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휴가철 여행길은 고생길?…"푹 쉬려면 '홈캉스'가 최고"

등록 2017-08-05 13:20:03   최종수정 2017-08-14 09:10:51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여행 계획 짜는 것도 스트레스···"집이 제일 편해"
호텔 방 하나 잡아 휴식하는 '호캉스'도 유행 추세
"경쟁 찌들어 여행 즐길 줄 모르고 미션 완수하듯"
"업무 과다로 인한 불안감 여행 못 떠나는 한 이유"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직장인 안모(37)씨에게 있어 태닝숍을 등록한다는 것은 여름휴가를 시작하는 신성한 의식과도 같다. 화상을 감수하고 비치 체어에 누워 얼룩덜룩한 자국을 남기는 것보다 태닝숍에서 기계로 고르게 태우는 편을 택한다. 태닝숍에서 시작한 여름휴가 일과는 마사지숍이나 사우나로 이어진다.

 누워있느라 좀이 쑤시면 수영장에 가서 몸을 풀거나 이태원에 가서 외국인들과 농구 경기를 펼친다. 저녁엔 집에서 에어컨을 풀가동하고 프로야구 중계를 관람한다. 장소가 집 혹은 집 근처라는 점을 제외하면 일정은 힐링을 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휴양지로 떠나는 이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면 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associate_pic

 "일 년의 절반을 일만 하며 달려왔으니 휴가 때는 진짜로 쉬고 싶어요. 안 그래도 심신이 지쳤는데 낯선 곳에 가봐야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멀리 가느라 차 안에 갇혀있거나 비행기 타는것부터가 이미 스트레스거든요. 이렇게 여름 휴가를 보낸 지 벌써 6년이나 됐어요."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인천공항은 연일 북적이지만 한편으론 멀리 떠나지 않고 '머무는 휴가'를 선호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직장을 다니느라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집이나 집 가까운 곳에서 치유의 시간을 갖는 이른바 '홈캉스(홈+바캉스)',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 족(族)이다.

 실제로 시장조사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여름휴가에 여행을 꼭 가야 한다"는 인식은 42%로 나타났다. 휴가에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53.2%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휴가에 여행을 계획하지 않은 이들은 그 이유(중복응답)로 성수기 인파와 바가지 요금에 대한 거부감(59.0%)을 가장 많이 꼽았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피곤할 것 같아서(29.9%)라는 응답도 30%에 육박했다.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에 계획이 있어서(28.2%)'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공무원 하모(32·여)씨는 최대한 집 밖으로도 나가지 않을 작정이다. 휴가에 돌입하기 직전, 곰이 겨울잠에 대비하듯 마트에서 냉동식품과 과자를 잔뜩 사놓고 미국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정주행할 생각이다. 평범한 한 여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13가지 이유를 밝혀내는 스릴러물인데 오싹한 드라마를 보면서 피서를 하겠다는 게 하씨의 계획이다.

 "여름엔 집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여행을 좋아하지만 사람 많고 모든 것이 비싸지는 여름에는 진만 빠지더라구요. 성수기는 자녀의 방학에 휴가를 맞춰야 하는 상사들에게 양보하고 가능하면 가을이나 겨울에 연차를 사용해 여행을 떠나려고 해요. "
 
 최근엔 여행지에서 숙박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아닌, 호텔 그 자체가 휴가의 목적이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호텔과 바캉스를 합친, 소위 '호캉스'다. 가족단위 고객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돌잡이 아이를 둔 주부 이모(27·여)씨는 인천공항 근처의 한 호텔을 잡아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집을 떠나 리프레쉬를 하고 싶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전쟁터가 돼버린 관광지에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갈 엄두가 안 나서다. 호텔은 내 집보다 더 큰 쾌적함을 제공하면서도 유아용 풀과 키즈카페 시설을 갖춰 아이가 심심할 겨를이 없다. 멀리 가지 않고 아이가 평소 익숙한 자가용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호캉스를 선택한 이유다.

 권미혜 그랜드 하얏트 서울 지배인은 "장거리 이동이 부담스러워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가족단위 고객들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휴가 패키지를 기획판매하고 있다"며 "최근 3~4년을 보면 매년 패키지를 이용하는 가족단위 고객이 전년 대비 15~20% 가량 늘고 있다"고 말했다.

associate_pic
여름휴가의 초점이 휴식을 넘어서 '요양'에 맞춰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그만큼 팍팍하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여유가 필요한 일인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지쳐있고 시간적 여유도 제한돼 있는 상황"이라며 "휴가 뿐 아니라 휴일에도 늦잠 자기 바쁘거나 TV를 보며 멍 때리는 휴식이 고작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충전'을 위한 여행이 오히려 '방전'을 불러온다는 점도 머무는 휴가를 택하는 하나의 이유다. 이 교수는 "어렵게 여행을 간다 하더라도 앞만 보며 경쟁하고 살아오다보니 여행을 편안하게 즐길 줄 모르고 미션을 완수하듯 일정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휴가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직장 분위기가 반자발적인 홈캉스족을 양산한다는 의견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많은 직장인들이 휴가를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미리 확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등 계획이 필요한 여행은 못 하게 되는 것"이라며 "업무 과다로 하고 있는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떠나는 휴가를 놓쳐버리게 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