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 "내 인생은 어드벤처 영화"
이후 영화음악가 스탠리 마이어스와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했고 할리우드 데뷔작과도 다름없는 더스틴 호프먼·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레인맨'(1988·감독 베리 레빈슨)으로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그래미어워드에서만 36번의 노미네이션과 7번의 수상 기록을 내면서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오케스트라에 자신의 주특기인 신시 사이저를 사용해 화려한 화성을 입히고 강력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점이 강점이다. 그가 공연기획사 프라이빗커브가 내달 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론칭하는 가을 페스티벌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를 통해 한국 팬들에게 처음 인사한다. 짐머는 내한 전 뉴시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본인의 인생을 영화 장르에 비유해달라'는 물음에 "단연코 어드벤처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작은 독일 시골마을에서 온 소년이 할리우드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전 음악에 대해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어요. 계속해서 여러 방면으로 부딪혀 나가고 배워 나가고 한 모습을 보면 어드처물이 될 것 같죠. 매일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갑니다." '레인맨'으로 데뷔했으니 내년이면 벌써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30주년을 맞는 셈이다. 짐머는 "30년이라니,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인터스텔라' 음악의 완벽한 녹음을 위해 45번이나 세션을 진행한 적도 있다. "물론, 제가 여태껏 일했던 모든 작품을 다시 되돌아보자면 당연히 바꾸고 싶은 부분들이 있죠. 하지만 이렇게 완벽주의에 집착할 수도 없고, 이미 완성한 작품은 놓아줘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영화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짐머는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새삼 진가를 입증했다. 태생부터 영상과 한몸인 듯 음 안에 내재된 긴박한 스펙터클이 일품이었다.
짐머는 영화에 맞아떨어지는 음악을 만드는 비결에 대해 "영화의 색채를 파악하고, 어떤 악기의 음악적 색감이 촬영기법과 시각적 디자인에 어울릴지 고른다"고 했다. 놀란 감독과 파트너십에 대해서는 "서로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며 작품의 이야기를 더 향상시키는 파트너"라고 했다. 그는 놀란 감독과 종종 벌이는 게임 이야기를 들려줬다. "놀란은 굉장한 스토리텔러입니다. 언젠가 그와 나는 하루에 한장씩 서로 일기를 썼어요. 자유 주제였고, 놀란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한 쪽에 쓰면 난 그걸 읽고 거기에 대한 답변을 그 날 써내려가야 했죠. 주로 그는 영화이야기가 아닌, 제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나 바라는 것들을 써내려갔는데 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이번 페스티벌에서 짐머는 자신의 웅장한 음악 세계관을 라이브로 구현하기 위해 그가 직접 선별한 뮤지션들로 이뤄진 19인조 밴드와 함께 내한한다. 국내 유명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거장 짐머의 진두지휘 하에 합을 맞춰 친숙한 곡들을 라이브로 선사할 예정이다. 이 라이브 무대의 완성도는 이미 지난 4월 세계 최대의 음악 페스티벌로 통하는 미국의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위력을 입증한 바 있다. 레이디 가가, 켄드릭 라마 등의 인기 팝스타나 힙합스타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영국에서 시작된 전석 매진 행렬은 지난해 유럽투어를 거쳐 올해 월드투어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음악들을 라이브로 들려주는 순간에 그는 "관객의 일부가 되고 관객들이 제 일부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며 즐거워했다. "이런 경험은 그 순간에서만 유효합니다. 변덕스럽고 폭력적인 요즘 세상에 이렇게 예술과 미술에 의지해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요즘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언어, 인종, 종교, 갈등을 모두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배경에서 온 사람들을 몇시간 동안의 음악으로 하나되게 하는 엄청난 힘이 있죠." 사실 영화 스크린 뒤편에 숨어 있지 않고 무대 위에 직접 서기까지는 많은 두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고맙게도 많은 관객이 와줬어요. 대부분의 관객들이 제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였죠. 영상이 없이 음악만 들려주는 것이 큰 모험이었습니다. 영화의 음악이 영상 없이 홀로 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있었고,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어내서 큰 안도감을 느꼈어요." 월드 투어를 돌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의 장르 또는 뮤지션이 있냐는 물음에 "그때 그때 감정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30년대쯤에 듀크 엘링턴이 이런 말을 했어요. '세상에는 단 두 가지의 음악만이 존재한다.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 그래서 스타일로 따르자면 전 정말 모든 음악을 들어요. (개러지 록 밴드인)화이트 스트라입스를 듣다가도 (스웨덴 팝 그룹)아바를 듣고, (전자음악의 선구자인)크라프트베르크를 듣다가 바흐 연주곡을 계속해서 듣죠." 한국 영화인들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을 기회가 있었냐는 질문에는 "몇몇 한국 친구들이 있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포함해 많은 한국 영화를 즐겨 봤다"고 했다.
거장은 항상 음악과 살면서도 음악에서 안식까지 찾는다고 했다. "특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음악은 항상 내 안에 있었고, 나는 늘 감정을 음악을 통해 표출해냈죠. '라이언 킹'은 나의 아버지를 위해 쓴 일종의 레퀴엠이 됐고, 제 가장 깊은 감정을 마주한 작품이기도 하죠." 음악은 항상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날카롭게 움직일 수 있고 개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뛰어넘어 하나 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짐머의 믿음이다.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돕죠. 제 음악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전 아주 중요한 개인적 목표를 달성한 것이에요." 한편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은 바쁜 현대인의 삶에 '진정한 여유와 건강한 즐거움을 찾아줄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기획 아래 올해 처음 선보이는 축제다. 지난 5월 제11회를 맞은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연기획사 프라이빗 커브가 야심차게 준비한 가을 페스티벌이다. 짐머 외에 지난해 말 신드롬을 일으킨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32)도 이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한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