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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늘감옥서 1년, 안타깝고 분하다" 고공농성 해제 기아차 비정규직 노조원들

등록 2016-06-07 07:00:00   최종수정 2016-12-28 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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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1년 동안 불판에 구워지는 느낌도 받아봤고, 동상도 걸려봤다. 몸과 마음이 힘들다. 우리는 여기를 '하늘감옥'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1년 동안 있는데, 그저 익숙한 풍경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잊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힘들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법원 판결 …기아차 "최종심까지 가자"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던 최정명씨(46)와 한규협씨(42)씨가 중구 서울시청 옆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 위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약 1년 만인 오는 8일 땅으로 내려온다. 그들은 지난해 6월11일부터 법원 판결대로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며 광고탑 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정확히 363일 만에 농성을 해제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막연히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서 농성하면 조금 더 보호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건물 광고탑도 인권위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른 채 농성을 시작했다.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으니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4년 9월25일 서울중앙지법은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자동차공장 내 사내하청은 불법이므로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다. 2011년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만에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기아차는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기아차 측은 최종심 판결이 아니어서 대법원 판결을 받으면 그 결과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종심 판결에 따라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얘기다.

 다만 기아차는 지난해 5월, 특별교섭을 통해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 3만400여 명 가운데 465명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나온 법원의 판결을 우선 이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조합 측은 최종심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들어가는데, 그때까지 지켜보겠다는 것은 사실상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였던 최병승 씨의 경우 최종심으로 정규직이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기아차가 진행하고 있는 1심 소송만 해도 3년2개월이 걸렸다.

 결국 법원 판결조차 이행하지 않는 재벌을 상대로 "땅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는 최씨와 한씨는 '하늘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고공농성 1년째, '하늘감옥' 생활

 최씨는 지난 6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로 농성 361일째를 맞는다"며 "아래 있는 사람들은 하루하루에 대해 크게 감이 없겠지만, 우리는 하루하루가 굉장히 의미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최씨는 "길어야 100일에서 150일이면 농성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며 웃었다. 최 씨는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라는 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것인데 당연히 길게 가지 않으리라고 봤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시작한 농성이 1년 동안 계속됐다. 지난해 6월부터 계절이 4번 바뀌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1년의 생활은 어땠을까.

 한여름 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광고탑이 철판이다 보니 단순히 덥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다. 겨울에는 혹독한 칼바람이 분다. 동상에 걸린 기억이 선하다. 이처럼 몸이 힘든 와중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가족'이다.

 최씨는 "지난해 농성을 시작한 직후 광고판을 운영하는 업체에서 물과 음식을 차단했다"며 "가족들이 물이라도 올리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받아들이지 않고 실랑이를 하는 것을 보면서 가족에게 정말 미안했다"고 토로했다. 물론 잠시 차단됐던 음식과 물의 반입은 허용되고 있다. 다만 생활하는 데 필요한 깔판 등 물품은 '시위용품'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반입되지 않고 있다.

 두 명이 좁은 광고탑 위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가 정말 길다. 아침에 기상하면 우선 밥을 먹는다. 휴대폰은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다. 지지 방문을 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안부 전화와 각종 집회에서의 발언 요청이 상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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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시간을 정해놓고 운동을 한다. 근육량이 떨어지면 높은 곳에서 오래 있을 때 생기는 어지럼증이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몸도 단련하고 마음의 안정도 취할 수 있도록 108배를 하기도 했다.

 유일한 소일거리는 식물을 키우는 것이었다. 페트병을 잘라서 만든 화분에 콩, 나팔꽃, 목화, 더덕 등 식물을 키운다. 최씨는 "처음에 콩 씨앗을 심으면서 이게 싹이 틀까 싶었는데 벌써 자라 꽃까지 피웠다"며 지난 1년의 농성을 돌아봤다.

 ◇"늦둥이 딸을 안아보고 싶다…종착역 없는 싸움 두려워"

 이제 농성은 단 하루를 남겨 놓고 있다. 애초 최씨는 "(농성을 중단하려면)적어도 교섭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관한 내용이 나오고, 노사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합원을 비롯해 그동안 도움을 줬던 많은 사람이 간곡하게 설득을 거듭했다고 한다. 단기간에 완전한 해결을 보기 힘드니 차라리 내려와서 같이 싸우자는 설득이었다.

 결국 최씨와 한씨는 8일 오후 1시30분 기자회견을 연 뒤, 농성을 해제하고 스스로 땅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1년 만에 농성을 중단하는 소회를 물었다. 최씨는 "너무 아쉽고, 안타깝고, 분하다"며 숨을 골랐다. 그는 "농성을 통해 교섭이 다시 열리는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결과를 보지 못하고 내려가는 것이 아쉽다"면서도 "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하지 않으면 회사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응원해 준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며 "지금은 끝을 보지 못하고 내려가는 안타까움과 억울함, 그리고 미안함이 몸과 마음을 채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면 웃으면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종착역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최씨는 "그동안 집에서 밥을 해 꼬박꼬박 가져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향린교회 분들은 매일 도시락을 싸서 올려줬다. 농성에서 내려가면 많은 분을 찾아 고맙다는 인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그간 식사는 노동조합 동료들과 종교단체 등에서 꾸준히 도움을 줘 해결했다. 농성하는 공간에서 조리기구를 사용할 수가 없기에 식당 밥이나 도시락을 줄로 매달아 올려줬다.

 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오면 하고 싶은 것이 없을까. 

 "직장 동료들과 오순도순 앉아서 노릇노릇한 삼겹살에 상추쌈을 싸서 마늘을 얹고, 소주 한 잔하고 싶다. 그리고 한씨나 나나 늦둥이 딸이 있다. 정말 안아보고 싶다."

 최씨는 마음이 먹먹한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최씨가 땅으로 내려와도 이 '소원'은 당장 이뤄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경찰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아쉬움을 토로한 최씨는 "회사와의 특별교섭이 마무리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한 불씨가 다 꺼졌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우리가 고공농성을 하면서 회사가 다시 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다시 협상하고 싸울 수 있는 불씨를 만들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최씨는 "지금 우리는 정몽구 회장에게 기아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책임지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이 싸움이 기아차 현장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재벌의 사회적 책임과 법적 책임에 국민의 많은 관심과 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씨도, 한씨도 곧 땅을 밟는다. 1년간 두 사람이 생활했던 옛 인권위 건물의 광고탑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 햇살은 점점 더 뜨거워질 것이고, 장마도 어김없이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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