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새로 피어난 '벚꽃동산', 이제 세계를 홀린다[객석에서]
안톤 체호프의 고전, 현대 한국 사회 배경으로 재창작홍콩 아시아플러스 페스티벌 개막작…관객 사로잡아말맛 살린 대사·배우들의 호연…비극과 웃음의 공존싱가포르, 호주, 뉴욕으로…다시 피어날 '벚꽃 동산'
[홍콩=뉴시스]김주희 기자 =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탄탄한 서사, 무대 위 인물들이 빚어내는 앙상블. 이를 따라다가보면 어느새 고전에서 새롭게 태어난 연극 '벚꽃동산'의 매력에 빠져든다. 지난해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초연한 '벚꽃동산'이 19일 개막한 ‘2025 홍콩 아시아플러스 페스티벌’의 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19세기 러시아 귀족 가문의 몰락을 그린 안톤 체호프의 고전을 사이먼 스톤이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것이다. 배경은 오늘날 한국 사회. 파산 직전의 재벌가를 통해 급변하는 사회 속 세대와 계층의 충돌을 그린다. 비록 한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과 새로운 질서를 욕망하는 인물들은 국적을 넘어 보편성을 띤다. 작품은 아들의 죽음후 미국으로 떠났던 송도영이 5년 만에 서울로 돌아오며 시작된다. 모처럼의 귀국이지만 그를 기다리는건 몰락 직전의 가문과 넘어갈 위기에 처한 저택. 그럼에도 송도영과 오빠 송재영은 현실을 외면한 채 여전히 안일한 태도를 고수한다. 이들과 반대로 운전기사의 아들에서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성장한 황두식이 위기를 해결할 방도를 제시하지만, 정작 송씨 남매는 그의 말을 흘려듣는다. 보는 이는 답답할 노릇이지만 정작 주인공들은 여유롭기만 하니, 이 기묘한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 웃음을 이끄는 것은 배우들이 숨 가쁘게 주고받는 맛깔 나는 대사다. 비극적 순간에도 억지스럽지 않게 튀어나오는 유머는 객석을 사로잡는다. 배우들의 호연은 작품에 힘을 더한다.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전도연은 아들을 잃을 아픔을 절절하게 토해내다가도, 딸의 남자친구와 키스한 뒤 "순간적인 감정이 올라왔다"며 천연덕스레 변명하는 송도영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황두식 역의 박해수는 후반부 감정을 폭발시키며 무대를 휘어잡았고, 손상규와 유병훈 역시 자신만의 색으로 무대를 채우며 빈틈없는 앙상블을 완성한다. 벚꽃동산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한 가문의 몰락이 아니다. 변화의 물살을 외면하는 인간의 나약함, 욕망 앞에서 드러나는 어리석음,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까지. 이는 특정 시대와 국가를 넘어, 오늘을 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21일까지 홍콩에서 공연하는 '벚꽃동산'은 11월 싱가포르에 이어 내년 2월 호주, 9월 뉴욕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이 기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 또 한번 낯선 땅에서 화려하게 피어날 것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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