에 둔 조각 실천을 통해 조형 언어의 전통적 개념을 재정의해 온 작가다. 초기에는 자신의 몸을 석고로 캐스팅하는 방식으로 조각을 제작했고, 이후 인체의 구조와 존재 조건에 대한 물리적·철학적 탐구를 거쳐 점차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작업을 확장해왔다. 1994년 터너상을 수상했고 1998년 영국 북부 탄광도시 게이츠헤드에 설치한 가로 54m 크기 '북쪽의 천사'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인도와 네팔에서 3년간 명상 수행을 경험했고, 자신의 몸을 석고로 캐스팅하는 행위에서 일종의 ‘무덤에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입에 겨우 빨대를 물고 석고 속에 누워 있을 때,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명확한 ‘존재’를 느꼈습니다. 그때 공간은 단지 물리적인 경험이 아니라, 우주의 감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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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개인전 'DRAWING ON SPACE'전이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청조갤러리에서 20일 개막한다. 가는 철로 만든 기포 같은 형상의 곰리의 조각을 관람객들이 거닐며 감상하고 있다. 투명하게 빈 조각은 관람자의 몸을 함께 조각화한다. 2025.06.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몸은 기체이자 흐름…전시는 물질의 세 가지 상태”
뮤지엄 SAN 청조갤러리 전관(1~3관)에서 20일부터 열리는 안토니 곰리의 대규모 개인전 'DRAWING ON SPACE'는 조각 7점, 드로잉·판화 40점, 설치작품 1점 등 총 48점의 작품을 통해 곰리 예술의 핵심 축인 ‘몸-공간-에너지’의 삼각 관계를 조망한다.

곰리는 이번 전시를 “물질의 세 가지 상태”로 구성했다. 1관에서는 기포처럼 유동적인 인체 형상을 탐색한 조각 연작 ‘Liminal Field’를, 2관에서는 인간 내면의 감각과 의식 흐름을 시각화한 드로잉 ‘Body and Soul’ 시리즈를, 3관에서는 우주의 궤도와 몸의 관계를 은유한 대형 설치작품 ‘Orbit Field II’를 각각 선보인다.

“버블 형태의 조각은 인간의 연약함과 개방성을 표현한 것”이라며 “몸은 기체이자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곰리는 말했다. 이어 “'그라운드'에서는 무게와 질량을 지닌 고체 형태로 몸을 구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와 상반되는 개방성과 유연성을 통해 균형을 이루고자 했다”며 “버블 형태의 조각은 에너지를 다루는 작업이고, '그라운드'의 조각은 질량을 지닌 몸을 다루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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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뮤지엄 산은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개인전 'DRAWING ON SPACE' 언론 공개회가 열린 19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청조갤러리에서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뮤지엄 SAN 청조갤러리 전관(1, 2, 3관)에서 펼쳐지며 조각 7점, 드로잉 및 판화 40점, 설치작품 1점으로 구성된 총 48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안토니 곰리 개인전이다. 2025.06.1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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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3관에 선보인 우주의 궤도를 형상화한 대형 설치작업 'Orbit Field II'. 2020년 방탄소년단(BTS)의 철학과 메시지를 공유하는 현대미술 프로젝트 '커넥트' 일환으로 미국 뉴욕에서 공개됐던 작품이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조각은 회복의 예술…몸은 우주의 매개체”
“디지털 기기에 갇힌 시대, 조각은 다시 ‘만지는 세계’를 되찾게 한다. 점점 사이보그화되고 있지만, 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우주만큼 미지의, 자율적인 존재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느끼는 우주의 매개체다.”

곰리에게 예술은 단순한 창작을 넘어선 생태적·존재론적 실천이다. 그는 조각을 “지질학적 유한성”을 다루는 작업이라 정의하며, 자본주의의 소비 방식이 아닌, 살아 있는 세계 안에서의 예술을 지향해왔다.
“예술은 삶의 본질을 회복하는 실천입니다. '그라운드'는 그 출발점이자 실험장이 될 겁니다. 디지털 환경이 인간성을 잠식하는 시대, 예술은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처럼 죽음과 삶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는 지금 우리가 처한 자본주의적 현실과 대비된다”며 “조각가는 인간의 유한성을 다루는 사람이며, 그것을 알리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일인 20일 안토니 곰리가 직접 참여한 특별 강연도 열린다. 곰리가 직접 ‘GROUND’와 이번 전시에 담긴 철학적 관점을 소개하며, 인간 존재와 공간, 감각의 상호작용에 대한 사유를 관람객과 공유할 예정이다.

안토니 곰리의 개인전 'DRAWING ON SPACE'는 오는 11월 30일까지 뮤지엄 SAN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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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19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SAN의 새로운 공간 ‘GROUND’를 처음으로 공개하여 전시에 한층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2025.06.1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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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19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SAN의 새로운 공간 ‘GROUND’를 처음으로 공개하여 전시에 한층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첫 협업으로 탄생한 ‘GROUND’는 내부 직경 25m, 천고 7.2m, 직경 2.4m의 원형 천창을 갖춘 돔 형태의 공간으로, 뮤지엄 SAN의 플라워 가든 아래에 조성되었다.  2025.06.1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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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개인전 'DRAWING ON SPACE'가 열린 19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GROUND(그라운드)'에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025.06.1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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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안토니 곰리와 안도 타다오가 협업해 탄생한 뮤지엄 SAN 그라운드. 외부에서 본 공간은 열린 무덤처럼 보인다. 2025.06.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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