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300]변종, 혼종, 잡종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7월 4주차 개봉 영화 및 최근 개봉 영화 간단평을 정리했다.
◆거, 배짱 한 번 두둑하네…'외계+인'(★★★) '외계+인'에는 야심이 있다. 한국 최고 흥행감독 최동훈은 더 이상 웬만한 영화로는 성이 안 차는 듯 7년만에 내놓는 신작에다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것들을 한 데 담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기로 작정했다. 캐릭터 조형술이나 타이밍 좋은 유머, 차진 대사는 역시 최동훈스럽다. 그러나 온갖 장르가 뒤섞이고, 여러 개 스토리가 교차되며, 플롯이 흩트러져 있는 최동훈 영화는 처음이다. 캐릭터는 변종에 액션은 혼종이다. 이건 분명 전에 없던 잡종액션 영화다. 도전에는 리스크가 따르는 법. '외계+인'의 제작비 400억원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배짱 두둑한 시도다. 어떤 관객은 열광하겠지만, 또 다른 관객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을 것이다. 최 감독은 이제 이 낯선 영화를 들고 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 사상 처음으로 냉정하기 그지 없는 이른바 '호불호 평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최 감독은 "관객은 천사"라고 했다. 어떤 영화든 재밌게 봐줄 거라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관객은 정말 천사일지 아니면 악마일지 두고봐야 한다. ◆귀여우면 그만이야…'미니언즈2'(★★★) 덥다. 체력은 떨어진다. 일에도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쉬어야 하는데, 여름 휴가를 가려면 아직 몇 주 더 기다려야 한다. 기분전환이라도 하고 싶은데 더워서 어딜 가기도 귀찮다. 그럴 땐 집 가까운 영화관에 가야 한다. 영화관에 가서 어떤 스트레스도 주지 않는 너무 너무 귀여운 걸 봐야 한다. 그럴 때 이 작고 귀여운 악동들을 보면서 그냥 머리를 비우면 된다. 그게 바로 '미니언즈' 시리즈가 세계적인 흥행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미니언즈2'는 2015년에 나온 '미니언즈'의 후속작. '슈퍼배드' 시리즈의 악당 '그루'와 미니언의 인연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린다. 아무렴 어떤가. 귀여우면 그만이지. 뚜찌빠찌뽀찌! ◆이 청춘, 선 넘네…'썸머 필름을 타고!'(★★☆) '썸머 필름을 타고!'는 사무라이영화 마니아인 고등학생 '맨발'이 친구들고 함께 자신만의 사무라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그린 일본 청춘영화다.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일본영화 특유의 에너지와 귀여운 분위기를 가득 느낄 수 있다. 사무라이영화 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애정을 내내 드러내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 영화가 어떤 것이었나 새삼 생각하게 한다. 다만 한국 관객이 오래 기억하는 일본 청춘영화들과 비교하면 크게 인상적이지 않다. 다소 과장되고 작위적인 요소가 있는 게 청춘영화의 대체적인 특징이기는 하지만 '썸머 필름을 타고!'는 선을 넘는 장면이 있다. ◆화려하거나 요란하거나…'엘비스'(★★★☆) 역사상 최초의 록스타 혹은 로큰롤의 제왕 등 각종 화려한 수식어로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을 담은 영화다. 18살에 데뷔해 1950~70년대를 뒤집어놓고 4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배즈 루어먼 감독의 손에 맡겨졌다. 루어먼 감독은 '위대한 개츠비'(2013) '물랑루즈'(2001) '로미오와 줄리엣'(1996) 등 맡는 작품마다 더는 화려할 수 없을 것 같은 연출을 해온 연출가.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엘비스'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달리기 시작해 러닝 타임 2시간40분 내내 전력질주한다. 한 마디로 관객의 혼을 뺀다. 다만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아이콘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던 관객에게 이 영화는 너무 요란해서 마뜩찮은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이건 여성공포영화다…'멘'(★★★☆) 여름이니까 가볍게 공포영화 한 편 보겠다는 생각으로 골랐다가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극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방심해선 안 된다.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2015년 '엑스 마키나'로 인상적인 데뷔를 했던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공포영화는 깜짝 놀래키거나 선정적인 장면을 남발하는 방식으로 관객을 몰아갈 생각이 없다. '멘'은 외딴 곳에 있는 어느 집에, 조금 넓게는 외딴 어느 마을에 고립돼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여성이라는 콘셉트 하나로 충분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이건 여성공포영화다. 