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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현대사,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으로 정리한다

등록 2021-11-07 07:00:00   최종수정 2021-11-08 10: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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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中공산당, 8~11일 6중전회 시작…시진핑 3연임 토대 마련 전망
공산당사에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 삼등분 개념 각인 예상
문화혁명·천안문사태 등 과거사 오류 지적 여부에도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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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신화/뉴시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인민복 차림으로 등장한 시 주석은 "외부 세력이 괴롭히면 14억 명의 강철 만리장성에 부딪혀 피가 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중화민족이 당하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2021.07.02.
[서울=뉴시스] 문예성 기자 = 시진핑 국가주석의 위상을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에 맞먹는 수준으로 격상시킬 중국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전회)가 8일부터 11일까지 비공개로 개최된다.

이번 회의에서 공산당 100년 역사상 세 번째 역사적 결의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인데 세 번째 역사적 결의에 담길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시진핑 장기집권의 정당성 강조

이번 6중전회는 내년 가을의 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의 3연임을 위한 토대를 닦는 자리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지난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집권한 후 2017년 19차 당 대회에서 연임됐고,  20차 당 대회에서 집권 연장에 나서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런 6중전회에서 채택될 역사적 결의인 만큼 시 주석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데 별다른 의견이 없다.

세 번째 역사결의에는 시 주석이 집권 이후 추진해 온 ‘일대일로’ 구상, 부패척결, 빈곤퇴치 등 성과들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의 발표를 통해 ‘건국의 대부’ 마오쩌둥이 중국을 일어서게 했고, ‘개혁개방의 설계사’덩샤오핑은 중국을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시 주석은 중국을 강댜하게 만들었다는 기조를 부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공산당 역사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으로 삼등분

세 번째 역사적 결의 발표를 통해 중국공산당 당사(黨史)에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으로 삼등분하는 개념이 각인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올해로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0년의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역사적 결의가 발표된 것은 두 번에 불과하다. 생사와 존망의 기로에 섰을 때 역사적 결의가 발표됐다는 것이 공산당 당사의 주장이다.

첫 번째 역사적 결의는 1945년 4월 공산당 6기 7중전회에서 나온 '여러 과거사 문제에 관한 결의'다.

1943년 당 주석으로 선출된 마오쩌둥은 1945년 역사 결의를 통해 자신과 경합했던 왕밍(王明)이 대표한 교조주의 ‘좌경 착오’에 대한 자세한 결론을 내렸다. 마오는 이를 통해 당내 핵심 지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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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AP/뉴시스】 시진핑 주석이 11일 주석직 임기 제한 구절을 삭제할 헌법개정안 표결을 앞둔 전인대 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2018. 3. 11.
두 번째 역사적 결의는 1981년 11기 6중전회에서 '건국 이래 당의 여러 과거사 문제에 관한 결의'다.

마오쩌둥 사후 실권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두 번째 역사적 결의를 통해 마오가 일으킨 문화대혁명을 좌경 편향 오류로 규정했다. 두 번째 역사적 결의 발표로 덩샤오핑 시대가 열렸고, 덩은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마오쩌둥은 공산당 창당이 창당된 1921년부터 1945년까지, 덩샤오핑은 신중국이 수립된 1949년부터 1981년까지의 역사 문제를 청산하고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 3세대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이제 자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대내외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오류 지적 여부도 관전포인트

과거 역사 결의는 공산당의 연속성을 강조하되 일부 과거사의 오류를 명확히 지적했다.

세 번째 역사결의에 과거사 오류 지적 여부, 논쟁적 사건에 대한 재평가 내용이 담길지가 또 다른 관점 포인트다. 

첫 번째 역사 결의는 교조주의 좌경 착오를 비난했고, 두 번째 역사적 결의는 “문화대혁명이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왔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역사 결의에 두 번째 ‘역사결의’가 평가한 반우파운동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물론 1989년 톈안먼 민주화운동에 대한 어떤 평가가 담길지가 주목받고 있다.

다만 중국공산당 내 권력 투쟁과 파벌 경쟁이 횡행하던 시대가 지나갔고, 시진핑의 1인체제가 어느 때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과거 부정을 통해 리더십을 강화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세 번째 역사 결의가 당의 내부 결속을 다지고 ‘승전계후(承前啓後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를 연다)’식의 결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결의가 “문화대혁명은 ‘10년 대재앙’이고, 톈안먼 사태는 ‘동란’”이라는 두 번째 결의의 정의를 유지하는 동시에 톈안먼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좀 더 ‘온화한 방식’으로 묘사할 것이라는 기대도 존재한다. 톈안먼 사태가 시진핑 본인의 ‘부채’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sophis73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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