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어디로③]"경증자들 담당 '중간병원' 있어야"
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인터뷰현실부터 직시해야 적절한 대책필요저수가·응급의료체계 전반 손질해야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10일 "현실을 직시해야 정확한 원인을 찾아 분석해 적절한 대책이 나올텐데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료진에게 응급환자 병상을 강제로 배정하라는 식의 책임만 지워선 해결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응급실에서는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을 뿐 수술·입원 같은 최종치료까지 가능한 것은 아닌데 당정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또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경증환자들을 분산시킬 수 있는 중간 단계의 의료기관들을 마련하고 권역외상센터도 제대로 운영되는 곳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저수가·경증환자 중심 응급의료체계 등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의료체계 문제점과 개선 방향 등을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가 응급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숨지는 일이 없도록 병상이 없는 경우 경증환자를 강제로 빼서라도 병상을 확보하는 방안을 의무화하기로 했는데요. "가령 다발성 외상 혈복강(복강내출혈) 환자인 경우 외상수술팀이 없는데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를 강제로 배정하겠다는 것인데요. 현장에서는 '나가라는 소리구나. 다음 차례는 내가 되겠구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되면서 많은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현장을 떠났는데 이 개정안과 똑같은 대책이 나왔습니다."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개정안에는 응급의료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수용 요청을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도록 해 응급실의 응급환자 수용을 사실상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미 치료 결과에 대한 민·형사 소송이 남발되고 있고 응급처치한 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이 돌아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환자를 받아도 문제가 생기면 처벌을 받고 환자를 받지 않아도 처벌을 받는다면 이런 상황에서 누가 버틸 수 있을까요. 지난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정당한 사유'라는 것이 불분명해 의사회는 물론 대한응급의학회가 강력 반발했고 유예된 상태입니다." -당정이 응급환자 진료의 연속성도 감안해야 한다고요. "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병원들은 서 있을 자리도 없다고 하지만 응급실 병상이 완전히 꽉 차 있는 병원은 전국에 10곳도 되지 않습니다. 보통 한 두 병상 정도는 비어있죠. 문제는 응급실에 빈 병상이 있어도 최종 치료가 어렵다면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응급실에 환자를 수용했어도 중환자실 병상이 없거나 수술할 의사가 없으면 치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응급의료체계 개선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경증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리지 않도록 중간 단계의 병원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경증인 줄 알고 있고 작은 병원에 갈 의지도 있는 환자들도 있거든요. 하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을 가는 환자들에게 갈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죠. 또 특정한 수술이나 시술 같은 경우 대학병원 이상으로 하고 있는 지역응급의료센터나 작은 병원들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작은 병원에서 중증환자를 진료하면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면 대형병원의 진료 과부하를 덜 수 있겠죠. 의사회의 '어전트 케어 클리닉(Urgent Care Clinic)' 사업도 대형병원의 응급실 과밀화를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죠. 어전트 케어 클리닉은 염좌 부상, 감기 등 경증 환자가 동네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권역외상센터 운영 체계도 손을 볼 필요가 있다고요. "권역외상센터는 인력과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제 기능을 하려면 하룻밤에 의료진이 적게는 50명, 많게는 80명까지 대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5명도 못 구해서 재지정 평가에서 취소될 위기에 놓인 곳이 절반 가량에 달합니다. 현재 전국에 15곳이 있는데 제대로 운영되는 곳들을 대상으로 인력과 예산을 더 지원해줘야 합니다. 현재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이 20% 정도로 줄어든 만큼 외상환자 급성기 치료를 담당할 낮은 단계 외상센터도 더 확대해야 합니다."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문제가 20년이 넘도록 반복되고 있는데요. "저수가이고 환자에게 의료기관 선택권이 무제한 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응급의료체계 자체가 경증환자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죠. 이런 응급의료체계를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응급실은 중증도순이고 응급환자를 살리려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국민의 인식 확산도 필요하고요." -응급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부족한데요. 의대정원 확대로 응급의학과 의사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응급의학 전공의를 배출해 의미 있는 인력 증가를 기대하려면 13년 정도 걸립니다. 효과를 보기까지 최소 10년 이상걸린다는 얘기죠. 당장 응급실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이 계속 그만두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더 시급합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1년차들이 매년 10%씩 그만두고 있습니다. 티오(정원)가 150명인데 1년이 지나면 10~15명 정도가 떠납니다. 비전이 없다고 보는 것이죠. 올해만 해도 벌써 30명 정도가 응급실을 떠나 개업했습니다.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서 있는 사람부터 지켜야 합니다. 의대정원 확대 문제는 정확한 수요예측이 선행돼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응급실에서 근무한 지 20년째인데요. 밤 근무가 많고 의료 난이도도 높아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응급실은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최전선인 만큼 '앞으로 나아지겠지'라는 기대감으로 버텨왔습니다. 열심히 진료하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어 보람 있고 시간이 흐르면 응급의료체계도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요즘 전공의들이 버티지 못하고 응급실을 떠나는 이유는 근무환경이 나빠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나아질 게 없다고 생각하니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없는 거죠. 응급실 의료진에게 의무만 지우는 것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