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로힝야 지우기' 현실화 되나
【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로힝야 같은 건 없다' 지난 2일자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수 세대에 걸쳐 터를 이루고 살았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미얀마 무슬림 소수족 로힝야의 현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한 문장이다. 지난 8월 25일 새벽 로힝야 반군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 수 십 명은 나무막대기와 칼을 두른 채 라카인 주 내 경찰 초소 수 십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곧바로 미얀마 군은 이들에 대한 대응을 시작했다. ARSA에 대한 작전을 벌이던 미얀마 군은 민간인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로힝야가 살고 있는 마을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어린 소녀부터 성인 여성에 이르기까지 성폭행을 하고 무차별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군에 잇단 폭력에 일부 로힝야는 강을 건너 이웃 나라 방글라데시로 도망쳤다. 지금까지 국경을 넘은 로힝야의 수는 6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힝야 인구의 3분의2에 해당하는 숫자다. 유엔은 이를 '인종청소'라고 비난했다. 로힝야가 언제부터 미얀마에 살았는지는 아직까지도 논란 거리다. 로힝야는 자신들이 오래 전 미얀마에 정착한 아랍 상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미얀마는 로힝야가 19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 시절 방글라데시에서 넘어 온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와의 갈등이 계속됐다. 1982년 군부는 시민권 법을 통과시켜 로힝야에 대한 시민권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로힝야가 지금처럼 박해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로힝야 출신의 변호사이자 정치범인 우 쩌 흘라 아웅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2009년 라카인 주의 주도 시트웨의 시장에 가면 로힝야 어부가 라카인 주 여성에게 해산물을 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로힝야 출신의 법학자와 의학자도 있었고, 시내 중심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자마 모스크였다. 이맘은 시트웨의 다문화 유산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아버지는 시트웨에서 법정 서기로 일했었다.
미얀마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로힝야를 역사에서 지우려 하고 있다. 우 쩌 산 흘라 라카인 주 보안부처 관계자는 "로힝야 같은 건 없다. 로힝야는 가짜 뉴스다"라고 말했다. NYT는 로힝야에 대한 미얀마의 갑작스러운 '기억상실'은 체계적이고 대담하다고 지적했다. 대학에서 로힝야학생회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공립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우 쩌 민(72)은 미얀마 정부에 의하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군부에 의해 선거 결과가 무효화된 1990년 치러진 총선에서 의회 의석을 얻기도 했다. 현재 미얀마 양곤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미얀마에서 로힝야는 끝났다. 곧 우리는 모두 죽거나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웅은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아무 것도 아닌 채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로힝야는 "우리는 인간으로서 어떠한 권리도 갖고 있지 않다"며 "이것은 국가에 의한 인종청소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라카인 주에서 자행된 미얀마 군의 탄압은 로힝야의 역사, 문화, 지식을 약화시키기 위해 선생님과 문화·종교 지도자, 지역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로힝야 학살은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던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은 여전히 로힝야를 외면하고 있으며,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 역시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난 자리에서 "미얀마에는 종교적, 민족적 박해나 차별은 없다"며 로힝야를 철저히 배제시켰다. 지난달 미얀마 정부와 방글라데시 정부가 송환 협정을 맺었지만, CNN은 "본국 송환을 원하는 난민이 얼마나 있을지, 또 미얀마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결국 로힝야는 방글라데시의 홍수가 빈발하는 섬으로 보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정부는 국내에 머물고 있는 로힝야 난민을 남부 해안가 저지대에 있는 바샨 차르섬(덴가 차르섬)에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글라데시는 로힝야를 본국으로 송환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바샨 차르 수용소 건설 승인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이 머물 수용소는 최대 10만명이 머물 수 있는 규모로 지어지며 오는 2019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용소 건설에는 2억8000만 달러(약 3030억원)가 소요될 전망이다. 바샨 차르는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곳으로 벵갈만의 하티야에 위치해 있으며, 인근 메그나강이 흐른다. 바샨 차르는 벵골어로 '뜬 섬(floating island)'을 의미한다. 과거 이 섬은 해적의 은신처로 악명이 높았다. jaelee@news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