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쓰레기로 보석 만드는 21세기 마술①…업사이클링 한국은 걸음마
국어사전에 올라있는 ‘쓰레기’에 관한 정의다. 이처럼 쓰레기는 더는 쓸 수 없거나 가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근래 들어 쓰레기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거의 ‘쓰레기도 다시 보자’급이다. 너덜너덜해진 현수막은 가방으로, 폐차되는 차량의 안전띠는 지갑으로, 폐타이어는 가구로, 버려진 자전거 크랭크로 시계를 만드는 식이다. 바로 ‘업사이클링(Upcycling)’이다. ‘업그레이드(upgrade·승급)’와 ‘리사이클링(recycling·재활용)’의 합성어로 버려진 물품이나 팔리지 않은 상품 등에 디자인을 가미하고, 활용성을 더해 기존보다 가치 높은,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루 38만2081톤, 연간 1억3945만9565톤(이상 2013년 국내 기준)의 쓰레기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환경보호라는 공익성은 물론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색다른 창조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업사이클링 산업을 들여다본다.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
먼저 나타난 시도가 ‘리사이클링(recycling)’이다. 병, 캔, 종이 등 재활용이 가능한 각종 쓰레기가 대상이다. 사용한 소주병을 거둬 깨끗이 세척한 뒤, 그 병에 소주를 다시 담아 판매하는 것이 좋은 예다. 업사이클링은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새로운 시도다. 업사이클링은 리사이클링과 어떤 점이 다를까. 그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커피 원두에서 실제 커피를 내리는 데 쓰이는 ‘0.2%’를 뺀 ‘99.8%’, 커피 원두 찌꺼기의 활용이다. 커피 찌꺼기는 첨가물이 전혀 없는 ‘순식물성 쓰레기’다. 이에 착안한 일부 업소는 이를 버리는 대신 잘 말렸다 작게 포장을 해 손님들에게 방향·탈취·제습제, 화분 퇴비 등의 용도로 제공하고 있다. 몇 걸음 더 나아간 업체들도 있다.
부산 동서대 졸업생 김태현씨 등 3인이 창립한 스타트업 ‘얼스그라운드(EARTHGROUND)’는 커피 찌꺼기로 탁상시계인 ‘그라운드 클락’, 화분인 ‘그라운드 클락’ 등을 제작해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고 있다. 단순히 커피찌꺼기를 말려 손님에게 방향제로 제공하는 것이 리사이클링, 가공 과정을 거쳐 커피찌꺼기를 점토나 소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업사이클링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기준으로 지난해 1~9월 국내에 수입된 원두 등 커피(조제품 제외) 중량이 약 10만2500톤에 달했다. 지난해 커피 찌꺼기 양 역시 10만톤을 훌쩍 뛰어넘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업사이클링은 그 처리에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게다가 커피 찌꺼기 업사이클링은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로 흙(점토), 나무, 플라스틱 등의 소재를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환경파괴를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청년, 업사이클링에서 길을 찾다 사단법인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에 따르면, 국내 업사이클링 업체는 100여 곳으로 추산된다. 창업자는 거의 20~30대 젊은이들이다. 이들 세대는 환경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하고, 외국 트렌드에 관한 이해도가 높다. 이로써 기성세대보다 업사이클링의 취지에 더욱 공감할 뿐만 아니라 사업적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앞다퉈 이 시장을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아이디어와 감각이 있으면 누구나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업사이클링 업체는 대부분 공방 수준의 1인 기업이거나 2~3인이 동업하는 정도다. 박미현 협회장이 운영하는 업체로 순수 업사이클링 업체 중 최대인 터치포굿만 해도 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하다. 영세하기는 하지만 업사이클링 산업의 가능성은 높다. 업사이클링이 알려지면서 기왕이면 ‘착한 소비’ ‘가치 소비’를 하겠다는 소비자가 늘어나 매출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덕. 업계에서는 업사이클링 내수 시장 규모가 2013년 25억원, 2015년 40억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100억원대로 급성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을 정도다. 시장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다. 업사이클링 제품에 관한 인식도 180도 달라졌다. 국내 태동기였던 2000년대 말만 해도 이들 제품의 적잖은 가격대에 놀라며 “폐기물로 만든 것인데 왜 이리 비싸냐”는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치소비’에 동참한다는 것이나 폐기물을 재가공하는 과정에 적잖은 인건비가 든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점이 주는 희소 가치까지 따져 불황 속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실제 지난해 10월2~4일 현대백화점 서울 목동점에서 열린 업사이클링 전시회인 ‘쓰임을 다한 자원들의 두번째 생일전’. 이 백화점의 후원ㅇ을 받아 협회가 환경부, 서울특별시와 공동주최한 이 행사에는 협회 소속 업사이클 브랜드와 디자이너 등 약 40개팀이 참여, 폐자원을 소재로 만든 의류·가방·액세서리·인테리어 소품·가구·예술 작품 등 약 2340점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판매 가능성을 확인한 협회는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숍에 협회 공동매장을 오픈하는 것을 시작으로 협회 차원에서 백화점, 쇼핑몰, 면세점 등에 입점해 회원사들이 만든 양질의 업사이클링 상품과 소비자의 접점을 더욱 많이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정부도, 대기업도 업사이클링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환경부는 업사이클링 산업 활성화를 위해 서울(서울 재사용플라자), 대구(대구 디자인리뉴얼센터), 인천(인천 업사이클 에코센터), 경기(수원·경기 광역 재활용센터), 전남 순천시(순천 나누리센터 ) 등 지방자치단체들과 손잡고 ‘업사이클링 센터’를 조성 중이다. 이곳에는 공방, 전시실, 판매실, 제품 홍보실, 폐기물 가공 시설, 소재은행 등이 들어서게 된다. 대기업 역시 기업 이미지 제고부터 블루오션 개척 등 다양한 이유로 힘을 보태고 있다. 코오롱FnC는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인 ‘래코드(RE;CODE)’를 5년째 전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소각될 처지에 놓인 3년 이상된 자사 재고 의류를 재료로 옷을 만들면서 시작한 브랜드다. 같은 해 군에서 사용되던 텐트·군복·낙하산 등을 활용한 ‘밀리터리 라인’을 추가했다. 2013년에는 자동차 에어백 등 산업용 소재로 만든 ‘인더스트리얼 라인’도 내놓았다. 유명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 해외 패션쇼 진출 등 다양한 시도도 해나가고 있다. 래코드 역시 이 회사의 다른 브랜드 제품보다 전혀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업사이클링 제품이 지난 다양한 가치를 아는 소비자들 덕에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을 비롯한 각 대형 유통업체들도 올해 다양한 업사이클링 제품 판매 행사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