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총기규제 돌풍 몰고온 10대...'수정헌법 2조' 넘을 수 있을까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지난 14일 플로리다 주 남쪽 브로워드 카운티의 파크랜드에 있는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로 학생과 교사 등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 사회에서는 총기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총격범은 이 학교에 다니다가 교칙 위반으로 퇴학당한 니콜라스 크루스(19)로 우울증, 자폐증, 주의력결픽 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신병을 앓고 있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권총으로 자신의 얼굴을 겨눈 사진을 올리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 미 연방수사국(FBI)에 두 번이나 신고가 되기도 했다. 크루스는 10정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그 중 7정은 지난해 합법적으로 직접 구입한 것이었다. 총격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미국 사회에서는 총기규제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관련 기사들이 언론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총기난사사건은 이 전 총격사건과 사뭇 다르다. 사건 현장에 있던 생존자들이 "살고 싶다", "더는 못참겠다"며 전방위적으로 총기규제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10대의 재기발랄함과 당당함으로 어른들과 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CNN에 따르면 총기난사사건이 있었던 주의 주말인 17일 플로리다 주 포트 로더데일의 브로워드 카운티 연방 법원앞에서 열린 총기난사 희생자 추모 및 총기규제 촉구 집회에 참석한 더글러스 고교 학생들은 정치인들을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3학년생 에마 곤살레스는 연설을 통해 "어른들은 '그런 거란다'라고 이야기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배운 건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이)떨어진다는 것이다. (총기규제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총기소유를 주장하는 '미국총기협회(NRA)'에서 선거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Shame on you). 정치인들은 멋진 하원과 상원 좌석에 앉아 NRA의 자금을 받으면서 우리에게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런 걸 BS(bull shit)라고 부른다"라고 일갈했다. 곤살레스의 이같은 '사이다 발언'이 담긴 영상은 SNS를 타고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NRA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목소리보다 곤살레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하다고 보도했다. 트위터 상에서도 "곤살레스의 영상은 군중들이 분노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곤살레스와 같은 아이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곤살레스가 만든 정당이 무엇이든 합류할 것이다"라는 등의 지지 반응이 넘쳐났다.
또 더글러스 고교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재학생 데이비드 호그 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FBI이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에 많은 시간을 쏟느라 이번 사건을 막지 못했다'는 취지의 트윗을 남긴 것과 관련, "당신이 대통령이면서 어떻게 당신 책임 하에 있는 관료들을 비난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계속된 인터뷰와 연설로 주목을 받은 호그는 FBI 출신인 아버지의 '코치'를 받고 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총기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21일 CNN방송 주최로 열린 총기문제 관련 타운홀미팅에서도 더글러스 고교 학생들은 주눅들지 않았다. 2학년 학생 캐머런 캐스키는 마르코 루비오(공화) 주 상원의원에게 "지금 바로 여기서 앞으로 NRA로부터 단 한 푼의 기부금도 받지 않겠다고 말 해 줄 수 있나"고 따져물었지만 루비오 의원은 즉답을 피했다. 루비오 의원은 NRA로부터 'A+' 등급을 받은 대표적인 친NRA 의원이다. 그는 정치 생활을 하면서 이 단체로부터 약 330만 달러(약 36억 원)를 기부받았다고 더 힐은 전했다. 같은 날 더글러스 고교 일부 학생들과 지지자들은 플로리다 주 탤러해시에 위치한 주의회 의사당에서, 주 남부 학교 50여곳의 학생 수 천명은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각각 총기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또 같은날 일부 생존 학생들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학교를 총기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달라고 촉구했다. 2학년 생인 저스틴 그러버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1999년 콜로라도에서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던 해에 자신이 태어났다면서 "이 나라는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재학생인 새뮤얼 자이프는 지난 14일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으로 형제와 다름없는 절친을 잃었다며,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18세가 됐는데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더글러스 고교 학생들은 SNS을 적극 활용했다. 그들만의 해시태그 #NeverAgain을 사용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활용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의 정책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며 3월 24일 전국적인 시위를 계획했다. WP에 따르면 더글러스 고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총기규제 지지자들은 3월 24일 50만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규모 집회 '우리의 삶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을 워싱턴에서 개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 집회는 워싱턴 뿐 아니라 미국 내 다른 주요도시에서도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디킨슨 칼리지의 마체티는 "젊은이들이 정말로 잘하는 것 중 하나는 상징과 이미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들은 그 점에 있어 우세하다"라고 말했다.
10대들의 당찬 행보에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 부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부부, 유명 프로듀서인 제프리 카젠버그 부부, 오프라 윈프리 등도 총기규제 집회에 대한 지지를 선포하며 각 50만 달러를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윈프리는 트위터를 통해 "나는 당신들과 힘을 합칠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에게 1960년대 프리덤 라이더스(Freedom Riders)를 생각나게 난다"며 "그들(젊은 사람들)은 (총격사건으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은 이제)충분하다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프리덤 라이더스 운동은 1960년 봄 캘리포니아 그린즈버로에서 흑인 학생 4명이 버스 좌석의 흑백 분리 차별에 저항하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이로 인해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흑인인권운동의 아이콘이 됐고, 백인 청년 학생운동가들은 '프리덤 라이더스'라는 이름으로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미 남부지역을 돌면서 흑인인권운동을 벌였다. 밥 딜런, 존 바에즈 등 당시 포크 가수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NRA의 지지를 받은 게 자랑스럽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 조차 총기 관련 대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총기 구매자 신원조사 확대 ▲총기 소지연령 21세로 상향 ▲범프스탁 판매 중단 등의 대책을 거론했다. 하지만 총기규제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실질적으로 총기가 규제되기 위해서는 헌법이 개정돼야 하는 근본적인 절차가 있다. 미국이 총기를 자유롭게 구매하고 소지할 수 있는 것은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2조 때문이다. 조항은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고 명시 돼 있다. NRA를 비롯한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이들은 수정헌법 2조를 들며 총기소유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총기규제를 찬성하는 이들이 넘어야 할 더 가까운 장애물은 공화당이다. 버락 오바마 전 정부 때에도 총기규제 강화법안을 번번이 부결시켰던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총기 관련 입장에도 호응하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물밑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효과는 미비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미총기협회(NRA) 지도자를 만났고, 폴 라이언(공화·위스콘신) 하원의장, 미치 매코넬(공화·캔터키) 상원 원내대표, 초당파 의원들과 각각 만남을 가졌다. 전국 공화당 의회 위원회 회장인 스티브 스타이버스(오하이오) 하원의원은 학교 안전을 위해 많은 일을 계획 중이지만 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사건 이후 초당적인 총기 개혁 제안을 지지한 펫 투미(공화·펜실베니아) 상원의원 역시 총기소지 연령을 높이는 데 회의적으로 반응했고, 테드 크루즈(공화·텍사스) 상원의원도 반대한다고 대변인이 말했다. 존 케네디(공화·루이지애나) 상원의원은 "우리는 더 많은 총기규제가 아니라 더 많은 바보(idiot)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화당의 강경 입장에 백악관도 살짝 발을 빼는 모습이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6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한 연령을 높이는 개념을 계속 지지하고 있지만, 이 개념이 어떻게 이행될 지에 대해서는 입법되는 과정을 봐야 할 것이다"라며 "입법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