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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②]국제 유가는 반 토막 났는데 국내 유가는 왜?

등록 2015-01-20 10:28:30   최종수정 2016-12-28 14: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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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5 석유화학업계 CEO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산업부와 업계는 향후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세계 수요 증가와 더불어, 유가 하락에 따른 원자재 납사 가격 하락으로 인한 비용 절감으로 원가 경쟁력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5.01.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여기 가득 넣어주세요!”, “휘발유죠? 주유 들어갑니다.”

 지난 12일 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주유소.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를 찾은 운전자도, 기름을 넣어주는 주유원도 모두 피곤해진 월요일 밤이지만 모두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돌았다. 한껏 ‘저렴해진’ 기름값 덕이다.

 이날 이 주유소에서 판매한 휘발유의 리터당 가격은 1398원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쌌다. 이 주유소는 1년 전인 지난해 1월에도 같은 지역에서 가장 싼 주유소였다. 그러나 1700원대 후반이었다. 1년 사이에 리터당 400원이나 낮아진 셈이다.

 올겨울 유가 하락으로 중산층과 서민들이 모처럼 밝게 웃고 있다. 다들 “살다 보니 기름값이 싸지는 날도 오네”라고 입을 모은다. 한동안 워낙 살인적인 고유가가 계속돼 오다 보니 저렴한 기름값은 ‘거짓말’처럼 여겨진다.

◇“살다 보니… 기름값이 다 내려가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3일 현재 국내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리터당 1537원이다. 서울 지역은 1613원이다. 국내 최저가는 충북 음성 상평주유소가 차지했다. 지난 11일부터 휘발유를 리터당 1285원으로 전국 최저가에 팔고 있다. 리터당 1300원대 주유소는 서울 6곳(영등포구 5곳, 강서구 1곳)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139곳까지 늘었다.

 이 같은 저유가는 국제 유가가 50달러 이하로 폭락했기에 가능해졌다.

 한국이 주로 도입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지난해 11월27일 감산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75달러 선을 끝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급기야 지난 6일 48.08달러에 거래되면서 50달러 지지선마저 무너졌고, 6일 만인 지난 12일 45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같은 날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제품 가격도 급락했다. 보통 휘발유는 배럴당 53.31달러를 기록했다. 또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46.07달러, 영국 런던 ICE 선물시장의 북해 브렌트유는 47.43달러를 각각 나타냈다. 가히 ‘밑 빠진 통에 기름 붓기’ 형국이다. 

 그렇다면 국내 유가는 얼마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아직 리터당 1500원대인 국내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언제쯤 1400원대, 아니 1300원대 이하로 내려갈 수 있을까.

 지난 7일 국제 유가는 배럴당 46달러로 떨어졌다. 1년 전(104달러)의 절반 이하다. 하지만 같은 날 국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1564원이었다. 1년 전 리터당 1886원과 비교해 불과 322원 떨어지는 데 그쳤다. 경유도 지난해 1월 1705원에서 올해 1380원으로 고작 325원 낮아졌을 뿐이다.

 유가가 조금만 떨어져도 마냥 흐뭇해 하던 국민들은 어느덧 하나둘씩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오를 때는 시시각각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국내 유가가 지금은 왜 찔끔찔끔 내려가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이런 민심을 반영해 정부도 정유업계에 대해 유가 인하를 사실상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름값 낮춰라” VS “유류세 인하해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에너지기술평가원에서 석유·액화천연가스(LPG) 유통협회 관계자와 소비자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업계에 “국제 유가 하락분이 국내 유가에 적기에 반영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유가 인하 여지가 있다는 근거로 같은 지역 내 주유소들의 휘발유 판매가 차이가 크게는 700원대인 점을 들었다.

 실제로 지난 8일 서울 관악구에서 리터당 휘발유 최고가(2298원)와 최저가(1539원)의 차이는 759원이었다. 30리터 주유 시 가장 싼 주유소에서 넣으면 가장 비싼 주유소에서 넣을 때 보다 2만4000원을 아낄 수 있다. 서울 구로구에서 리터당 경유 최고가(1995원)와 최저가(1299원)의 차이는 696원으로 조사됐다.

 “지가와 임대료 등의 차이를 고려해도 일부 주유소는 국제가격 인하분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업계는 부정적이다. 아니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 석유협회는 이날 “국내 정유업계는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제품가격 인하 요인을 국내 공급가격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히려 정부에 “유가 하락에 따라 큰 폭의 재고 손실 등이 발생해 업계 사정이 어려운 만큼 고유가 시대에 만들어졌던 알뜰주유소와 전자상거래 등 유통 정책을 시장 친화적으로 전환해 경쟁력을 확보하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주유소 협회도 “전체 주유소의 90% 이상은 이미 국제유가 하락분을 반영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전체 주유소가 국제유가 하락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항변했다.

