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여교사' 김태용 감독 "'금수저·흙수저' 구도 뒤집어 봤다"
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여교사'는 평범한 멜로물은 아니다. 이 작품의 '효주'(김하늘)는 전작의 주인공 '영재'의 또 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거인'이 김 감독 자신의 과거에 '생존과 성장'을 녹여냈다면, '여교사'는 '생존과 계급'을 멜로 장르 안에서 풀어냈다. 매년 계약을 걱정해야 하는 비정규직 교사와 이사장 딸로 단번에 정규직이 된 교사, 그리고 무용을 하는 남학생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에는 감정을 넘어선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게 김 감독이 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냉정해지고 있다. '거인'(2014) 때는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첫 영화를 자전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용기를 좋게 봐준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여교사'는 다르다. 더 많은 관객과 만나야 하는, 첫 번째 상업영화다. 영화감독으로서 내 미래나 내가 앞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잠을 못 자고 있다. 흥행 부담도 있고, 관객 반응이 두려운 것도 있다. 물론 개봉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여교사'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이 작품은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영화다. 관객이 갖고 있는 각각의 사회적 경험에 따라 투영하는 게 다를 수 있다. 영화적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예상했다. 여태껏 나온 한국영화와는 다른 정서적 파격이 있기 때문에 평가가 나뉘지 않나 생각한다." -좋지 않은 평가, 서운한 부분은 없었나.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웃음) 다만 '여교사'라는 말이 섹슈얼할 느낌을 준다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일단 여자 선생님들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여교사'라고 한 거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이 제목 외에는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제작사에서도 이 제목을 지켜줬다. 그리고, 왜 여교사였는지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들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사람들은 기분을 풀 데가 없지 않나.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것, 아이들 앞에서도 쉽게 감정을 드러낼 수도 없다. 침묵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계급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지를 본 거다. 참고 쌓아온 감정들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 같았다." -"참고 쌓아온 감정들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걸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쌓이고 쌓인 모멸감이 터져버린다는 거다. 효주는 학생이 주는 모멸감, 상급자가 주는 모멸감, 남자친구가 주는 모멸감으로 인해 무기력해진 인물이다. 그런데 혜영이 그 무기력을 또 다른 모멸감으로 의도치 않게 자극한다. 그 자극들이 바람 빠진 공이을 점점 부풀어오르게 하다가 '빵'하고 터져버리는 그런 상황을 생각했다." -흥미로운 건 효주와 혜영의 행동이 마치 계급이 바뀐 양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을'인 효주는 혜영을 은근히 반복해서 괴롭히고, '갑'인 혜영은 시종일관 당한다.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진 인물의 발악 같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태를 전복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금수저-흙수저' 구도를 뒤집어 본 것이다. 효주가 아무리 혜영을 압박해도 이들의 기본적인 계급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혜영이 강력한 반격을 하지 않나. 또 한 가지, 이 권력 관계가 사랑에 맞닥뜨렸을 때, 애정에도 계급이 형성될지 궁금했다. 그러니까 사회 문제를 인간 본성 문제로 옮겨가보고 싶었다." -효주와 같은 인물은, 전작인 '거인'에도 있었다. '영재'(최우식)가 딱 그런 캐릭터 아닌가. 위악을 부리며 발악하는 인물 말이다. 이런 인물에 끌리는 이유는 뭔가.
-마지막 결정적인 장면 전까지, 엄청난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묘한 긴장감이 러닝타임 내내 흐른다. 아주 팽팽하다. 이 긴장감이 마지막 장면에서의 충격을 극대화한다. "그 긴장감, 클라이맥스에서의 충격은,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일상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액션영화 같은 걸 보면 거리감이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런데 '여교사'의 감정은 관객과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님은 이 시나리오를 보고,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번에 터졌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무서운 본성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지점'이라고 하더라. 그 말에 동감한다." -'계급'이라는 말이 결국 모든 사건을 이어준다. 그러니까 '여교사'는 치정극 형태를 띄지만, 감독이 이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거인'도 그런 작품이었다. 아직 두 작품이지만,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 같다. "처음부터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개인의 감정을 따라가다보니까 그 감정의 고리에 사회 시스템이 걸린 거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부딪힐 때, 생기는 파급효과를 그린 것이다. 이런 영화를 실제로 좋아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을(이런 사회적인 시선을) 장르영화에 녹인 것, 이를테면 '첨밀밀'도 그런 영화가 아닌가." -사회에 대한 시각을 이야기를 하면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거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희망은 남겨놨지만, '여교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완전한 파국이다. 이 사회를 희망 없는 상태로 보고 있다는 건가.(웃음) "내가 그렇게 변했나보다.(웃음) 사실 이 이야기에 희망을 줄 게 뭐가 있겠나. 한 여자 감정의 극단을 보여주는 거면 끝까지 가야 했다. 어줍잖게 결말을 내버리면 아무것도 안 된다. 영화는 영화로 남았으면 한다."
"그렇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효주를 연기한 김하늘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이지만, 이건 분명히 새로운 모습이었다. 왜 하필 김하늘이었나. "효주 이미지가 없는 배우가 했으면 했다. 건강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배우, 그래서 김하늘 배우가 떠올랐다. 그가 과거에 선생님 역할을 했던 것 또한 흥미로웠다. 김하늘 배우가 '로망스'를 했던 게 14년 전인데, 이 배우가 나이 들어서 교사 역할을 다르게 연기하는 건 재밌는 비교가 되지 않겠나. 또 한 가지는, 김하늘과 비슷한 또래 배우들 손예진·공효진 등이 최근 들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김하늘 배우 또한 그럴 타이밍이 됐다는 생각도 했다." -김하늘이 효주를 연기한 건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문제는 이 배우의 연기가 함께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를 다소 압도한다는 거다. 세 인물 사이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거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가 늘어지는 걸 최대한 경계했다. 혜영과 재하의 이야기가 원래는 더 있다. 하지만 과감히 편집했다. 장점만 취하려고 했다. 어쨌든 '여교사'는 효주의 이야기이니까, 효주에게 더 집중한 부분이 있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거인'으로 인터뷰를 했을 때, '여교사'에 관한 언급을 한 바 있다.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웃음) 최대한 빨리 만들고 싶다. 올해 안에 하고 싶다.(웃음) 두 편을 하니까 드는 생각은, 영화는 또 영화감독은 관객을 설득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세 번째 작품은 장르적인 재미도 더 살리면서 관객을 설득해보고 싶다. 더 규모가 큰 작품을 준비 중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