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완생'이 된 리카르도 라틀리프

등록 2015-01-19 16:44:42   최종수정 2016-12-28 14: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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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와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경기에서 모비스 라틀리프가 삼성 수비를 받으며 공격하고 있다. 2015.01.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지혁 기자 =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미생’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끌어냈다. 고졸 학력의 신입사원인 주인공 장그래의 사회 적응기를 보며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감동을 자아냈다. 사실적인 묘사와 청년실업이 심각한 시대적 배경과 어울려 후폭풍은 더욱 거셌다. 프로농구계에도 장그래를 연상하게 하는 외국인선수가 있다. 울산 모비스를 2년 연속으로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은 리카르도 라틀리프(26)다. 매사에 배우려는 자세와 근면·성실함이 몸에 익은 라틀리프가 모비스의 ‘완생’으로 거듭났다.

 ▲라틀리프의 ‘코리안 드림’

 2012년 미주리대학을 졸업한 라틀리프는 센터라는 포지션 대비 200㎝의 애매한 신장 탓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현실의 벽을 느낀 그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리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일단 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하고, 트라이아웃에서 열심히 뛰었다. 모비스는 2012년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에서 주저 없이 라틀리프를 지명했다. 라틀리프는 “내 이름이 불렸을 때, 엄청 기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생김새부터 말, 음식 등 한국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러나 특유의 적응력과 모비스 동료들의 보살핌 덕에 서서히 한국식에 맞춰갔다.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한국과 한국 농구를 존중했다.

 모비스는 양동근, 문태영, 함지훈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많은 팀이다. 첫 시즌이었던 2012~2013시즌 모비스는 우승을 위해 로드 벤슨이라는 ‘검증된’ 외국인선수를 시즌 도중에 트레이드로 영입한다. 라틀리프의 존재감은 전보다 못했다. 외국인선수들은 ‘누가 간판선수냐’라는 것을 따진다. 보이지 않은 신경전도 벌어진다. 그러나 라틀리프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KBL 선배’ 벤슨의 뒤에서 모비스의 우승에 공헌했다. 라틀리프의 첫 시즌 성적은 평균 15.1점, 8.7리바운드로 준수했다. 그래도 간판은 벤슨이었다. 2013~2014시즌 창원 LG를 꺾고, 2연패를 달성하는 순간에도 모두의 시선은 벤슨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라틀리프는 묵묵했다.

 ▲존스컵과 벤슨

 지난해 여름 모비스는 조용했다. 유재학 감독과 주장 양동근이 국가대표팀 차출로 인해 팀을 비웠다. 결과적으로 라틀리프의 반전 드라마가 시작된 계기였다. 늘 화려한 동료들에게 가려졌던 라틀리프는 지난해 8월 대만에서 열린 윌리엄존스컵(이하 존스컵)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함지훈과 이대성마저 부상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 벤슨도 오지 않았다. 주축들이 대거 빠진 팀은 성적보다는 실전 경험에 초점을 뒀다.

 라틀리프는 그동안 숨겼던 본능을 과시했다. 라틀리프는 8경기에서 평균 34분28초를 뛰며 24.3점 15.7리바운드 1.9블록슛이라는 놀라운 기량을 과시했다.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 모두 1위다. 팀도 정상에 올랐고, 그는 대회 최우수선수(MVP)와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다. 벤슨은 왜 없었을까. 벤슨은 구단에 별도의 옵션으로 돈을 요구하면서 참가를 거부했다. 이후 벤슨의 불손한 행동이 이어지면서 모비스는 그의 퇴출을 결정했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 벤슨은 후배인 라틀리프를 꼬셔 함께 구단을 압박하자는 뉘앙스를 풍겼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라틀리프는 자신의 첫 직장 모비스를 배신하지 않았다. 단칼에 잘랐다. 벤슨이 떠난 올 시즌 라틀리프는 모비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자리매김했다. 13일 기준으로 34경기에 출전한 그는 평균 18.9점 10리바운드로 모비스의 고공비행을 이끌고 있다. 모비스가 정규리그 1위에 오른다면 가장 강력한 MVP 후보다.

 ▲어려웠던 유년기

 라틀리프는 가난한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이것저것 허드렛일로 라틀리프를 돌봤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어려운 가정환경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들의 농구화는 꼭 챙겼다. 아무리 어려워도 헌 농구화를 신고 뛰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나보다. 라틀리프는 “어머니께서 아낀 돈으로 ‘조던 농구화’를 사주시곤 했다. 집이 어려운 중에도 나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에게 항상 미안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라틀리프는 2012~2013시즌부터 KBL에서 뛰고 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유재학 감독을 만났고, 매사에 열심히 하는 모습에 코칭스태프의 강한 신뢰를 받았다. 2014~2015시즌이 세 번째 시즌이다. 팀을 정상에 두 차례나 올려놓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두둑한 보상도 이어졌다. 라틀리프는 지난해 여름 고향 버지니아에 새 집을 장만했다. 자신을 뒷바라지한 어머니를 위한 보상이었다. 라틀리프는 “요즘 어머니께서 주위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농구선수를 하는 아들이 집을 사줬다’며 자랑하고 다니는 것 같더라”며 웃었다.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보면 한국과 모비스가 고마운 라틀리프다.

 ▲외국인선수를 보는 우리의 시선

 라틀리프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최근 한국 농구에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됐다. 라틀리프는 지난 11일 열린 KBL 올스타전에서 29점 2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기자단 투표 결과, MVP를 받지 못했다. MVP는 서울 SK의 가드 김선형의 몫이었다. 라틀리프는 크게 상심했다. 한국 무대이기에 한국 선수가 선정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불편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유재학 감독은 “라틀리프가 MVP를 받지 못해 삐쳤다. 한 번 삐치면 말도 걸면 안 된다”고 했다. 라틀리프는 13일 서울 삼성과의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이겨서 좋다”, “하던 대로 하겠다”, “기록은 신경 쓰지 않는다” 등이었다. 김선형의 MVP 선정 이후 농구팬들은 라틀리프를 위로하고, MVP 결과에는 비난의 화살을 보냈다.

 KBL은 외국인선수에 대한 시상이 없다. 단순한 ‘용병’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2014~2015시즌 정규리그 MVP는 누가 될까. 규정에 따라 올 시즌이 끝나면 모비스를 떠나야 하는 라틀리프가 유력한 MVP 후보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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