여성에게 예의 바른 척 무례하고 무지하고 무관심하며, 이를 넘어서 여자를 위협하고 협박하고, 어떻게든 여성을 손아귀에 쥐려는 남성은 호러 그 자체다. 이제 이 모든 위험에 익숙해진 여자는 그딴 거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듯 유유히 그 공포에서 빠져나간다. ◆한계효용체감의 액션…'토르:러브 앤 썬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토르' 시리즈 네 번째 영화 '토르:러브 앤 썬더'는 1, 2편보다는 낫지만 3편보다는 못하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캐릭터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던 토르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 인물. 그의 집도 방법 두 가지는 대놓고 화려해진 액션과 액션 못지 않게 화려해진 입담이었다. 와이티티 감독은 '스타일리쉬한 액션+B급 유머'라는 성공 공식을 3편 '라그나로크'에 이어 '러브 앤 썬더'에서도 써먹는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반복되면 한계효용체감이 일어나는 법. 이젠 와이티티의 방식이 새롭지가 않다. 게다가 119분이라는 러닝 타임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긴 것도 문제다. ①고르가 신을 학살하게 된 이유 ②토르와 고르의 대결 ③마이티 토르의 탄생 ④토르와 제인의 사랑 ⑤토르의 성장이라는 다섯 가지 이야기가 한꺼번에 진행되며 러닝 타임 내내 변죽만 울린다. ◆애덤 샌들러의 페이소스…'허슬'(★★★) NBA 팬이라면 아마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것이다. NBA 명문 구단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스카우트가 주인공인데다가 앤서니 에드워즈, 토바이어스 해리스, 애런 고든, 조던 클락슨, 타이리스 맥시, 덕 노비츠키 등 NBA 스타 플레이어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제작을 맡은 게 '킹' 르브론 제임스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코치가 되는 게 꿈인 스카우트 스탠리가 스페인 길거리에서 천부적인 실력을 가진 보 크루스를 NBA에 데뷔시킨다는 얘기. 초점은 성공보다는 고군분투에 맞춰져 있다. 스탠리와 크루스는 멀어져만 가는 꿈을 바라보며 좌절하는 사람들. 그런 그들이 우연히 만나 다시 한 번 꿈에 한 발짝 다가선다. 다소 평범한 영화이기는 해도 애덤 샌들러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어느새 나이가 지긋해진 샌들러의 얼굴에는 묘한 페이소스가 담겨 있다. 그는 더이상 코미디만 잘하는 배우가 아니다. ◆품위와 위엄, 전복과 붕괴의 걸작…'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이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인가. 그건 모르겠다. 다만 걸작인 건 분명하다. 이 작품엔 어떤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품위가 있다. 단 하나의 숏(shot)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으려는 이 작품은, 더이상 새로운 사랑영화는 없다는 사람들에게 로맨스영화가 다다를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를 내보인다. 품위와 위엄을 내세우며 도달한 이 경지는 단정(斷定)하지 않는 태도에 기반하는 것 같다. '헤어질 결심'은 스릴러를, 멜로를 단정하지 않는다. 소통과 관계를 단정하지 않는다. 가해와 피해도 단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을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골똘히 들여다본다. 138분을 그렇게 응시한 뒤에 관객에게 묻는다. '이 정도라면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 영화는 필름 누아르를 전복하고 로맨스 영화의 도식을 뒤틀면서 타자화 된 여성을 구원하려 한다. '헤어질 결심'은 짙게 깔린 안개의 영화이고, 몰아치는 파도의 영화이고, 높이 솟은 산의 영화이고, 떴다 진 태양에 관한 영화이다. 그리고 박 감독 영화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 있다. 그 여운은 길고 또 길게 남는다. ◆전설이 된 영화 신화가 된 배우…탑건:매버릭(★★★★☆) 2022년이 아직 6개월이나 남아 있지만, 아마 올해 '탑건:매버릭'보다 관객을 더 미치게 하는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탑건:매버릭'은 속도로, 규모로, 힘으로 미치게 한다. 짜릿해서 쿨해서 낭만적이어서 미친다. 그들의 사랑도, 우정도, 열정도 미친 것 같다. 물론 '탑건:매버릭'을 완전무결한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탑건:매버릭'은 영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만큼은 완전무결하게 해낸다. 관객을 스크린 깊숙이 빠트려 그 가상의 세계를 진짜라고 믿게 하는 것. '탑건:매버릭'은 36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 임무를 완수하며 전설이 된다. 이 전설의 시작과 함께 떠오른 24살의 할리우드 신성 톰 크루즈는 이제는 환갑의 슈퍼스타가 돼 이 전설을 마무리하며 신화가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