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에 비교하며 사기 치지마”…고어가 트럼프와 다른 점
트럼프의 이 같은 대선 불복 가능성 거론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트럼프 측 주장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CNN방송은 21일(현지시간) “앨 고어와 비교하는 트럼프의 주장은 왜 허구(bogus)인가”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사설에서 "트럼프가 마지막 토론에서 미국 민주주의 자체를 모욕했다”고 비판했다. 보스턴글러브는 “트럼프가 대선 승복의 전통을 깼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최근 음담패설 녹음파일 공개 등 잇단 성추문 보도로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에게 지지율이 크게 밀리기 시작한 이후 선거조작 가능성에 대한 공세를 부쩍 강화해 왔다. 트럼프 측은 특히 지난 2000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 법정 소송을 거론하면서 대선 불복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를 돕고 있는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이날 SNS에 "앨 고어도 대선 결과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느냐"며 트럼프를 옹호했다.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인 켈리언 콘웨이는 최근 CNN방송의 크리스 쿠오모가 진행하는 ‘뉴 데이(New Day)’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는 여러 차례 말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선거 결과를 받아 들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콘웨이는 이어 “2000년 대선 당시 앨 고어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우선 선거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선거가 정당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CNN방송은 글로리아 보거 CNN 수석 정치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가 자신을 2000년 대선 당시 앨 고어의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마치 “사과를 코끼리에 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완전히 다른 두 가지를 비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 미국 대선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고어 부통령은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에게 전국적으로 33만여 표나 더 얻었다. 그러나 선거인단은 부시와 고어가 271 대 266로, 부시가 5명을 더 확보했다. 미국의 복잡한 선거제도 때문에 발생한 기이한 상황이었다. 이 사건은 주별로 승자독식 방식을 택하는 미국 대선 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선거의 마지막 승부처는 플로리다 주였다. 공교롭게도 부시 후보의 친동생인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곳이었다. 투표 종료 직전 일부 방송은 출구조사를 바탕으로 고어의 승리를 예측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방송사들은 개표 상황을 보면서 부시의 승리를 전하기 시작했다. 고어는 부시에게 전화를 걸어 패배를 시인하면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로부터 1시간 뒤 고어의 선거본부에서는 방송사들이 예측을 잘못했다고 판단했다. 개표가 초 접전으로 진행되자 ‘부시의 승리’를 전했던 방송사들도 이를 정정했다. 고향으로 가던 고어는 부시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취소했다. 처음 플로리다 개표 결과는 부시의 승리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개표의 오류를 제기하면서 재검표를 요구했다. 민주당 성향의 법관들로 채워진 플로리다 주 대법원은 재검표를 명령했다. 플로리다 주 법이 규정해놓고 있는 재검표 시행 기준에 합당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부터 36일 동안 고어와 부시 진영은 미국 대통령 선거 사상 유례가 없는 정치적, 법적 대결을 벌이기 시작했다.
CNN방송은 부시 측 참모였던 짐 베이커 전 국무장관의 말을 인용해 당시 공화당이 “(끝까지 재검표를 함으로써)깨끗하게 진실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승리를 택할 것인가 기로에서 후자를 택했다”고 전했다. 마침내 연방대법원은 5 대 4로 플로리다 주의 재검표 중단을 명령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일각과 언론에서는 보수적 대법관들이 사법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고어에게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불복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고어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깨끗한 승복을 택했다. 그는 TV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는 “나는 오늘 저녁 국민통합과 민주주의를 위해 승복을 한다. 나를 지지했던 모두 사람들은 새로운 대통령을 지지하고 단결할 것을 요청한다. 이제 정치적 투쟁은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