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and]'쪽지·실세 예산' 회초리가 반가운 의원들 "널리 알려라"
예산 처리 후 '○○억 확보!' 의정보고·문자 봇물여야 막론 지역 예산 경쟁…언론 비판 되려 환영"언론에 혼난 만큼 '선물 보따리' 과시 플러스돼"비례대표도 예외 아냐…예산 전쟁에 '울고불고'"주민 요구 무시 못 해…제대로 된 투자 따져야"
내년 예산안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뒤 자신이 지역구 예산을 무더기로 챙겨갔다는 언론의 비판 기사를 본 한 의원의 반응이다. 보좌진과의 SNS 대화방에 기사 링크를 공유하며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라는 지시도 곁들였다. 해마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이른바 쪽지예산, 실세예산을 꾸짖지만, 지역구 의원들로선 반가운 회초리다. 연말은 국회의원에게 수확과 파종의 시간이다. 1년간 고생한 입법과 예산 확보 성과를 거두고, 이를 의정보고와 지역 행사를 통해 주민과 당원들에게 홍보하며 지지를 끌어모으는 것이다. 국회 기자들에게도 당일 하루로 치면 국정감사 못지 않게 보도자료와 문자가 홍수처럼 밀려든다. "○○○ 의원, 특별교부세 00억원 확보" "□□□ 의원, 내년도 주요 국비예산 000억원 확정" "지역 예산 대거 확보 △△△ 의원, 올해 역시 예산왕" 등의 제목이다. 이번에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여야 실세들은 지역구 예산을 대거 챙겨갔다. 예결위원장인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예산 심사를 마치자 마자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양주 발전을 위한 예산 편성에 최선을 다했다"면서 '파주~양주 고속도로 1112억원' 등 지역구인 경기도 양주 관련 예산 확보 내역을 문자로 돌렸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 관련 예산인 '매호 1지구 재해위험지역 정비 사업'에 11억4200만원을 증액했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의정보고에서 "이번 예산은 코로나19 극복과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해 편성됐다. 국민 여러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며 정부 주요 사업 예산을 열거한 뒤 지역구 사업예산 확보 목록을 곁들였다. 또다른 여당 원내 핵심 의원도 "코로나 피해 지원 예산을 중점적으로 늘렸고, 미래를 위한 의지를 담았다"고 전한 뒤 "더 큰 ○○(지역)을 만들기 위한 예산도 꼼꼼히 챙겼다"면서 경찰서, 주차장 등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마련을 위한 수백억원대 예산 내역을 첨부했다. 국회의장도 예외는 아니다. 한 지역 매체는 "내년도 예산안 곳곳에 박병석 국회의장의 '지역 사랑'이 숨어있다. 중립을 요구하는 국회의장 신분임에도 지역 예산을 물밑에서 대거 확보 및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호평했다. 일례로 대전에 건립되는 국회 통합디지털센터 사업 예산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22억8300만원이 증액됐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 입장에선 (언론에) 혼난 만큼 열심히 예산 선물 보따리를 가져왔다는 의미가 된다"며 "쪽지예산이든 뭐든 정치력과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자랑하는 데는 혼나는 보도가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알파"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의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21대 국회 첫해인 올해는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재선을 위해 속속 지역구를 낙점하는 2·3년차 부터는 치열하게 예산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 해마다 반복된다.
20대 국회 당시인 2018년 11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예산소위 도중 바른미래당 비례대표인 김수민 의원이 김재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과 고성을 주고받다가 눈물을 보이며 퇴장했다. 김수민 의원이 출마를 준비하던 청주의미술품 수장보존센터 예산을 김재원 의원이 삭감하려 하자 정면 충돌한 것이다. 김 의원은 이후 의정보고에서 "울고불고 싸우면서도 청주의 주요 사업들 예산을 증액시켰다"면서 수장보존센터 56억원, 가족센터 4000억원 등 예산 증액 성과를 자랑했다. 당시 김 의원 외에도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는 많은 비례대표 의원들이 예산 확보 전쟁에 뛰어들었다. 558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109조1000억원의 국채가 발행됐다. 이에 따라 국가 채무는 총 956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7.3%에 달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유권자들이 자기가 사는 지역의 공공 이익을 우선시해서 투표를 하고 정치인들도 이를 무시할 수 없음을 나타내기에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면서도 "그렇게 가져간 돈이 과연 그 지역의 진정 절실한 이익에 투자가 됐느냐는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