 주유소 협회는 더 나아가 유류세 인하를 요구했다. “주유소에는 카드 수수료와 준조세 등 각종 비용이 있어 유통 이윤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으면 휘발유 가격이 1300원대 이하로 떨어지기 힘들다. 정부가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혜택을 서민들에게 주려면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같은 날 서울 태평로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유류세 때문에 휘발유 판매가격을 인하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재반박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공세에 나섰다.

 알뜰주유소 확대, 전자상거래 활성화 등 기존 대책을 그대로 이어가는 한편, 오는 3월부터는 7대 광역시 내 구 단위별로 휘발유·경유·등유·LPG 가격이 비싼 주유소와 싼 주유소 5곳의 가격 동향을 매주 발표, 업계의 가격 경쟁과 유가 하락을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 해낼 수 있을까  국제 유가가 1년 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국내 유가의 변동 폭이 적은 가장 큰 이유는 유류세가 정액제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전국 리터당 평균 휘발유 가격 1594.9원을 들여다보자. 이 중 정유가 공급가는 541.4원이다. 그 기준이 된 국제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435.5원이다. 정유사가 붙인 부가가치는 105.9원이다. 물류비·시설 운영비·수입 부과금 등 고정비와 10원 정도의 정유사 이윤이 포함된 액수다.

 여기에 문제의 유류세가 붙는다.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는 정액제로 529원이고, 교통세의 15%인 교육세(79.35원), 교통세의 26%인 주행세(137.54원)가 더해진다. 이렇게 해서 나온 745.89원은 유가가 싸지든, 비싸지든 상관없이 졸졸 따라다니는 세금이다. 여기에 판매 부과금, 이윤 등 주유소 부가가치가 더해지고, 끝으로 부가세 10%가 추가돼 1594.9원이 나온다. 

 유류세를 사실상 고정으로 해놓은 것은 국제 유가 변동과 관계없이 국가에서 필요한 세원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한 해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류세는 요즘처럼 복지 수요가 높아져 정부가 돈 쓸 곳이 많아진 시대에는 더욱 양보할 수 없는 세수다.

 산자부는 “국제 유가가 떨어졌을 때 유류세를 인하한다면 올라갔을 때 인상해야 한다는 말과 똑같다”고 말로 유류세를 낮출 뜻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정부는 유가뿐만 아니라 원가에서 유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각종 석유화학 제품과 버스 요금 등 공공요금, 항공 운임 등의 인하도 유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역시 개별 제품 가격에 직접 개입하기가 어려우므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기본적인 정책 방향은 유가가 내린 만큼 제품 가격을 하향 조정토록 하는 것이다”면서도 “유가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품목마다 다르고, 인건비 등 다른 가격 인상 요인도 있어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대신 정부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내려 국민들이 유가 하락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품목별로 가격 정보를 공개해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일부 대기업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업종에 대해서는 가격 인하 여력을 파악하기 위해 원가 정보를 분석 중이다.

 공공요금의 경우 기관별 재무 상황에 따라 가격 인상 요인도 있지만, 정부가 가격에 개입할 여지가 큰 만큼 최대한 내린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미 이달 초 국제유가 하락을 반영해 도시가스 요금을 평균 5.9% 인하했다. 또 인상 요인이 있는 버스 요금 등의 공공요금에 대해서도 유가 하락을 반영해 인상 폭 제한을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이런 내용이 포함된 국제유가 하락 체감 대책을 설 연휴 전 물가종합대책에 포함해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름값 인하 압박하는 정부, ‘어게인 2011’?  지난 1997년 가격 고시제가 폐지되면서 정부가 유가에 직접 개입할 길은 막혔다. 그러나 정부는 업계에 유가 인하를 압박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좋은 기억’이 있다.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에서 120달러로 치솟고, 보통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00원대에서 2000원대까지 올라가며 고유가가 경제를 짓누르던 지난 2011년 1월의 일이다.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행한 “요즘 기름값을 보면 주유소의 행태가 실로 묘하다”는 발언을 신호탄으로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업계 압박에 나섰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정유사·주유소 회계 장부를 내가 직접 들여다보겠다”고 총대를 멨고, 공정위는 주유소 원적지 관리 담합 조사에 착수했다.

 이러한 끊임 없는 인하 압력에 업계는 끝내 굴복, 그해 4월부터 3개월 동안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리터당 100원 내렸다.

 업계는 이번 산자부의 유가 인하 요청에 대해 “정부가 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뻔히 알면서 기름값 추가 인하 여론을 의식해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반발하면서도 4년 전과 같은 ‘업계 때리기’가 본격화할까 좌불안석이다.

 확실히 다른 것은 그때는 고유가여서 업계에도 인하 여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저유가라는 사실이다. 업계가 인하 요구를 감당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당시에는 기름값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유류세의 비중이 상당하다. 그만큼 “정부도 성의를 보여라”는 요구가 업계를 넘어서 국민 여론으로 확산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시 떠안아야 할 세수 감소 규모보다 국민 개개인이 취하는 이익이 현저히 적다는 논리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궁색한 변명으로 여겨진다. 정부가 내 밥그릇은 꼭 움켜쥔 채 또 한 번 남의 밥그릇만 축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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