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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보드게임 카페, 도박장으로 진화하다

등록 2016-01-18 11:12:55   최종수정 2016-12-28 16: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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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표주연 임종명 기자 = 실내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지하에 있는 어두운 조명의 카페는 개방된 공간인 홀과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는 '룸'으로 이뤄져 있었다. 조명과 객실만 살펴보면 영락없는 주점이라고 여길만한 장소였다.

 지난 13일 오후 9시께 서울 압구정동의 한 보드 카페를 찾았다.

 예약을 위해 전화를 미리 해봤지만, 오후 10시 이후 손님에게는 따로 예약을 받지 않았다. 입장 30분쯤 전에 연락해 빈자리가 있으면 가능하고, 아니면 대기해야 한다고 안내할 뿐이었다.

 손님이 대체로 꽉 차기 때문에 굳이 예약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다.

 카페는 VIP 룸 한 개와 일반 룸 다섯 개, 다섯 테이블이 놓인 홀로 구성됐다.

 포커판이 벌어지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일반 룸은 모두 꽉 차 있었다. 홀에도 두 테이블 정도만 비어있었다.  

 보드게임은 일반적으로 놀이판과 간단한 물리적인 도구로 진행하는 놀이를 말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사위 놀이나 블루마블, 모노폴리, 루미큐브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카페는 그런 보드게임을 취급하지 않는다. 이 카페에서 종업원에게 "블루마블 주세요"라고 하면 웃음을 살 가능성이 크다.

 그럼 어떤 게임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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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 "체크!" "둘 받고 둘 더!"

 카페 안 테이블 네 개에 둘러앉은 손님들이 즐기는 것은 모두 포커. 이 카페에서 제공하는 보드게임은 포커, 고스톱 등 '도박'이다. 보드게임 카페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사실상 '도박장'인 셈이다.

 홀에 자리를 잡자 카페 여주인이 능숙하게 트럼프 카드와 칩을 가져다줬다. 손님 대부분이 포커를 즐기기 때문인지 따로 어떤 게임을 원하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테이블 옆에 붙어있는 '현금 거래 금지, 현금기입 적발 시 퇴실조치'라고 적힌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카페에서는 장소와 카드, 칩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현금이 오가는 도박성 카드놀이를 금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카페 테이블에서는 현금이 한 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지는 형식적인 문구에 가까웠다. 손님들은 칩 색깔별로 금액을 정해놓고 포커를 즐겼다. 빨간색 칩은 1만원, 초록색 칩은 5000원, 흰색 칩은 1000원 식이다. 현금화한 칩이 오가고 있었다.

 귀동냥해보니 옆 테이블에서는 수시로 현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얼마를 잃었다"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단위가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이었다.

 오후 11시께가 되자 비어있던 두 테이블이 더 채워졌다. 대부분 20~40대 직장인으로 보였다. 모든 테이블에서 포커가 진행됐고, 비교적 앳된 얼굴의 네 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고스톱을 쳤다. 역시 카드가 오가는 테이블 위에는 어디에도 현금이 보이지 않았다.

 손님이 부쩍 많아지고 밤이 깊어지자 테이블에서 도박에서 사용하는 은어가 더 자주 흘러나왔다. "학교 가세요"(첫 베팅을 하라는 도박 은어)" "삥"(기본 베팅을 뜻하는 은어) 등의 단어들이었다. 간혹 칩을 현금으로 바꾸는 장면이 보였다. 카페 종업원들은 이를 모른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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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맥주병도 나뒹굴었다. 이 카페의 모든 자리에서는 흡연할 수 있다. 도박을 즐기는 장소와 사람들이 금연하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이 카페는 24시간 운영한다. 그리고 손님들을 위해 간단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라면을 4000원, 작은 맥주를 5000원~9000원에 판다. 안주로 작은 그릇에 감자튀김을 담아 파는데 1만5000원~2만원이다. 상당히 비싼 가격이지만, 손님들은 별 거부감 없이 구매했다.  

 카페 이용료는 비싼 편이기도 하고, 저렴한 편이기도 하다. 1인·1시간 이용 기준으로 홀은 2000원, 일반 룸은 3000원이다.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형태의 VIP 룸은 3만원을 받는다.

 일반 홀에서 다섯 명이 3시간 동안 게임을 즐기면 4만5000원이 들어간다. 이 금액은 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비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도박'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비싸지 않은 액수다.

 이 카페의 진짜 도박은 '매칭'이라고 한다. 카페에서 손님들을 서로 연결해줘 도박판을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는 정말 '도박판'이 벌어지고 판돈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카드놀이는 즐기는 것이 아니라 돈을 따는 것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 카페에서 여러 번 포커를 즐겼다는 어느 손님은 60대 남자 어르신, 젊은 아가씨, 40대 남자 등으로 구성된 도박판을 목격했다고 귀띔했다. 도저히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조합의 손님들이 한 테이블에서 도박을 즐기는 것이다.

 이튿날 새벽 2시께가 되자 테이블이 비어갔다. 손님들은 이제 단 두 테이블만 남았다. 비교적 어려 보였던 손님들은 모두 자리를 떴고, 30~40대로 보이는 남성 직장인들이 남아 담배를 물고 카드를 '쪼이고' 있었다. 그들이 포커게임을 하는 테이블 아래에서 언뜻 돈뭉치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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