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300]우리가 사랑한 그 게임, 그 판타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3월 5주차 개봉 영화 및 최신 개봉작 간단평을 정리했다.
◆반가워, 판타지 블록버스터…던전 앤 드래곤:도적들의 명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호빗' 시리즈, '해리 포터' 시리즈 정도가 관객이 기억하는 판타지 블록버스터일 것이다. 다른 영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다. '던전 앤 드래곤:도적들의 명예'는 어쩌면 이 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출발은 안정적이다. 동명 원작 게임의 설정을 적절히 가져왔고, 다소 뻔하긴 해도 이야기·캐릭터·연출 모두 나쁘지 않다. 컴퓨터그래픽(CG) 등 시각효과 역시 흠잡을 데 없다. 그리고 시종일관 유머러스하다. 출발은 산뜻하다. 어차피 이번 작품 하나로 끝나버릴 영화가 아니다. 결국 성패는 앞으로 나올 후속작들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온기…오토라는 남자(★★★) '오토라는 남자'는 톰 행크스 필모그래피에 크게 의미가 있진 않을 것이다. 행크스가 이 영화에서 대단한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작품 역시 특별할 게 없다. 그래도 '오토라는 남자'가 품은 이 따뜻함만큼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도 어떤 해도 되지 않는 이 온기를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겠나. 아마 행크스도 이 점 때문에 '오토라는 남자'에 출연했을 것이다. 스웨덴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리메이크 한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가 2012년에 내놓은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또 하나의 클래식…파벨만스(★★★★☆) '파벨만스'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소년 시절을 그린 작품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건 이 영화를 오독하게 한다. '파벨만스'는 스필버그 감독의 과거를 다루면서 영화·예술·인생·가족을 아우른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영화에 관한 영화이고, 예술에 관한 영화이며, 인생에 관한 영화이고, 가족에 관한 영화이다. 가족이 영화를 탄생시키고, 영화가 가족을 갈라놓으며, 예술과 인생 사이에서 고민하고, 인생이 곧 영화가 된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면 '파벨만스'를 보면 된다. 할리우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이 거장은 겸손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 모든 얘기를 풀어낸다. 몇 몇 장면은 황홀하고, 모든 신(scene)은 세공돼 있으며, 어떤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고, 일부 대사는 가슴에 와 꽂힌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이 담겼다는 점 하나 때문에 반드시 아카이빙 해야 할 작품이 될 것이다. ◆이 아름다운 층과 결…이니셰린의 밴시(★★★★☆) 다층적이고 결이 다양한 이야기에 관해 말할 때, 아마도 이 영화는 자주 언급될 것이다. 절친한 친구의 절교 선언으로 문을 연 이 작품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고, '어떻게 사는 사람이 더 나은 인간인가'라는 물음으로 펼쳐졌다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라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인가'라는 한탄으로 나아간다. 게다가 이 영화는 1922~1923년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내전(內戰)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 에둘러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깊고 넓으며, 웃기고 슬프다. 이런 아름다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얕아진 감성…소울메이트(★★☆) 중국 원작 영화가 가진 매력의 상당 부분은 배우 저우동위(周冬雨)의 연기에서 나온다. 일부 통속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저우동위의 순도 높은 감성에 관객은 설득되고만다. 하지만 한국영화 '소울메이트'에는 이런 역할을 해줄 배우가 없다. 물론 김다미와 전소니는 좋은 배우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가 그 자체로 이 영화에 생기를 높여줄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원작의 통속 뿐이다. 한국영화계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여성 서사라는 점은 의미가 있겠지만, 그 의미만으로 만족할 순 없다. ◆영혼과 몸 모두를 바친 배우…더 웨일(★★★☆) 흔히 좋은 연기를 한 배우를 향해 혼신(渾身)의 연기를 했다는 표현을 쓴다. 가진 모든 걸 쏟아낸 연기라는 얘기일 것이다. '더 웨일'에는 혼신(魂神)의 연기가 있다. 영혼은 물론 육체까지 바친 연기라는 의미다. 브렌던 프레이저는 '미이라'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배우. 멋진 얼굴, 근육질 몸매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부상과 이혼, 우울증 등을 연달아 겪으며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살이 쪘고, 풍성한 금발 머리칼은 사라졌으며, 자신감도 잃었다. 그랬던 프레이저가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을 만나 자기 인생의 곡절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다시 한 번 배우로서 걸음을 뗐다. 프레이저의 진심이 담긴 연기는 결국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연인을 잃은 고통, 고통으로 인한 폭식, 폭식으로 인해 600파운드(lb)(약 270kg)가 돼버린 몸, 그 몸을 지탱하지 못해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8년 전에 버리고 떠난 딸에게 전화를 건다. 그 이야기가 '더 웨일'에 담겼다. ◆전락을 위한 절정의 연기…TAR 타르(★★★★☆) 'TAR 타르'는 뛰어난 영화이지만, 도저히 케이트 블란쳇에 관해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블란쳇은 이 영화에서 베를린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자 세계 최고의 지휘자 '리디아 타르'를 맡았고, 그의 연기는 천의무봉(天衣無縫)에 가깝다. 블란쳇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말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의 연기에 관해 어떤 식으로라도 언급하지 않는 건 분명 직무유기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에 앞서 존재하는 연기라는 건 없겠지만, 'TAR 타르'에서 블란쳇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어떤 연기는 영화를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많은 이들이 블란쳇 최고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블루 재스민'을 꼽을 것이다. 아마도 이 평가는 'TAR 타르'를 보고 나면 바뀌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