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문수 서울시의원 "친일인명사전 필사운동 단죄 아닌 반성과 용서"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친일파의 후손이 조상의 과오가 낱낱이 담긴 친일인명사전의 내용을 한자 한자 필사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오욕의 역사지만 이같은 역사가 후대에는 반복되질 않길 희구하며 참회의 글을 적는다. 친일파가 친일인명사전을 필시한다는, 단순한 행위지만 뚜렷한 울림을 주는 운동을 추동하는 이가 있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성북2)은 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이던 지난해 2월부터 친일인명사전 필사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는 광복 72주년을 앞두고 지난 3일 시의회 의원회관 본관에서 김 의원을 만나 친일인명사전 필사운동의 시작과 의미를 물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이름을 시민들에게 알려 국권침탈시기의 굴곡진 역사를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시작된 이 운동에는 이미 1190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이 운동은 친일인명부에 수록된 4389명에 대한 필사를 모두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사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다보면 친일파 후손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게 나라다'의 저자 김세준씨는 조부 김민식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조상의 잘못에 용서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사를 했다. 김 의원은 친일파 조상을 둔 자신의 친구가 용기있게 필사운동에 참여한 일화를 알려줬다. 그는 "할아버지가 친일파였던 친구가 이번에 참가했다. (조상의 잘못을)털고가야겠다고 하면서 용기내서 참가하더라"며 "대기업 인사과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대학생 취업강의를 하는데 K대 겸임교수도 하고 있다. 필사운동을 한 뒤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해외에서도 반응은 뜨겁다. 미국에서 거주하는 홍순호씨는 한국의 공준수 어르신으로부터 친일인명사전 필사운동 소식을 듣고 친일인사의 행적을 필사해 항공우편으로 보내왔다. 김 의원은 서툰 글씨지만 친일파의 행적만큼은 또렷하게 알 수 있는 손편지를 일일이 펼쳐보이며 해외에서의 응원을 알렸다. 김 의원은 친일인명사전 필사운동이 단순히 단죄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반성하고 용서하면 끝날 일을 안 하고 숨기는 게 반복되고 있다"며 "후손은 죄가 없다. 후손들이 용서해달라고 한다면 국민들이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 끝날 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은 계속 기득권을 쥐겠다는 것이다"며 "계속 변명하고 감추는 것은 결국 앞으로도 잘못을 저지르겠다는 것과도 다름없다. 친일 재산과 사회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필사운동은 일선 중·고등학교 친일인명사전 보급이 계기가 됐다.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지는 꽤 됐지만 읽지 않은 이들이 여전히 많은 게 현실입니다. 아이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기 위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서관에 넣어주면 학생들이 자연스레 접할 수 있지않겠습니까. 그런데 필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에요. 아무래도 직접 쓰다보면 더 많은 것을 깨달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필사해보면 친일파가 정말 나쁜놈들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거든요." 김 의원은 "아이들에게 나라 팔아먹는 일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항일운동가들을 가르쳐야 한다"며 "나라를 팔아먹면 안 된다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1000명을 갓 넘은 필사운동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김 의원은 "이제는 인원만 빨리 늘리는 게 중요하지 않다. 좀 더 시민의 삶의 깊이 스며드는 게 중요하다"며 "오는 8.15때에는 성북구에 한성대입구역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시민들과 필사운동을 하려고 한다. 만해 한용운 생가 등 상징적 자리에서 필사운동 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나 중국, 일본이 쳐들어오면 젊은이들이 총을 들고 나라를 지켰다. 고려나 조선 같이 500년 1000년 된 역사에서도 그것을 배우는데 코 앞인 일제시대에는 그러질 못했다"고 한탄했다. 이어 "이 오욕의 역사를 덮어두면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려들겠나. 군대는 가려하겠나. 독립운동가 자손은 못살고, 국가를 배신하고 일본에 빌붙은 사람의 자손은 떵떵거리고 잘 사는데 어느 젊은이가 나라를 지키려하겠나. 그저 현실에 빌 붙으려 하지. 500년, 1000년이 지나더라도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 최순실은 친일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끝으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가 독일 점령시 세워졌던 비시정권 하의 부역자 수만명을 숙청한 사실을 거론하며 아직도 미완인 친일청산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프랑스는 독일에 3년동안 점령당했을 뿐인데도 이후 수만 명을 처단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35년간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도 아직도 청산을 못했습니다. 프랑스는 청산된 역사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로 갈등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친일청산이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친일파 후손은 잘 나가고 독립운동가 후손은 지하 단칸방에 사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갈등이 치유되지 않고 있는 것이죠. 우리 사회 갈등의 근본에는 친일파 청산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는 이 갈등을 끝내야 합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