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제각각 여행자들, 한데 모이다 '비와 별이 내리는 밤'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본다. 이리저리 비추는데, 정작 본인만 못 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쉽게 판단한다. 메이브 빈치 장편소설 '비와 별이 내리는 밤'은 타인에 대한 이해, 공감능력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연한 만남이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그리스 바닷가마을의 한 식당에 여행자 4명이 찾아온다. 아일랜드에서 온 간호사 피오나, 캘리포니아 출신 영문학 교수 토머스, 독일의 저널리스트 엘자, 수줍은 영국인 청년 데이비드. 나이도 직업도 국적도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타베르나에 도착했을 때 언덕 아래 항구에서 유람선 화재사고가 발생한다. 식당 주인 안드레아스와 함께 참담한 심정으로 비극을 지켜본다. 각자만의 사연이 있다. 피오나는 함께 여행중인 남자친구 셰인을 반대하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쳐온 것이었다. 토머스는 이혼한 아내가 재혼하게 되자 아내와 아들이 좀더 편하게 새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안식년을 핑계로 장기 여행 중이다. 방송국 뉴스 프로그램 MC인 엘자는 방송국 대표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직장을 관뒀다. 데이비드는 사업과 돈 버는 것, 그 회사를 자신에게 물려주는 것에만 관심있는 부모로부터 도망쳤다. 어쩌다 한자리에 모였을 뿐이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아무래도 여행지에서는 마음이 많이 풀어지기 마련이다. 낯가림이 심한 사람도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말하기 쉽다. 이들은 허심탄회하게 본인 이야기를 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아기아안나에 계속 머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삶의 문제를 더욱 치열하게 고민한다. 각자가 두고 떠나온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한다. 고민들이 조금씩 해결되면서 이들의 삶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확연히 달라진다. "지난주에 내가 보낸 편지, 당신이 읽은 거 알아. 호텔 직원이 당신에게 전해줬다고 했어. 제발 게임은 그만하자, 엘자. 언제 돌아올지 알려줘. 무대에 오른 배우가 당신만은 아니야. 나도 내 삶이 있어. 내가 왜 당신이 돌아온다는 것, 언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해야 하지? 제발 오늘 대답해줘." "오후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안드레아스가 커피를 내왔다. 아무도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언덕 높이 자리잡은 이곳 타베르나에서 저 아래의 항구가 내려다보였고, 거기에선 지옥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화창한 날이 죽음과 재앙의 하루가 되었다. 그들은 쌍안경을 통해 들것에 실려나가는 시신들과 몰려드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보려고 서로 밀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여기 언덕 위에서 안전하다고 느꼈고, 어쩌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됐을 뿐 서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적게 말하거나 너무 많이 말하게 될 때가 있죠. 그럴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아요." 정연희 옮김, 426쪽, 1만4500원, 문학동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