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핵심 의제는 '기본소득'…이달 1호 법안 나온다
김종인이 띄운 기본소득…21대 국회 초반부터 이슈화與 소병훈, '국가기본소득위' 구상 담은 법안 발의키로5년마다 기본계획 만들고 액수와 지급방식 결정 내용여야 의원들 참여 '기본소득연구모임'도 조만간 발족野 이양수, 기본소득 재원 마련 근거 담은 법안 준비막대한 재원 마련과 기존 복지체계 수술 여부가 관건與 일각 '증세' 필요 제기…野는 '복지 구조조정' 초점
[서울=뉴시스] 김형섭 김남희 기자 =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기본소득'이라는 거대 담론을 놓고 정치권의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진보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기본소득 카드를 '보수 본류'인 미래통합당이 꺼내들면서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보편적 복지제도다. 국민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국가가 일정 금액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을 일컫는다. 심사 등의 까다로운 절차나 자격 조건 없이 특정 집단 개개인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성 지원을 한다는 점이 기본소득의 특징이다. 핀란드와 캐나다 일부 주에서 실험적으로 도입한 바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제도화한 국가는 아직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부실한 사회안전망과 취약계층의 생계유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의제화의 계기가 만들어졌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등 여권 지자체장들이 힘을 보태며 주목을 받게 됐다. 국회에서는 기본소득당과 미래당, 시대전환 등 주로 소수정당을 중심으로 논의됐다가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보수정당으로서는 파격적으로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급격한 이슈화에 부담을 느낀 김 위원장이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소득을 당장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국가 재정이 어떻게 뒷받침을 할 수 있을지 먼저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며 속도 조절에 나서기는 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준비와 맞물려 기본소득은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21대 국회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특히 당초 기본소득이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암울한 미래상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새로운 복지 체제라는 점에서 21대 국회 전반을 관통하는 장기 어젠다로 작용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내년부터 다가올 대선 레이스에서 복지 문제의 주요 화두로 기본소득 논의가 자리잡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야 대선주자들의 기본소득 관련 공약이 대권 판도를 흔들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기본소득은 복지는 물론 노동, 세제까지 사회·경제 체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국가적 이슈다. 이 때문에 여야는 정당 차원의 접근에는 아직 신중한 모습이다. 그러나 개별 의원들 차원에서는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기본소득 입법화에 속도를 내는가 하면 의원들의 연구모임도 조만간 출범한다. 민주당에서 기본소득 논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소병훈 의원은 당장 이달 중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특정 직업군이나 계층이 아닌 제도 전반을 규정하는 사실상의 기본소득 1호 법안인 셈이다. 소 의원은 지난 5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기본소득이 우리나라에 정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철골 구조물과 같은 기본틀을 제시해보고 그 틀 안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를 진전시키자는 취지로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라며 "법안 검토는 마쳤고 6월 내에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 의원이 발의할 '기본소득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민관이 참여하는 '국가기본소득위원회'를 만드는 게 골자다.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이 공동으로 위원장을 맡고 32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5년마다 기본계획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매년 4월말까지 이듬해 기본소득의 액수와 지급방식을 결정하면 다음해 1월1일부터 지급한다는 기본틀을 담고 있다.
소 의원은 다음주 국회연구모임인 '기본소득연구모임'도 발족할 계획이다. 지난 18대 총선 출마 당시부터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는 민주당 허영 의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함께 한다. 허 의원은 소 의원의 제정안과 별개의 기본소득법 발의도 준비 중이다. 허 의원은 통화에서 "굉장히 세밀하게 설계가 돼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숙의 과정을 거쳐서 발의할 예정"이라며 "세부적인 실행 방안까지 담으려고 한다. 공청회도 두 번 정도 열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합당에서도 이양수 의원이 기본소득 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이 의원은 당초 농어민기본소득을 고민했다가 전계층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소득제를 고민 중이다. 이 의원은 통화에서 "(처음 생각은) 농어민기본소득에서 출발을 했는데 필요한 계층부터 점점 넓혀 가면서 우리 국민에게 전체적으로 적용되는 기본소득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AI와 로봇이 일자리를 다 대체할 텐데 미래에 일자리를 빼앗긴 국민들은 나라에서 주는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공무원들이 이 법에 근거해 재원대책을 마련하는 수준까지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라며 "늦어도 정기국회 전인 7~8월께는 발의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통합당에서는 박덕흠 의원이 농민을 위한 기본소득 개념인 '농업인기초연금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농업인의 생활안정을 위해 매월 최소 10만원 이상의 현금이나 지역상품권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기본소득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다. 아직 정치권의 기본소득 논의가 초기 단계에 있다보니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 구상까지는 거론이 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기본소득에 대해 "현재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는 이르다"고 선을 긋고 정치권의 논의가 개별 의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재원 부담 때문이다. 아직 아이디어일 뿐이지만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기본소득 지급 액수는 1인당 20만~60만원 수준이다. 이번에 1인가구에 30만원이 제공됐던 긴급재난지원금 규모를 고려해 기본소득이 월 30만원씩 지급된다고 가정하면 연간 180조원 가량이 필요하다. 이는 올해 본예산 총지출 규모 512조3000억원의 35%에 달하는 규모로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 전체 규모(180조5000억원)와도 맞먹는다. 만일 기존 복지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이같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재정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따라서 향후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화되면 재원 조달 방안과 기존 복지체계의 조정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대 국회서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민주당 '경제통'인 이원욱 의원은 지난 4일 페이스북을 통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여야정 추진위원회'를 제안하면서 증세 문제의 공론화를 거론했다. 그는 "법인세·소득세 최고과표구간 신설하자는 의견부터 국민개세주의를 위한 면세소득자와 면세사업자 구간 폐지, 보편적 증세를 위한 부가가치세 인상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증세 없는 기본소득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재정적자를 계속 감수할 수도 없다"고 했다. 차기 대권·당권주자로 거론되는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은 같은 날 '보수적 기본소득'에 대한 경계를 주장하면서 현 복지체계 위에 기본소득을 얹을 것을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기본소득에는 진보적 버전 말고도 보수적 버전이 있다. 기존의 복지를 줄이고 국가를 축소해 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원한 후 사회보장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토록 하자는 발상"이라고 지적하면서 "기본소득은 복지 강화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통합당에서는 기존 소득보장체계를 없애거나 축소한 뒤 이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쪽에 논의의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일종의 '복지 구조조정'인데 여기에 세출조정 등으로 재원을 충당해 기본소득을 감당하자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소득은 1차적으로 재정 조달이 가능할지를 먼저 봐야 한다. 현행 우리나라의 세입 수준으로 실현이 가능한지를 따져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3차 추경까지 가며 적자인데 이런 상황에서 하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통합당에서 기본소득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인 이양수 의원은 "유럽에서의 기본소득 실험도 그렇고 결국 관건은 재원"이라며 "기초연금, 노령연금 등을 다 포괄해서 재원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