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사용 印尼 찌아찌아족➂] 한글 교육을 잇고 있는 헌신·봉사·열정의 사람들
한글학당 정덕영 교사, 2010년 이후 줄곧 현지 지켜언어학자·집현적 학자의 후손 기업인 등 다양한 지원‘전례없다’는 공공기관의 지원 외면…‘상상력 부족’ 되돌아봐야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부탄섬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문자로 채용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가장 큰 동력은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봉사 그리고 꺼지지 않은 열정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배경, 경험과 인연으로 찌아찌아족과 인연을 맺었지만 ‘한글’에 대한 자부심만은 공통적이다. ◆ 2010년 이후 ‘찌아찌아족의 한글 선생님’ 정덕영 교사 훈민정음학회가 2009년 현지에서 한글을 가르칠 교사를 모집하자 응모해 선발된 정덕영씨는 이듬해인 2010년 바우바우시로 간 뒤 지금껏 찌아찌아족과 함께 있다. 2011년 정부의 지원이 끊기고 세종학당이 철수하면서 잠시 귀국하기도 했으나 찌아찌아족 아이들이 돈을 모아 현지 신문에 “선생님이 돌아오게 해달라”는 광고를 낸 것도 그가 다시 발길을 돌리는 요인이 됐다. 정 교사는 한글학당에서 현지인 보조 교사 2명과 함께 현지 학교를 방문 수업하거나 학당을 찾는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훈민정음학회와 세종학당이 철수한 뒤 한글 교육 중단 위기가 왔을 때 정 교사는 한국에 돌아와 지인들에게 호소하는 등 후원자를 모아 2014년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이하 협회)가 만들어지는데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다시 협회 파견으로 현지에 부임했다. 그는 2023년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2~3년 근무하다 귀국할 줄 알았는데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던 정 교수는 한국어에 대한 학구열이 높았다고 한다. 제약회사 근무 시절에도 동료 직원들에게 바른 어법 등을 가르치고 발음과 어문규정을 확인하기 위해 항상 사전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 2006년엔 KBS ‘우리말겨루기’에 출전해 우승하고 한국어 교사 자격증도 땄다. 2007년 제약회사 퇴직 후 국내 정착 외국인들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던 정 교사는 찌아찌아족 한글 교사 모집 공모를 보고 바로 응모해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그는 부임 전 인도네시아어를 익혀 인도네시아어로 한글을 가르친다. 정 교사는 한글 교재인 ‘바하사 찌아찌아’라는 책을 직접 펴내기도 했다. 그는 서문에서 한글 교육을 ‘한글 보급’ 자체보다 ‘인류 언어문화 다양성 보존’이라는 관점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의 사연은 2020년 1월 KBS ‘인간극장’에 ‘찌아찌아 마을의 한글 선생님’ 5부작으로 방영됐다. 정 교사는 부인과 두 자녀가 있지만 ‘생이별’이다. 그가 힘들지만 꿋꿋이 부톤섬을 지키고 있는데는 가족들의 지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협회측은 설명했다.
◆ 언어학자·집현적 학자의 후손·현지 여행 중 합류 다양 협회 김한란 이사장(전 성신여대 독문과 교수)은 독일 뮌헨대에서 독일인 지도교수의 영향을 받아 이색적이다. 저명한 음운학자인 테오 펜네만 교수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 음성을 글로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문자라고 평가했다. 언어학을 전공한 김 이사장은 펜네만 교수로부터 한글의 음운학적 우수성을 익히 듣고 귀국 후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보급하고 있는 협회 활동을 알게 되어 적극 후원에 나섰다. 지도 교수의 말처럼 한글이 어느 소수민족의 발음을 기록해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게 하는데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협회 활동에 참가하다 회장을 맡고, 법인화 이후에는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번 찌아찌아족 교사 등 5명이 한국에 온 것도 김 이사장이 적극 후원해 가능했다. 김 이사장은 “현지에서 한글 선생님을 많이 양성하고 나아가 찌아찌아족의 전래동화와 노래 등을 수집해 한글로 기록함으로써 문화를 계승하도록 돕는 것이 주요 관심”이라고 말했다. KCC정공은 1992년 창립 이래 유압공업 제품 생산 및 개발에만 매진해 이 분야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업체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 박덕규 사장은 왜 인도네시아의 한글학당 교사(敎舍)를 짓는데 거액을 기부하고 매년 적지 않은 금액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나? 