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의 스크리닝]죽기보다 싫은 거, 잊히는 것이었다
첫째 날 세상에서 하루의 삶을 얻은 대신 전화를 없애자 잘못 걸려온 전화 덕에 만났던 첫사랑 ‘그녀’(미야자키 아오이)와의 추억을 잃는다. 둘째 날 영화가 사라지니 영화광이었던 절친 ‘타츠야’(하마다 가쿠)와의 우정도 사라진다. 셋째 날 세상에서 시계가 사라지며 시계점 아들로 태어난 뒤 지금까지 30년간 나를 이룬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나타난 사신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고양이마저 세상에서 없애겠다고 한다. 지난 9일 개봉한 일본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감독 나가이 아키라)이다. ‘전차남’ ‘고백’ ‘악인’ ‘모테키’ ‘늑대아이’ 등 수많은 히트작을 제작한 일본 최고의 영화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의 첫 소설이 원작이다. 이 소설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감동적인 스토리로 호평을 들으며 2013년 일본서점대상 후보에 올랐고, 현지에서 7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국내 고양이 애호가들이 보고 기겁을 할 만한 제목이지만 이 영화는 ‘고양이 영화’는 아니다. 삶과 추억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살기 위해 익숙한 것, 소중한 것을 없애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운 좋게 주인공처럼 그런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지 않아 실감은 나지 않지만 막상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기자는 당장 죽더라도 익숙한 것, 소중한 것을 사람들에게 남긴 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즉, 아무 것도 없애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가장 허무한 것은 자신이 더는 이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에게서 잊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전화를, 영화를, 시계를, 고양이를 차례로 잃어가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렇게 살아남은 세상에서 전화나 시계가 없어 불편해져서도, 영화를 못 보게 돼 심심해져서도, 고양이를 못 키워 외로워서도 아니다. 그것들 덕에 자신이 수십 년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한 모든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그로 인해 그들이 자신을 잊는, 아니 아예 인식조차 못 하는 것이 싫고 두려워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좋은 이름이든, 나쁜 이름이든 살고 간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은 오명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그런 오류는 수정하면 된다. 사과하고 용서받고, 죗값을 치르고 갱생하면 된다. 그러나 존재마저 부정 당한다면, 모두가 그를 잊고 싶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면 60년 넘게 이 세상에 존재했다 해도 허무할 것이다. 방금 내가 죽을 뻔했지만 살았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그러면서 ‘내가 세상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데 소중한 것들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생각하자. 소중한 사람들과 계속 인연을 맺고 서로의 추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데 감사하자.무엇보다 존재하지 않은 사람 취급 받지 않는 것을 감사하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