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왕 나루히토, 아베 우경화 견제 역할 이어갈까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아키히토(明仁·85) 일왕이 고령을 이유로 4월30일 퇴위하고 나루히토(德仁·59) 왕세자가 5월1일 즉위함에 따라, 일본 정부는 새 연호(年號)를 마련하고 지폐 도안 변경을 추진하는 등 새 시대를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일왕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정치 권력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일본 국민들에게 일왕은 정신적 지주이자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아키히토 일왕은 재해 등 일본에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지역을 직접 찾아가 국민들의 손을 맞잡고 위로하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또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裕仁) 전 일왕의 아들이라는 책임 때문인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를 강조하는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우경화 행보에 제동을 거는 견제자 역할도 해왔다. 그는 즉위 이후 한 번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지 않아 일본 우익 세력의 반발을 샀으며, 2001년 생일 기자회견에서는 "역사책 '속일본기'에 간무일왕( 桓武·737~806년)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쓰여 있어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며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한국 방문은 양국간 미묘한 관계 탓에 실현되지 못했지만, 지난해 9월에는 일본 내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고마(高麗)신사를 참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과 달리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이자 평화주의자로서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그의 뒤를 이을 나루히토 왕세자가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아키히토 일왕의 장남으로 1960년생으로 전쟁을 겪지 않은데다 그간 정치적 발언을 좀처럼 하지 않아, 전쟁이나 평화 등에 대한 그의 가치관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2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을 맞은 2015년 기자회견에서 전쟁과 평화헌법 등에 대해 아버지의 뜻을 답습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나루히토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지만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려고 하는 오늘, 겸허히 과거를 되돌아 보고, 전쟁 체험 세대에서 이것을 모르는 세대에게 비참한 체험이나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일본은 전쟁의 참화를 거쳐 전후 일본국헌법(평화헌법)을 기초로 세워져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며 평화헌법 수호 의지를 밝히는 등 부친의 뒤를 이어 우경화 행보를 이어가는 아베 정권에 경고음을 발신하는 살아있는 양심으로 역할을 할지 기대도 일고 있다. 반면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고 하는 아베 총리는 나루히토 일왕 시대에 사용하게 될 연호와 지폐에도 군국주의적 색채를 은밀히 반영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나루히토 일왕 시대에 사용할 연호를 ‘레이와(令和)’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는데, 발표 직후부터 외신을 비롯해 일본 내부에서도 레이와가 일본 정치의 우경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레이와가 '평화나 조화 또는 일본다움을 명령한다'로 해석되는데다, '와'자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 당시 일왕의 연호인 쇼와(昭和)에 사용된 글자와 같아 군국주의 회기 움직임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또 레이와의 출전이 된 일본 고전시가집 '만요슈'(万葉集)도 과거 군국주의 시대에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이용돼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아베 정부가 발표한 2024년부터 사용할 새 지폐 중 1만엔권 초상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1840~1931년)가 구한말 한반도 경제침탈의 선봉에 섰던 상징적 인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같은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에 맞서 나루히토 왕세자가 부친의 소신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나루히토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美智子) 왕후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는 동생 후미히토(文仁) 왕자, 사야코(清子) 공주가 있다. 명문 사립대학으로 왕족들이 주로 다니는 가쿠슈인(学習院)대학에서 역사학과 교통사 등을 전공해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대학에서도 2년간 공부했다.
1993년 하버드대 출신으로 도쿄대학 재학 중 외무고시에 합격한 재원인 마사코(雅子)와 결혼해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나루히토는 1986년 스페인 공주 환영식에서 마사코를 처음 보고 호감을 느껴 7년에 걸쳐 결혼에 골인했다는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루히토 왕세자의 결혼 당시 일각에서는 외교관 출신인 마사코가 일본 왕실외교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결혼 초반 마사코는 외국 순방 등 대외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25년이 넘은 지금 일본 국민들은 마사코 왕세자비가 왕비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이다. 마사코는 보수적인 왕실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로 2003년 말부터 우울증의 일종인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요양 중으로, 10년 넘게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며 두문분출하고 있다. 다만 마사코 왕세자비는 지난해 자신의 생일을 기념한 성명에서 "앞일을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불안하다"면서도 "국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밝혀, 왕비로서 공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