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 퓨리오사의 왼팔은 무얼 말하나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2015)를 본 관객은 의수(義手)를 한 퓨리오사의 왼팔에 얽힌 전사(前史)를 알고 싶어 했다. 9년만에 나온 프리퀄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는 이 궁금증에 답한다. 팩트만 말하자면 이렇다. 퓨리오사는 전투 도중 왼팔에 치명상을 입었고, 퓨리오사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 디멘투스는 다친 팔을 사실상 고문했다. 이 과정에서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와 그 일당이 잠시 한눈 판 사이 왼팔을 스스로 잘라 내고(잘려 나갔다고 보기보다는 잘라 냈다고 하는 편이 이 캐릭터에 부합하는 추측일 것이다) 도주했다. '크게 다쳤고, 도망치기 위해 잘랐다.' 이렇게 요약하고 보면 퓨리오사의 왼팔에 관한 스토리는 전작이 보여준 강렬한 인상 치고 싱거워 보인다. 게다가 조지 밀러 감독은 이 과정을 짧은 쇼트(shot) 하나에 담아낼 뿐이지 않나. 그래서인지 일각에선 이 대목에 대한 실망감을 적지 않게 드러내는 듯하다. 뭔가 더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다는 거다. 그러나 이처럼 사실 관계만 가지고 이 왼팔에 얽힌 이야기를 논하는 건 퓨리오사 캐릭터는 물론이고 '매드맥스' 시리즈 전체를 오독하게 할 수 있다. 일단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왼팔의 서사엔 대단한 게 있다고. 퓨리오사 왼팔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매드맥스'와 '퓨리오사'의 공통된 동선에 관해 먼저 얘기해야 한다. '매드맥스'에서 퓨리오사는 시타델을 탈출했다가 다시 시타델로 돌아온다. '퓨리오사'에서도 그렇다. 그는 디멘투스를 잡으러 시타델을 떠났다가 돌아온다. 중요한 건 시타델로 복귀가 모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작에서 퓨리오사는 소금사막을 횡단함으로써 시타델로부터 더 멀어질 수 있었지만 회군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어떤 방해도 없이 시타델을 떠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영화들은 시타델이 곧 퓨리오사의 운명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퓨리오사의 왼팔이 바로 그 운명의 상징이다. 어린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에게 잡힌 뒤 왼팔에 고향 녹색의 땅으로 가는 별자리 지도를 문신으로 새겨 넣는다. 그리고 퓨리오사가 스스로 그 왼팔을 잘라내게 함으로써 퓨리오사의 미래를 예견한다. '퓨리오사는 녹색의 땅에 가지 못할 것이다.' 팔을 자른 뒤 천신만고 끝에 시타델에 돌아온 그가 녹색의 땅으로 가는 지도가 있던 자리에 시타델 기술로 만든 의수를 착용하게 함으로써 이번엔 다시 한 번 그의 숙명을 예고한다. '이제 그의 고향은 녹색의 땅이 아니라 시타델이다.' 다만 신화 속 영웅들이 그렇듯 퓨리오사 역시 자기 운명을 알지 못하기에 '매드맥스'에서 그는 임모탄의 다섯 아내를 데리고 녹색의 땅을 향해 질주한다. 탈주 끝에 고향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퓨리오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의수를 벗어던지는 일이다. 의수를 내려놓음으로써 그는 잠시나마 시타델의 총사령관 퓨리오사가 아닌 고향을 열망하며 문신을 새겼던 어린 퓨리오사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퓨리오사가 고향에 가는 지도가 새겨진 왼팔을 잃은 것처럼 물과 나무와 열매가 있던 풍요의 땅은 사라지고 없다. '매드맥스'에서 퓨리오사가 시타델로 돌아가는 데는 맥스의 제안이 큰 역할을 하지만 그가 맥스에게 설득됐기 때문에 복귀를 결정하게 된 건 아닐 것이다. 퓨리오사는 이제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알아차린 듯하다. 녹색의 땅의 산물인 완벽한 몸이 더 이상 자신에게 없음을. 시타델의 의수를 낀 이 몸은 반은 녹색의 땅이며 반은 시타델임을. 그렇기에 녹색의 땅이 사라진 현재, 돌아갈 곳은 시타델 밖에 없음을. 그리고 시타델을 새로운 녹색의 땅으로 만들어야 함을. 그렇게 퓨리오사는 역주행을 받아들인다. '퓨리오사'는 '매드맥스'에서 보여준 이 과정을 다른 형태로 바꿔 보여줌으로써 운명이 퓨리오사를 거듭 부르고 있었다는 걸 알린다.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와 대면한 뒤 복수를 위해 그를 죽이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마치 '매드맥스'에서 시타델로부터 도망치는 게 더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퓨리오사는 냉소와 허무와 비관으로 가득 찬 디멘투스를 양분 삼아 희망의 복숭아 나무를 키우기로 한다. 미래에 자신이 다시 시타델로 돌아와 구원의 상징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이것이 퓨리오사의 왼팔에 얽힌 사실 관계가 담아내지 못하는 왼팔의 서사다. 그렇게 '퓨리오사'는 '매드맥스'의 과거이자 미래가 된다. 그렇게 '퓨리오사'는 '매드맥스'의 주석이자 본문이 된다. 그렇게 '퓨리오사'는 '매드맥스'의 역사이자 예언이 된다. '퓨리오사'는 '매드맥스'의 완벽에 가까운 프리퀄이며, '매드맥스'는 '퓨리오사'의 더할 나위 없는 시퀄이다. 디멘투스는 퓨리오사에게 말했다. "네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 매드맥스 사가의 주인공은 맥스도, 임모탄도, 디멘투스도 아닌 퓨리오사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