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그렇게 '걸스'가 되다…광야가 광장이 되기까지
이수만 프로듀서 창안한 SMCU 집약체'걸스'로 시즌 1 마무리
차세대 K팝 걸그룹 에스파가 지난 8일 발매한 두 번째 미니앨범 '걸스(Girls)'가 이뤄낸 환희다. 에스파 네 멤버는 2020년 11월 데뷔 이후 메타버스를 주축으로 한 SM 컬처 유니버스(SMCU)의 광야라는 가상의 영역에 주로 머물렀다. '걸스'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세상을 박차고 나오는 신호탄이다. 에스파로 인해 쉽게 이해하기 힘들 거 같았던 가상의 세계인 광야가 K팝 놀이 광장이 됐다. 성수동 SM 사옥이 슴덕(SM 마니아) 사이에서 물리적 광야가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지난달 20일 공개한 SMCU 세계관 영상 EP. 2 '넥스트 레벨(Next Level)'을 참고해 에스파의 무대, 메시지, 콘셉트를 해석할 때 이해도가 배가 된다. 거친 질감의 신스 사운드가 돋보이는 타이틀곡 '걸스'는 에스파와 아이-에스파(ae-aespa)'가 블랙 맘바(Black Mamba)와 본격적인 전투를 펼치는 과정을 그린다. 이후 성장한 모습으로 조력자 나이비스(naevis)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예고한다. 물론 이 에스파의 세계관에 들어가려면 단어 몇개는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광야가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는 무규칙·무정형·무한의 영역이자, 시간·공간이 규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무한한 에너지와 데이터가 흐르는 곳'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에스파의 데뷔곡 제목이기도 한 '블랙 맘바'는 인간과 아이의 '싱크'를 훼방하는 존재다. '싱크'는 리얼월드에 있는 인간과 플랫의 아이가 연결된 상태를 가리키고, 싱크아웃은 그 연결이 끊어진 상태를 뜻한다. 인간과 교감하던 아이가 어느날 싱크아웃돼 사라지기 시작하고, 이 사건의 주범인 블랙맘바를 쫓기 위해 에스파 멤버들은 일종의 인공지능 시스템인 '나이비스(nævis)'의 인도에 따라 광야로 들어간다. 17분 남짓의 SMCU 세계관 영상 EP. 2 '넥스트 레벨'은 지난해 공개된 EP. 1 영상 '블랙 맘바(Black Mamba)'에 이어 에스파의 히트곡 '넥스트 레벨'과 '새비지' 그리고 이번 '걸스'까지 설명하는 역을 하며 에스파의 팀 정체성과 세계관을 이해하게 만든다. '넥스트 레벨'에서 갑자기 왜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고 노래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에스파는 싱크아웃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나이비스의 도움으로 광야로 떠나 블랙맘바의 환각 퀘스트를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악플·편견·압박감·강박·완벽주의 등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트라우마들이 상징적으로 그려지며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수렴된다.
'걸스'는 최근 K팝 곡으로는 비교적 긴 4분이 넘는(4분1초) 곡인데, 종반부 '댄스 브레이크'에서 멤버들의 다양한 춤 동작들이 그렇다. 이런 점들은 'K팝을 왜 듣는가'에 대한 또 다른 명분을 만들어낸다. 화려한 비주얼과 퍼포먼스만이 전부가 아닌, 그 안에 다양한 이야기와 상징 그리고 세상에 대한 함의를 담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실 그간 K팝은 멤버들과 멤버들끼리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쌓여 서사를 만들어냈다. 팬덤을 위주로 한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이유다.
사실 SMCU은 근래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1998년 S.E.S의 '드림스 컴 트루'(에스파가 리메이크 하기도 했다), 같은 해 천계영 작가가 참여한 H.O.T. '우리들의 맹세'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2000년 H.O.T가 주연을 맡은 영화 '평화의 시대', 같은 해 보아의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 '동쪽 방향에서 신이 일어나다'라는 뜻의 동방신기(東方神起), 멤버별로 초능력을 부여하며 국내 K팝에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도입하게 된 엑소 등을 통해 꾸준히 공력을 쌓아온 결과물이다. 아울러 에스파의 '걸스'는 SM판 걸스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SM에게 걸스는 항상 화두였다. 1세대 걸그룹 S.E.S의 데뷔곡 제목부터가 '아임 유어 걸'이다. 이후 보아의 '걸스온탑', 소녀시대의 영문명 '걸스 제너레이션(GIRLS' GENERATION)', SM 걸그룹 멤버들이 뭉친 '갓(Girls On Top) 더 비트' 등 다양한 '걸'을 거치면서 에스파의 '걸스'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강력한 자신들만의 표상으로 각인되고 있다.
최근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이 드라마틱하게 연주한 리스트 12개의 '초절기교(超絶技巧) 연습곡' 중 5번 '도깨비불' 역시 난곡((難曲)의 낭만성이라는 신세계를 보여줬다. '걸스'로 세계관의 시즌1을 마무리한 에스파의 신세계는 점점 현실로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광야 같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인디오의 사막지대 코첼라 밸리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메인 무대인 '코첼라 스테이지'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또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UN 뉴욕 본부 총회 회의장에서 열린 '2022 지속가능발전 고위급 포럼'엔 미래 세대를 대표해 '넥스트 제너레이션 투 더 넥스트 레벨(Next Generation to the Next Level)'을 주제로 한 스피치를 펼쳤다. SMCU에서 제노글로시 능력을 갖춘 지젤이 유창한 영어로 스피치했다. 가상과 현실이 이렇게 가역반응을 일으킨다. 에스파는 정반응과 역반응이 함께 일어나며 두 세계 사이가 평형을 찾아가고 있다. 에스파와 아이 에스파처럼. K팝의 신세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