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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사람들②]홈리스·노숙인 재기 디딤돌 '빅판'

등록 2016-01-01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6: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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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주거취약계층의 사람들이 빅판을 통해 자활하고 있다. (사진= 빅이슈 코리아제공)   [email protected]
[편집자 주] 2016년 병신(丙申)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뉴시스는 신년 기획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우리 사회의 진정한 ‘위인’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TV 드라마 주인공처럼 나락을 벗어나 장엄하게 부활하지도, 화려하게 복귀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신발 끈을 동여매고 있는 이도 있고, 이제 간신히 첫걸음을 뗀 이도 있습니다.

 억대 연봉자(2014년 소득 기준)가 52만6000명이라는는 지난해 12월30일 국세청 발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성공한 사람, 업적을 쌓은 인물이 수두룩한 우리 사회에서 낙오됐던 그들이 뜻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뉴시스는 절망 속에서 움트는 희망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숭고하다고 믿기에 과감히 지면을 할애하려 합니다. 그들의 가쁜 숨소리, 진한 땀내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1997년 국가 경제 부도사태는 많은 사람을 거리로 내몰았다. 멀쩡한 직장인과 조그만 업체를 운영하던 '사장님'들이 하루아침에 일터나 가게를 잃었다.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노숙인'이 대거 등장한 것도 이때쯤이다. 이제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등 큰 기차역을 가면 대낮에도 수많은 노숙인이 몸을 웅크린 채 누워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노숙인은 사회적으로 '낙오자'라는 시선을 받는다. 어떤 이는 그들의 게으름을 탓하기도 한다. 노숙인을 향한 시선에는 경멸과 연민,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을 돕는 사람들도 있다.

 ◇주거취약계층 자활 돕는 '빅이슈 코리아'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 격주간지다. 노숙인 등 취약 계층에만 판매권을 줘 자활을 돕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2010년 7월 '빅이슈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배우 송일국·가수 아이유·셰프 최현석 등 유명 인사가 표지 모델로 나섰다.

 빅이슈 판매원을 두 글자로 줄여 '빅판'이라 한다. 누구나 빅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쪽방, 고시원, 만화방,찜질방 등에 거주하는, 주거취약상태 사람들만 가능하다. 홈리스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빅판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 의지다. 노숙인이 처음 빅판을 하겠다고 하면 10권을 무료로 준다. 이 10권은 노숙인이 다시 일어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밑천이자 자립 의지에 대한 시험대다.

 한 권 가격은 5000원. 빅판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이 10권을 모두 팔면 5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이를 원금으로 빅판은 다시 2500원으로 잡지를 구매해 판매하면 된다. 한 권을 팔면 잡지 가격의 절반인 2500원을 빅판이 가져가는 구조다.

 빅판에게는 수칙이 있다. 서울시 등과 협의가 이뤄진 지하철역과 거리에서만 판매해야 하고, 직접 다가가 판촉하면 안 된다.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하고, 술·담배를 하면서 빅이슈를 판매해서는 안 된다. 빅이슈 잡지 외에 다른 것을 같이 팔아도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수칙은 수익의 50%를 무조건 저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빅판은 어떻게 되나

 현재 빅판은 서울 수도권에서 54명, 대전에서 1명, 부산에서 5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하루 평균 7~9권 정도를 판다. 지난해 9월 시작한 부산 지역 경우 조금 더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 하루 25권 정도를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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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강명렬 빅판이 신촌역에서 잡지를 손에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빅이슈 코리아제공)   [email protected]
 빅판이 되기 위한 과정은 간단하지만 쉽지 않다. 빅이슈코리아는 빅판이 되고 싶다는 사람과 첫 약속을 일부러 사무실로 잡고 있다. 차비가 있든, 없든 사무실까지 스스로 찾아오는 용기가 자활 의지의 첫걸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누추한 행색으로 찾아왔다면 의류를 제공하고, 담당 직원이 머리도 깎아준다.

 빅판 희망자는 행동수칙을 따르겠다고 서약한 뒤, 2주간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후 정해진 장소에서 잡지를 팔게 된다. 판매 시작일부터 2주간 임시 ID카드가 발급되는 임시 빅판으로 활동하고, 꾸준히 판매를 진행한 경우 정식 ID카드를 받는다. 이때부터 판매 지역에 우선권을 가진 정식 빅판으로 활동할 수 있다.

 거리에서 "빅이슈를 판매합니다"라고 외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시민들이 대부분 관심이 없는 것은 물론 '전직'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도 상당하다. 이는 '빅판'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도 있고, 적응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일을 시작한 사람은 대부분 정식 빅판이 된다. 빅이슈코리아의 문을 두드릴 때부터 상당한 자활 의지를 갖고 오기 때문이다.

 빅판이 6개월 이상 꾸준히 저축하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받는다. 창간 이후 지금까지 36여 명이 임대주택에 입주했고, 20여 명은 재취업에 성공해 사회로 복귀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해"

 강명렬(60)씨는 속칭 '노가다'를 하다가 서울역으로 흘러들었다. 이후 노숙 생활을 6년 가까이했다.

 빅이슈를 처음 접한 것도 서울역에서였다. 점심을 무료로 나눠주는 곳에 갔다 빅이슈코리아 코디네이터들이 판매원을 모집하는 것을 목격했다. 강씨는 빅판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처음 빅판을 시작할 때 참 힘들었다. 거리에서 잡지를 팔아야 하는데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기를 반복하던 강씨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왔으니까 잘해내자고.

 현재 강씨는 신촌역 3번 출구에서 빅판을 하고 있다. 벌써 4년째다. 학생들이 주 고객인 데다 유동인구가 꽤 많은 지역이라 하루 15~20권 정도를 판다. 강씨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빅판을 하면서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현재 임대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내가 지금 '내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강씨의 목표는 소박하다. "밑바닥 생활을 하던 중 빅판을 하면서 삶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믿고 의지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박명렬(64)씨도 4년6개월째 빅판을 하고 있다. 그는 삼성물산에서 28년 일하고 중역으로 퇴사했다. 그러나 이후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결국 노숙생활까지 하게 됐는데 20일 만에 빅이슈를 접했다. 다니던 교회 집사가 빅이슈 판매원을 해보라고 소개해줬다.

 박씨는 "내가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라 처음 2주 동안 고개를 못 들겠더라"면서 “힘들어하는 내게 집사님은 ‘좋은 일이니까 용기를 내라’고 격려해줬다”고 전했다.

 현재 그는 서울 서강대 앞에서 빅이슈를 팔고 있다. 강씨는 “학생들을 상대해서 참 다행이다. 학생들을 상대하니 착한 마음으로 할 수 있다”며 “학생들이 힘들더라도 용기를 내라며 책을 사준다.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다”고 털어놓았다.

 박씨의 꿈은 작은 김밥가게를 여는 것이다. 상호도 지어놓았다. '박씨네 김밥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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