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서 피워대는 '길빵' 만연…보행 흡연 갈등 심각
'간접흡연 못참아' 공감대 확산···보행흡연 금지 여론 갈 곳 없는 애연가들 "흡연구역 먼저 보장" 주장도 【서울=뉴시스】 변해정 심동준 기자 = 인터넷 한 커뮤니티 아이디 '해석**'는 두 달 전 골목길에서 속칭 '길빵(길거리 흡연)'하는 중년 남성과 시비가 붙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담배를 마구 피워대는 이 남성에게 "진짜 매너없네"라고 내뱉은 말이 화근이 됐다. 중년 남성이 "나한테 한거냐. 네가 무슨 상관이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고 "비좁은 골목에서 흡연하는 게 예의냐. 남에게 피해줘선 되겠냐"고 응수했다. 순찰 중이던 경찰의 중재로 폭력 사태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이 사연에는 "불쾌했겠다" "용감하다"는 내용의 댓글이 수십 건 달렸다. 또 다른 아이디 '서동**'는 40대로 보이는 남성과 크게 다퉜다. 횡단보도를 앞서 건너던 이 남성이 피우던 담뱃재가 팔로 튀었다. "앗, 뜨거!"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이 남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가버렸다. 뒤쫓아가 빨갛게 부어오른 팔을 들이밀며 "길 가며 담배 피는 게 위험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사과는커녕 "바짝 붙어 걸어선 되냐"며 더 크게 고함 치며 책임을 돌렸다.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의 어학원을 다니는 김예은(23·여)씨는 지름길을 놔두고 10분 가량 더 걸리는 오르막길을 돌아서 간다. 아침부터 수십 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장소를 지나치기 싫어서다. 지각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지름길을 택하지만 담배 연기가 옷에 배 종일 찝찝한 느낌이 든다. 김씨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인데 단속 한 번 제대로 하는 걸 못 봤다. 비흡연자가 무슨 죄냐. 버젓이 담배 피우고 뒷처리도 하질 않는다. 불쾌하지만 매번 담배를 꺼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김씨의 대학 친구 이연정(23·여)씨도 "흡연자인 남자친구를 둬 덜 예민한 편이지만 담배 연기나 냄새가 빠지질 않는 골목 계단길을 지나가기가 역겨울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길거리를 비롯한 야외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행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흡연에 비교적 관대한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흡연자들의 권리의식이 갈수록 강화되고 간접흡연의 고통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되면서 '보행 흡연'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출근길에 앞에서 담배를 피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연기를 피할 수도 없고 매우 짜증스럽다." ,"길 가다 담뱃불을 아무렇게나 털어 아이들이 다칠 뻔 했다" 등의 불만과 우려를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보행 흡연은 불법이 아니다. 간접흡연 피해를 보더라도 호소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보행 흡연을 법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흡연자나 비흡연자 양 측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행 중 흡연 금지를 찬성한 비율은 88.2%에 달했다. 서울시민 10명 중 9명 꼴이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7.7%에 불과하다. 서울시민 중 성인 남성 흡연율은 36.5%로 미국·호주보다 2배 이상 높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연간 7조원에 달한다. 서울시 움직임에 대해 비흡연자들은 반긴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우준향 사무총장은 "서울시 조사결과는 일반 국민들도 간접흡연의 폐해에 대해 경각심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흡연권보다 비흡연자의 건강권이 우선돼야 한다. 길거리 흡연 규제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흡연자들은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보인다. 애연가 최태원(56)씨는 "금연구역이 확대되면서 건물 밖으로 내몰려 담배를 펴왔다. 이젠 그마저도 규제한다니 어이가 없다. 흡연 구역을 더 늘려줘야 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중에도 금연구역이 늘어난 만큼 정부와 자치단체가 흡연자를 위한 공간을 확보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