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홍상수의 본격 '사랑론'…'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영수(김주혁)는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소리친다. 과거의 홍상수는, 이런 말을 해대는 남자들을 조소(嘲笑)하거나 냉소(冷笑)했다. 그런데 홍상수는 지금,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겻'에서 영수의 말을 인정한다. 다시 말해 홍상수는 영수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홍상수가 이해한(이해한 듯한) 그 '진심의 사랑'은 결국 민정(이유영)에게 가 닿는다. 홍상수는 서서히 변해왔지만, 이렇게 도약한 적은 없었다. 그는 인간을 예리하게 벗겨내다가 따뜻하게 지켜보고, 이젠 감싸 안는다. 홍상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게 지금의 홍상수라는 거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홍상수의 본격 '사랑론'이다. '옥희의 영화'(2009)를 시작으로, '자유의 언덕'(2014)에서 본격적으로 로맨틱해지기 시작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 대놓고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은 전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와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에는 과거와 현재의 비교, 그러니까 시간적 인과 관계에 대한 판단을 기각하고,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모습만을 응시하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사랑의 형태로 드러났는데,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이 주제를 구체적인 인물들의 관계와 대사로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민정의 이른바 '낯설게하기'는 지금의 나에 대한 사랑으로(지금은맞고), 영수와 남자들의 '익숙해지기'는 내가 알았던 너에 대한 정보로(그때는틀리다) 구현한다. 과거를 반영해 현재에 행해져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약속'을, 영수가 그토록 강조하는 반면 민정은 깨버리자고 말하는 이유는 그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의 이런 양상들이 홍상수의 제언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는 여태껏 인간에 대한 '관찰 혹은 탐구'로 흔히 분류됐지, 메시지로 해석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부분적으로, '사랑이라는 건 상대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봐주고 그걸 사랑하는 게 아닌가'라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영화로 느껴진다. 홍상수의 영화 속 배우들이 대개 그렇듯 이번 작품에서도 주요 배역을 맡은 김주혁·이유영·김의성·권해효·유준상 등은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김주혁은 마치 홍상수의 이전 작품들에 꾸준히 출연한 배우처럼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한다. 이유영은 특유의 말간 얼굴로 때로는 사랑스럽지만 때로는 얄밉고, 때로는 단순해보이지만 또 때로는 복잡한 여자를 천역덕스럽게 연기한다. 홍상수의 세계를 함께 완성해온 김의성·권해효·유준상 등은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완성하는 데 힘을 보탠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어쩔 수 없이 홍상수와 김민희의 스캔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과한 해석일 수 있지만, 주인공 영수와 민정의 이름은 상수와 민희에서 한 글자 씩을 따온 느낌을 준다. 민정과 데이트를 하는 두 남자 '재영'(권해효)과 '상원'(유준상)은 영수와 함께 홍상수 자신을 담은 사람들로 보인다. 재영은 나이 많은 남자로 불리고, 상원은 영화감독이다(물론 영화감독은 홍상수 영화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직업이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두 사람의 스캔들이 세상에 공개되기 전에 완성됐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