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우리 노래, 공감·감동·위로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 7' 발매 기념 기자회견'맵 오브 더 솔' 연작 앨범, 매시지 일관성앨범 초창기 곡들 반영한 리부트 콘셉트"그림자 인정하는 것만으로 마음 편해져"
K팝을 넘어 세계 대중음악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기록에 연연하지 않았다. '기록소년단'이라 불리는 이들은 '빌보드 200' 네 번째 1위가 확실시되지만 숫자보다 의미에 방점을 찍었다.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은 24일 오후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 7' 발매 기념 기자회견에서 세대를 넘어 물려줄 수 있는 자신들의 유산으로 "노래와 앨범"을 꼽았다. "저희의 노래와 앨범은 평소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가사로 만든 거잖아요. 그 가사들을 엮어서 완성도 높은 시리즈 앨범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죠. 수십 년 전부터 활동을 해오던 아티스트분들의 노래가 여전히 많은 분들에게 공감, 감동, 위로를 주는 것처럼 저희 노래와 앨범도 많은 분들에게 앞으로 공감, 감동, 위로를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타이틀곡 ‘온(ON)’ 등에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그림자와 빛을 동시에 인정한다는 큰 다짐이자 선언을 담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분홍빛의 전작은 세상의 즐거움에 대해 주로 노래했다. 진은 "우리가 있기까지 수없이 거쳐 온 길, 현재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어요. 그간 숨기고 싶었던 깊은 내면을 드러냈고 동시에 그것이 우리 진짜 모습임을 알게 된 방탄소년단을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슈타인은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스위스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브 융의 이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융 전문가'로 꼽힌다. '융의 영혼의 지도'는 일종의 융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해설서다. 이 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자신들의 '맵 오브 더 솔' 연작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대한 물음이 섬처럼 곳곳에 새겨진 '영혼의 지도'를 찾아 떠난다.
방탄소년단은 이번 앨범을 알리기 위해 지난달 17일 공개한 컴백 트레일러로 슈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트로 : 섀도우'를 공개했다. 이달 3일에는 제이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웃트로 : 에고(Outro : Ego)'를 선보였다. 이런 트랙리스트를 기반 삼아 자아찾기 여정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이 나왔는데 그 여정에 팬덤 아미들도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됐다. 이날 RM은 각각 앨범에 따로 담아도 메시지가 충분한 '섀도우'와 '에고'를 이번 앨범에 한번에 담아낸 것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해 8, 9월 장기 휴가를 떠나면서 자신들의 컴백이 미뤄지게 됐고 그러면서 더 양질의 이야기가 많이 쌓였다고 했다. 그래서 "'섀도우'와 '에고'를 합쳐 내자는 이야기가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 나오게 됐다"고 했다.
10개월 전에 암호처럼 은밀히 예고됐던 '섀도우' '에고' 같은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이번 앨범에 녹아들어가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런 연결고리가 연작 시리즈 서사를 긴밀하게 만들면서 완성도를 높인다. 연작 시리즈는 처음부터 모든 서사를 완결시켜놓고 작업을 해나가는지가 궁금하다. RM은 "연작 앨범 개요를 만들면서 '페르소나' '섀도우' '에고' 등의 큰 얼개는 잡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살아가다보면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힙합 장르인 '온'의 노랫말 중 '캔트 홀드 미 다운 비코즈 유 노 아임 어 파이터'는 곡의 핵심을 파고드는 부분이다. 슈가는 "데뷔 후 7년을 보내면서 가끔 휘청거릴 때도 있고 중심을 못 잡고 방황할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내면의 그림자, 두려운 마음이 커졌죠. 이젠 무게중심을 어느 정도 잡고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무게중심을 잡는 법을 알게 되면서 저희가 받았던 상처, 시련, 슬픔 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싸우겠다는 다짐을 담았죠"라고 부연했다. 이번 앨범의 또 다른 특징은 '리부트(Reboot) 콘셉트'를 적용했다는 점이다. 방탄소년단의 데뷔 초 '학교 3부작' 앨범을 차용 및 재해석했다. 지난 '맵 오브 더 솔 : 페르소나'의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두 번째 미니 앨범 '스쿨 러브 어페어(Skool Luv Affair)'의 타이틀곡 '상남자'(Boy In Luv)'와 맞닿아 있다면, 이번 타이틀곡 '온'은 첫 번째 미니 앨범 'O!RUL8,2?'의 타이틀곡 'N.O'와 대응한다. 또, 이번 앨범의 수록곡 '위 아 불릿프루프 : 더 이터널(We are Bulletproof : the Eternal)'은 데뷔 앨범 '2 쿨 포 스쿨'의 수록곡 '위 아 불릿프루프 Pt.2'를 잇는 노래다.