박 사장은 한글 창제의 산실인 집현전 학사이자 사육신(死六臣)의 한 명인 박팽년의 후손이다. 단종에게 충절을 지켜 3족이 멸문지화를 당한 사육신 중 유일하게 혈손이 남은 박팽년은 부친도 집현적 학자들을 가르친 대학자였다고 박 사장은 말했다. 이런 집안 내력과 ‘한글 창제 DNA’를 물려받은 박 사장에게 찌아찌아족의 한글 채용과 협회의 활동은 기특한 일이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협회가 법인화하면 후원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가 2020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전화하자 적극 돕고 있다. 이번 찌아찌아족 5명의 방한 5박 6일 일정을 챙기고 있는 협회 조기형 사무국장은 현지 터주대감 한글교사인 정덕영 씨의 고교 동기 동창으로 협회 출범의 산파 역할을 함께 했다. 정 교사가 정부 지원 중단 등으로 부톤섬에서 돌아와 후원자를 모집할 때 “우리끼리 만들어보자”며 함께 뛰어 협회를 만들었다. 조 국장은 2021년 한국전력에서 퇴사하기 전까지는 본업을 유지하면서 협회 활동에 참여했다. 협회에서 홍보국장을 맡아 봉사했던 강민구 씨는 부톤섬에서 찌아찌아족에 한글을 보급하는 것을 알고 여행 중 잠깐 도우러 갔다가 수 년간 체류했고 찌아찌아족 보조교사였던 현재의 아내까지 만났다. 강 씨의 부인 뜨리씨는 2019년 한글날 경축식에서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바로 옆에서 만세삼창을 함께 외쳐 주목을 받았다. 찌아찌아족 5명의 방한 소식을 듣고 10일 청주에서 서울에 와 저녁을 함께 강 씨 부부는 양측간 유대가 가족의 관계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학교 건물 지어주고, ‘한글’ 소프트웨어 개발해 기증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50년을 맞은 2023년 e러닝 콘텐츠 기업 아라소프트(대표 강정현)와 함께 찌아찌아족이 사용할 수 있는 맞춤형 문서 저작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증했다. 그해 6월 28일 당시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가 직접 참석해 한글학당에 현판을 기증했다. 한국 대사가 바우바우시를 찾은 건 수교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월간조선의 현지발 보도에 따르면 이 행사에는 협회의 김한란 이사장과 KCC정공 박덕규 대표, 백순진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 이사장(4월과5월 리더) 등이 한국에서 먼길을 와 참석했다. 백 이사장은 한글학당에 우쿨렐레와 앰프를 기증했는데 협회가 만들어질 때부터 정덕영 교사의 활동을 지원해왔다. KCC정공 박 대표는 찌아찌아족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교보생명은 2020년 사회공헌위원회의 사업 공모에 참여해 현지 한글학당 건물 신축 자금을 지원하고 교과서 출판 등을 지원했다. 한문화재단(아시아발전재단)은 현지의 한글 및 태권도 교육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 ‘K 문화’의 정수 살리는 상상력 필요 찌아찌아족 5명이 방한해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것은 세계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는 ‘K’ 시리즈의 보물같은 소재를 살리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이다. 순수 민간단체인 협회는 2014년 설립 이후 한문화재단, KCC정공, 김한란 이사장 등의 후원과 300여명 개인 회원 기부금으로 근근히 운영되고 있다. 협회 관계자들은 공공기관에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에 대해 지원 요청을 하면 ‘관련 규정과 사례’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외국의 소수민족이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희귀한 사례여서 어떤 전례나 규정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2009년과 2014년 서울시에서 부톤섬 바우바우시 관계자 등을 초청한 적이 있지만 그 후로는 그나마 뚝 끊겼다. ‘K 문화’ ‘K 푸드’ 등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는 ‘K’ 시리즈가 확산되고 있다.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은 다른 어떤 문자 못지않는 독보적인 경쟁력이자 우수성을 보여주는 ‘K 언어’의 진수다. 전세계 한국어 교육 기관 ‘세종학당’을 운영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어가 아닌 ‘한글’이라는 문자를 가르치는 기관에 대한 지원 시스템은 없다고 한다. 규정이나 선례가 없다고 하기 보다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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