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아 "'영웅'은 제게 복잡한 감정 선물한 뮤지컬"
데뷔 16년 차 가수 겸 배우 박정아(36)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지난달 26일 8번째 시즌의 서울공연 막을 내리고 이달 11일 창원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에 돌입한 창작 뮤지컬 '영웅'(제작 에이콤)을 통해 뮤지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뮤지컬 '올슉업'으로 이 장르에 데뷔한 이래 두 번째 출연작이었다.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영웅'은 능력 있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뮤지컬이다. 설희는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아도, 자칫 남성적인 분위기로만 쏠릴 수 있는 이 뮤지컬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명성황후의 마지막 궁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다. '사랑이라 믿어도 될까요' 등 넘버도 어렵기로 소문이 났다. 최근 강남구 스튜디오에서 만난 박정아는 "제 자신과 싸움을 계속 벌이게 한 작품"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복잡한 감정들을 생겨나게 해요. 서울 공연이 잘 끝났지만 '조금 더 잘할 걸'이라는 생각과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요. 지방 공연이 남아있으니 이런 생각들이 더 오래갈 듯하죠. 복잡한 감정을 선물해준 뮤지컬이에요. 호호." 설희는 가상의 인물이다. 박정아는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순국열사를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해석했다. "모든 걸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힘든 일인 걸 알면서도 죽음을 걸고 노력하죠. 많은 투사들이 그리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공연 내내 '영웅'이라는 작품의 무게를 무겁게 감당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프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2009년 초연한 이래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것에서 보듯 뜨거운 관심을 받아서 오히려 힘이 났다는 것이다. 본래 3000석 짜리 대형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의 2층까지만 좌석을 오픈했지만 공연 중반, 3층까지 문을 열었다.
화려한 스타 캐스팅에서 지켜보듯 이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뮤지컬계 대부'로 통하는 윤호진 연출은 배우 캐스팅에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설희는 김선영, 리사, 소냐 등 가창력으로 내로하는 배우들이 맡았다. "'올슉업'을 보셨다고 하셨어요. '에너지가 좋다'는 말씀을 다른 분들을 통해서 들었죠. 설희가 돼 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오래 걸렸는데, 끝까지 기다려 주시고 지켜봐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믿는다며 용기를 주셨죠. 연출님 덕분에 이 작품 덕분에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뮤지컬 데뷔작이던 '올슉업'의 넘버는 팝의 연장선상이라 그룹 '쥬얼리' 등을 통해 가요계에서 입지를 굳혔던 박정아에게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영웅'의 설희는 고음이 많고, 성량이 풍부해야 해서 기존 가요 발성으로는 한계가 많다. "제 음역대가 메조소프라노(소프라노와 알토의 중간 음역)라서 더 발성 연습을 열심히 했어요. '언제가는 고음을 안정적으로 내고 말거야'라는 열정을 만들어줬죠. 물론 노래에 정답은 없지만 소리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거예요. 가수로만 활약할 때보다 더 집요했어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배우에 대한 꿈은 있었다. "그 때는 근데 자신이 없었어요. 쥬얼리를 탈퇴하고 연기를 하는 등의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노래를 하지 않고 있지만 노래를 할 줄 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거죠. '뮤지컬 꿈나무'로서 막연하게 꿈을 품고 있었는데 초반부터 '영웅'이라는 큰 벽에 부딪혀 고생을 했죠." 과거 TV 시상식에서 뮤지컬 '시카고' 넘버 '올 댓 재즈'를 섹시하게 소화하기도 한 박정아는 이 뮤지컬을 비롯해 '엘리자벳' 등을 출연하고 싶은 작품으로 꼽았다. 노래, 춤 실력뿐 아니라 훨친한 키(169㎝)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운 선 등이 인상적인 그녀에게 뮤지컬배우로서 본인의 장점을 묻자 쑥스러워하며 "색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웃었다. 박정아는 그간 색다른 영역에 쉬지않고 도전해왔다. MBC 표준FM 라디오 '박정아의 달빛낙원'의 DJ를 맡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2015년 자신이 속했던 기획사가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에 인수, 합병되면서 매니지먼트 환경도 변경됐고 지난해 결혼을 하면서 삶 자체 역시 바뀌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새로운 것들이 잘 찾아왔어요. 결혼을 통해 타인과 살아가는 걸 배웠고 소중한 사람을 더 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라디오는 소중한 것을 더 바라볼 수 있게 해줬고요." 뮤지컬은 초반에 자신을 '뮤지컬꿈나무'라고 소개했듯,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을 보게 해줬다. "'영웅' 지방 공연이 끝나고 나면 관객분들이 '다양한 작품에서 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좀 더 다양한 작품에서 저를 실험해보고 싶어요."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