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현대사,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으로 정리한다
中공산당, 8~11일 6중전회 시작…시진핑 3연임 토대 마련 전망공산당사에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 삼등분 개념 각인 예상문화혁명·천안문사태 등 과거사 오류 지적 여부에도 관심 집중
이번 회의에서 공산당 100년 역사상 세 번째 역사적 결의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인데 세 번째 역사적 결의에 담길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시진핑 장기집권의 정당성 강조 이번 6중전회는 내년 가을의 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의 3연임을 위한 토대를 닦는 자리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지난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집권한 후 2017년 19차 당 대회에서 연임됐고, 20차 당 대회에서 집권 연장에 나서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런 6중전회에서 채택될 역사적 결의인 만큼 시 주석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데 별다른 의견이 없다. 세 번째 역사결의에는 시 주석이 집권 이후 추진해 온 ‘일대일로’ 구상, 부패척결, 빈곤퇴치 등 성과들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의 발표를 통해 ‘건국의 대부’ 마오쩌둥이 중국을 일어서게 했고, ‘개혁개방의 설계사’덩샤오핑은 중국을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시 주석은 중국을 강댜하게 만들었다는 기조를 부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공산당 역사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으로 삼등분 세 번째 역사적 결의 발표를 통해 중국공산당 당사(黨史)에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으로 삼등분하는 개념이 각인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올해로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0년의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역사적 결의가 발표된 것은 두 번에 불과하다. 생사와 존망의 기로에 섰을 때 역사적 결의가 발표됐다는 것이 공산당 당사의 주장이다. 첫 번째 역사적 결의는 1945년 4월 공산당 6기 7중전회에서 나온 '여러 과거사 문제에 관한 결의'다. 1943년 당 주석으로 선출된 마오쩌둥은 1945년 역사 결의를 통해 자신과 경합했던 왕밍(王明)이 대표한 교조주의 ‘좌경 착오’에 대한 자세한 결론을 내렸다. 마오는 이를 통해 당내 핵심 지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마오쩌둥 사후 실권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두 번째 역사적 결의를 통해 마오가 일으킨 문화대혁명을 좌경 편향 오류로 규정했다. 두 번째 역사적 결의 발표로 덩샤오핑 시대가 열렸고, 덩은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마오쩌둥은 공산당 창당이 창당된 1921년부터 1945년까지, 덩샤오핑은 신중국이 수립된 1949년부터 1981년까지의 역사 문제를 청산하고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 3세대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이제 자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대내외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오류 지적 여부도 관전포인트 과거 역사 결의는 공산당의 연속성을 강조하되 일부 과거사의 오류를 명확히 지적했다. 세 번째 역사결의에 과거사 오류 지적 여부, 논쟁적 사건에 대한 재평가 내용이 담길지가 또 다른 관점 포인트다. 첫 번째 역사 결의는 교조주의 좌경 착오를 비난했고, 두 번째 역사적 결의는 “문화대혁명이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왔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역사 결의에 두 번째 ‘역사결의’가 평가한 반우파운동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물론 1989년 톈안먼 민주화운동에 대한 어떤 평가가 담길지가 주목받고 있다. 다만 중국공산당 내 권력 투쟁과 파벌 경쟁이 횡행하던 시대가 지나갔고, 시진핑의 1인체제가 어느 때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과거 부정을 통해 리더십을 강화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세 번째 역사 결의가 당의 내부 결속을 다지고 ‘승전계후(承前啓後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를 연다)’식의 결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결의가 “문화대혁명은 ‘10년 대재앙’이고, 톈안먼 사태는 ‘동란’”이라는 두 번째 결의의 정의를 유지하는 동시에 톈안먼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좀 더 ‘온화한 방식’으로 묘사할 것이라는 기대도 존재한다. 톈안먼 사태가 시진핑 본인의 ‘부채’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