이번 앨범 덕분에 멤버들은 지난 7년을 돌아보는 시간도 보냈다. 지민은 결국 "7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됐다"면서 "우리 7명을 빼놓고는 우리 인생에 대해 설명이 안 될 것 같다"고 여겼다. RM은 이번 앨범 선공개곡 '블랙스완'을 비롯 '다운 템포의 곡'들을 작업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블랙스완'은 예술가의 자의식을 담은 곡이다. 방탄소년단은 '블랙스완'이 '미국 현대무용의 대모' 마사 그레이엄(1894~1991)의 명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이라고 밝혔다.
'블랙스완'은 발레계 대표 캐릭터 중 하나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우아한 백조 '오데트'을 맡은 주역 여성 무용수가 상반된 관능적인 흑조, 즉 블래스완인 '오딜'까지 연기한다. 이처럼 '블랙스완'은 보통 예술가의 양가적 내면을 상징한다. RM은 "저희는 여전히 싸우는 것 같아요. 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대해, 저희가 이런 시련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있죠"라고 털어놓았다.
미국 CBS '더 레이트 레이트 쇼 위드 제임스 코든'에서 처음 공개한 '블랙 스완' 무대는 이 아트 필름을 연상케하는, 서정적이면서도 예술적 감성을 한층 끌어올린 퍼포먼스로 주목 받았다. 멤버들이 무대에 '맨발'로 올라 더 크게 회자됐다. 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은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미국 뉴욕, 대한민국 서울 등 세계 5개국 예술 작가들과 협업한 글로벌 현대미술 프로젝트 '커넥트(CONNECT), BTS'를 통해 다양성의 긍정, 소통, 연결 등 자신들이 추구하는 철학을 현대미술로 확장시켰다. 현대미술, 현대무용 등 새로운 영역과 조우하며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잇는 교두보 역을 할 수 있는 위치까지 격상된 것이다.
평소 현대미술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RM은 "언어의 형태가 다를 뿐 현대미술과 음악은 동등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시대성, 소통 등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기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지난달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한국이 독창성을 인정받은 것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제가 지금 골든 글로브에 와 있긴 하지만, BTS가 누리는 그 파워는 저의 한 3000배는 넘는다. 한국은 그런 멋진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나라다. 감정적으로 격렬하고 역동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이 세계에서 인정 받는 증거는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권위는 인정 받으나 여전히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그래미어워즈'를 조금씩 균열내고 있다. 작년에는 시상자로 참석했고, 올해 1월에는 K팝 가수 중 처음으로 퍼포머로 무대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어워즈 수상도 멀지 않았다고 점치고 있다. 슈가는 "한 스텝, 한 스텝 '그래미어워즈'를 향해 밟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놀라워요. 내년이 기대되는 시상식이었죠. 우리가 원한다고 참석이 되는 것이 아니지만 내년에도 가도록 열심히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웃었다.
다만 제일 강력한 부분은 "본질이 무엇인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아이러니하게 세계성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저희가 느끼고 있는 고민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세대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를 좋아해주시면서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공부를 해주시는 아미분들에게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 7년간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항상 빛났다. 슈가 역시 "저희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항상 지금"이라고 했다. "어제도 아니고 1년 전도 아닌 지금이죠. 계단식으로 성장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지금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현재가 무척 다행스러워요."
"제 그림자를 정확하게 마주봐야 하는 것 같아요. 언제나 저희 발 밑에 태초부터 있었죠. 그림자와 싸워 이기는 문제가 아니에요. 거기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요."(슈가) 이날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릴 예정이던 방탄소년단 기자회견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우려로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유튜브 중계는 22만명이 동시에 시청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