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 논란, 위기의 문재인

등록 2016-10-24 11:00:00   최종수정 2016-12-28 17: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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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차에 오르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6.10.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강지혜 기자 = 송민순 회고록 논란에 휩싸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기자들이 연일 2007년 당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과 관련해 북한 지도부와 접촉했는지 여부를 묻고 있으나 문 전 대표의 입은 꾹 다문 상태다.  

 현재 송 전 장관의 회고록 속 '(청와대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문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 그리고 북으로부터 결의안 채택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쪽지가 송 전 장관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을 근거로 문 전 대표가 북한 지도부의 의사를 타진하는 과정을 주도했는지가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여전히 명확한 답변을 하고 있지 않다. 문 전 대표의 측근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문 전 대표는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 입장이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나는 기권을 주장했을 것 같은데 다 (내가) 그렇게(찬성) 했다고 하는데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측근들 증언 이어지지만…

 민주당을 비롯해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도 새누리당의 공세에 반발할 뿐 문 전 대표가 북한의 의견을 전달 받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를 지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이날 "당시 싸움은 송 장관과 이재정 장관의 싸움이었다.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거기에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문 실장이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를 감싸는 취지로 말한 것은 알겠지만 어딘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 논란의 핵심인 '문 전 대표가 북한에 물어보자는 의견을 냈다'는 것에 대한 언급이 불분명하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도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 내통이냐"라고 반발하면서도 문 전 대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와관련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18일 "유엔인권결의안의 기권 여부를 북한에 물어보고 결정한 적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이재정 전 장관의 당시 정책보좌관이었던 홍 의원은 "북한에 입장을 전달할 수는 있으나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의원은 "이재정 장관이 2007년 11월15일 청와대에서 회의를 끝내고 돌아와 자신과 송 전 장관이 주로 토론했는데 백종천 안보실장과 김만복 국정원장은 자신의 의견(기권)을 지지했고 문재인 비서실장은 찬성 쪽이었다"며 "그러나 기권 쪽 의견이 많자 문 실장이 그렇게(기권으로) 정리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측근들의 증언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문 전 대표는 조용하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본인이 명확히 밝히면 해소될 문제를 며칠이 지나도 명쾌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을 두고 구구한 억측이 나돌고 있다. 문 전 대표가 감추고 싶은 게 있다거나, 아니면 결정적 증거를 수집한 뒤 밝히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먼저 문 전 대표가 침묵하고 있는 게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기 때문이란 점을 가정할 수 있다. 송 전 장관의 주장대로 북측에 물어보고 인권결의안 기권을 결정한 것이기에 문 전 대표가 언급을 피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07년 당시 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기권' 입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북한의 의견을 들었고 이 과정을 문 전 대표가 주도한 게 사실이라면 문 전 대표에게는 크나큰 치명타다. 새누리당의 공세 강화는 물론이거니와 문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 이 때문에 문 전 대표가 의혹과 정치적 공방 수준에 머물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답변을 피하고 있다는 가설이 나올 수 있다.

 ◇'NLL 대화록 논란' 반면교사?

 아울러 문 전 대표가 2012년 대선 전 '노무현 전 대통령 NLL 대화록 논란'의 경험을 살려 이 사안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당시 문 전 대표가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하자고 밝혔다가 오히려 사안이 장기화되면서 대선에 악재가 됐던 것처럼 이번 송민순 회고록 논란에도 자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시간만 더 끌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언급을 피함으로써 파장이 축소되길 기다리려는 의도란 해석이다.

 일각에는 문 전 대표가 반격을 가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문 전 대표 측이 근거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뒤 송 전 장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면 오히려 새누리당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모두가 가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도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명쾌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문 전 대표의 침묵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대통령을 꿈꾸는 유력 주자로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있는 그대로 말한 뒤 국민적 심판을 기다려야 하고, 사실이 아니면 기자회견을 자청해 조목조목 반박하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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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시스】박주성 기자 = 17일 인천 남동공단 내 산업기계 제조업체 디와이를 찾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16.10.17.  [email protected]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할 당시 관계장관들의 다수 의견을 반영했다고 해명했지만, 이 역시도 논란거리 중 하나다. 남북관계에 중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다수'라는 숫자논리로 결정했다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쟁점은 문재인 전 대표가 2007년 당시 샘물교회 교인 23명을 납치한 아프가니스탄 무장 단체 탈레반에 국가신임장을 제시하자는 의견에 찬성했다는 부분이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탈레반 조직은 한국 정부가 탈레반을 납치단체가 아니라 아프간 내전의 정식 교전단체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송 전 장관은 "당시 안보정책조정 회의에서 김만복 국정원장과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신임장이라도 써 보내자고 주장했다"며 "문재인 비서실장과 백종천 안보실장도 찬성했고 김장수 국방장관은 중립이었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정부는 결국 탈레반에 국가신임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 전 대표가 탈레반에 신임장을 보내는 것에 찬성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적지 않다. 이슬람 무장단체를 정식 교섭단체로 인정하자는 데 사실상 찬성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자국민을 납치했다고 해서 해당 정부가 이 단체를 협상 대상으로 삼은 경우는 거의 없다.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서방 국가도 이 같은 방식은 쓰지 않는다. 무장 테러 단체에 국가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국제 사회에서는 상식 밖의 일이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문 전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 역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논란에 대해서는 총공세에 가깝게 대응하고 있지만, 탈레반과 관련한 쟁점은 언급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호재? 새누리당에선 총공세

 그러다보니 새누리당은 친박 비박을 가리지 않고 문 전 대표를 향한 총공세 중이다. '송민순 회고록' 진상규명위원장을 맡은 정갑윤 의원은 "여러 면에서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돼가고 있다"며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결재를 받아 유엔 결의안을 기권한 건 사실일 가능성이 99.9%"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북한에 굴복적인 저자세로 일관했던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반드시 밝혀 국민들에게 낱낱이 알려야 한다"며 "문 전 대표는 모든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새누리당에 이어 국민의당도 문 전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문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해 "일구사언으로 이 문제를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면서 "문 전 대표 역시 명확한 사실을 밝히지 않고 매일 말씀이 바뀐다. 이제 4번째 바뀌었다"고 공세를 폈다.

 그는 "나는 문 대표의 대통령 후보를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십에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며 "매일 말을 바꾸지 말고 명확한 사실을 국민 앞에 밝혀서 이 문제를 종식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문 전 대표를 압박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은 북한과 내통했다고 주장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문 전 대표를 종복(從僕)이라고 비난한 박명재 사무총장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는 등 문 전 대표 엄호에 나섰다.

 하지만 본질은 새누리당의 과격한 언동보다 문 전 대표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북한에 물어본 뒤 기권 결정을 한 것이냐에 있다. 국민이 알고 싶은 부분도 그 곳이다. 침묵으로 해결될 일은 분명 아니다. 문 전 대표의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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