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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등록 2022-05-20 10:22:00   최종수정 2022-05-20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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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사진= 푸른역사 제공) 2022.05.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얼마 전 한국미술사를 연구하고 있는 신수경 선생에게 메시지가 왔다. 일 때문에 남양주에 왔는데, 방문한 곳이 내 사무실이 자리한 건물과 같다며 소개해 드릴 분이 있으니 함께 만나 뵙자는 내용이었다.

신 선생이 소개해주신다는 분은 화랑협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조선화랑의 권상능 선생이었다. 내가 입주해 있는 지식산업센터 5층에 그분의 사무실이 있으니 10층에 입주한 나와는 이웃사촌이나 마찬가지였다. 밖에서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신 선생 일행을 만났다. 세련된 차림의 어르신은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아주 건강해 보였다.

내가 영화사를 연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선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1957년부터 시작한 문화영화 제작 이력을 말씀해주셨다. 특히 선생은 고려영화사의 최완규 사장의 주선으로 원로 배우 하지만을 소개 받아 만든 문화영화가 기억에 많이 남는 듯,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선생은 상대적으로 젊은 연구자가 영화제작자 최완규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 하지만을 알고 있다는 게 기특했는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젊은 시절의 한때를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어느새 선생의 이야기는 4·19 당일 영화카메라를 들고 서울 시내의 시위현장을 기록했다는 흥미로운 비사로 이어졌다. 이야기에 푹 빠져 듣고 있다 보니 문득 의문이 생겼다. 1957년 무렵부터 극영화 제작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데, 선생은 왜 상업영화 제작이 아닌 화랑을 하게 됐는지를 여쭈었다.

약간 머뭇거리시던 선생은 운명 같은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동네의 한 살 위 누나인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임미정과의 결혼, 1961년 5·16군사 쿠테타 직후 임미정의 외삼촌 황태성이 이북에서 특사 자격으로 박정희를 만나러 내려온 이야기, 황태성과 인연이 깊은 박정희의 형수 조귀분을 통해 김일성의 친서를 박정희에게 전달하려 했던 상황, 소위 황태성 사건으로 체포되어 복역한 이야기 등등.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황태성 사건의 직접 당사자를 이렇게 눈앞에서 만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간 비밀로 묻어두었던 황태성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사건은 남로당 출신의 박정희에게 큰 부담이었다. 박정희는 대통령에 당선된 그 해의 끄트머리에서 황태성을 사형시켜 버렸다. 먼저 출소하여 옥바라지를 하고 있던 권 선생 부부는 12월 어느 날 그가 사형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시신을 인계받아 장례를 치렀다.

얼마 후 야당에서는 황태성의 종적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공화당에서는 권 선생에게 국회에서 황태성이 사형 당해 인척인 권 선생이 장례까지 치렀다는 사실을 증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특사를 사형시킨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분노한 권 선생은 국회 증언을 거부했다. 이 문제는 4·19로 체포돼 수감생활을 하며 권 선생과 친했던 홍진기의 부탁을 받은 권 선생이 홍 사장의 방송사를 통해 황태성의 죽음을 확인해주면서 일단락됐다. 이 이야기는 훗날 홍라희 여사를 만난 자리에서 직접 들려줬다고 한다.

내게는 역사 속 이야기인줄만 알았던 황태성 사건은 권 선생님에게는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었다. 황태성 사건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2015년 푸른역사에서 김학민, 이창훈 공저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과 별개로 선생은 부인 임미정 여사와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작년에 임 여사가 사망하면서 회고록 작업은 잠시 멈춰 있는 상태라고 했다. 덕소에 살고 계신 선생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선생께 회고록이 꼭 출간됐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공교롭게도 박정희가 군대를 이끌고 한강을 건너 쿠테타를 일으킨 날과 꼭 같은 5월16일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쿠테타로 권력을 쥔 박정희가 황태성을 통해 김일성과 특사 교환을 이어갔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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