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사실을 폭로해도 처벌된다?…족쇄가 된 현행법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미투 폭로 입막음' 논란처벌 가능성 낮더라도 피해자 심리 위축시켜"형법 조항 폐지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로"해외에서도 형사 처벌 드물거나 없애는 추세"폐지 어렵다면 적용 엄격해지도록 개정해야"
아직까지는 미투 관련 사건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주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성폭력 가해자들이 이슈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역공을 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에는 사실을 공개해도 명예훼손이 성립된다는 형법 제307조 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재한다. 이 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피해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가해자가 명예훼손을 주장하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검찰 조직 내에서 벌어진 강제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서 위헌법률심판 소송을 해서라도 다퉈볼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굵직한 뉴스가 터지면서 해시태그 운동은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 틈을 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내세워 폭로 당사자에게 소송을 걸어 온 사례가 있다. 물론 공익적 목적이 있는 폭로는 처벌 사유가 없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법무법인 평원의 김보람 변호사는 "허위사실이라면 처벌이 있을 수 있지만 아주 악의적이지 않는 한 진실한 사실일 경우엔 형사처벌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예를 들어 교수나 상사 등에게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학내 혹은 사내의 공익을 위해 밝혔다는 점이 인정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는 수단으로 이 법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이미 당한 성폭력 피해로 심신이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가해자가 건 명예훼손 소송으로 인해 또 다시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성폭력이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이 때문에 피해자에게는 권력자와 법정 싸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길게는 몇 년, 적어도 1년은 걸리는데 그 동안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너무나도 심각하다"며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느라고 3년, 5년씩 걸린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성폭력 사건에 있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악의적으로 사용되고 피해자의 입을 막는 측면이 있기에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개업회원 1944명을 대상으로 2016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달하는 970명(49.9%)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현행대로 형사처벌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46명(33.23%)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한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것 만으로도 행위자에 대한 책임 추궁은 충분하다고 본다"며 "형사책임을 추궁하는 동기도 대체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한 증거수집의 목적인 경우가 많아 형사처벌은 불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더라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하는 예는 드물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표현의 자유 위축 및 피고인의 입증 부족으로 인한 유죄 판결의 부당성 등을 이유로 2010년 선동적 명예훼손죄 및 사인 간 명예훼손죄를 폐지했다. 미국에서는 몬타나 등 일부 주에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실제 기소하는 사례는 거의 없고 대체로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로 다루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형법에 처벌 조항은 있지만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국회에서도 관련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성폭력 등 범죄피해자의 증언을 위축시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적용범위를 축소하는 미투 피해자 보호를 위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요건에 '사람을 비방할 목적'을 추가하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특정인을 비방할 목적 없이 성폭력 등 범죄피해사실 등을 밝힌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 의원은 "미투는 권력관계 또는 지시·감독관계에서 성폭력 등 불법적 처우로 고통 받아온 피해자들이 힘겹게 내어놓은 용기인 만큼 그들의 증언이 법적 공방으로 소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조항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그 구성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규정해 무분별한 법적 공방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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